정원호 2023. 11. 4. 19:09

"대학원 선택을 후회하느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 같다. 

내가 택할 수 있었던 다른 경로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나는 제약회사 연구원이 되었을 수도 있고, 화학자였을수도 있고, 회사원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진로든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나았을까? 결론내리기 어렵다. 인생에서는 우연적 요소(운적 요소)가 많았을 것이기에 이에 대해 답하는 것은 무척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묻는다면 현재는 "Not Bad"라고 답하겠다[각주:1]. 이러한 괜찮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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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마음 한 곳에 불안감을 갖는다. 

직장인의 경우 -물론 시시때때로 연락이 오는 직업도 있지만-  하루 업무(할당량)가 끝나면 바로 off 모드(놀기 모드)로 들어갈 수 있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한다면, 퇴근 이후 취미를 즐기든, 먹든, 여행을 가든 딱히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대학원생의 경우 하루 업무(할당량)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실시간으로 감독하고 평가하는 사람이 없다. 이로 인해 나태함으로 종종 공부를 그르치는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죄책감/불안감에 빠진다. 공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대학원에 들어왔고, 공부가 대학원생의 본업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공부를 열심히 안하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부가 아닌 딴 짓을 할 때마다 나는 개운치 못한 마음을 갖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러한 불안감은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을 다짐하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내가 직장인이 되었다면, -흘러가는대로 사는 내 성격 상- 일적인 부분 외에 좀 더 발전해야겠다고 마음먹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불안감은 대학원을 들어온 이래로 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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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만성적인/고질적인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는 환영할만한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둔감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추동력을 지닐 수 있게끔 이러한 신호를 잘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1. 선택에 대한 후회 여부는 이후에 더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가령, 졸업 유무, 졸업 후 진로가 결정된 경우 이에 대해 확고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