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

내가 택하고 있는 길

정원호 2019. 10. 18. 23:24

사람들은 제각각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하다보면 슬럼프도 오고 진척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왜 안되는 걸까?", "나는 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 인것으로 보인다. 


1) 정신무장

"나는 부자가 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똑똑하다" "10년 뒤 나는 ~~한다" 식으로 정신무장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메커니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절히 바라면 신 혹은 전 우주가 나서서 나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책[혹은 이야기]에 관해 [부모님, 친구, 성직자 등으로 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다.

이러한 정신무장은 근본적으로 종교의 방식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열심히 (신에게 or 자기 자신에게) 기도를 하지 않았기에 더 기도에 쏟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적부터 "열심히 기도하면(간절히 바라면) 이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성당의 가르침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이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뉴스에서는 묻지마 살인, 강간, 유괴 등 차마 듣고 볼 수 없는 끔찍한 범죄가 나오곤 했다. 

한편, 지구 반대쪽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무장 세력은 무방비된 많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 한다. 

이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생존을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혹은 전 우주)은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모른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악인들은 전혀 벌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부모님도, 수녀님도, 신부님도 하느님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나는 왜 신부님과 수녀님이 하느님이 있는지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보인다면 그것보다도 더 확실한 포교방법은 없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간절하게 바란다면 내 소원을 들어줄 대상은 누구인가?", "그러한 대상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소원을 들어주는가?", "왜 이러한 질문에 정정당당히 맞서지 않고 답변을 피하는 것일까?"

[신의 존재에 관해 답변을 피하려는 태도, 나의 마음과 우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해명하지 않으려는 태도] 

이러한 근거도 없이 단순히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것으로써 매우 불건전한 태도가 아닐까? 

이러한 설명(해명)없이 "간절하게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라고 한다면 이는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교리는 간절하게 믿었다가 실패하고, 또 더 진심으로 간절하게 믿었다가 실패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큰 정신적 손실을 입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는다. 단지 너희들이 "더" 간절하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타박할 뿐이다. 그들은 더더욱 큰 상처에 빠진다.


나는 1)의 방식에 대단히 회의적이다.



2) "나는 왜 안되는 걸까?", "나는 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란 질문 무시하기

학창시절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가장 고달프면서도 흥미로웠던 때는 모르는 문제에 부닥쳤을 때인데, 

끙끙될수록 말리는 느낌이 들고 더더욱 해결이 어려워져만 가는 그런 늪같은 문제들이 종종 있었다.  

1~2 시간 끙끙되다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나는 이 문제를 오려 스크랩을 하고, 이 문제를 1~2주 뒤에 다시 보곤했다. 

1~2주후 '바보였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몇몇 문제들은 간단하게 해결되기도 했다. 


슬럼프에 빠져 "나는 왜 안되는 걸까?"같은 질문은 나에게 있어 늪같은 문제이다. 생각할수록 해결된다기보단 더욱더 우울해지는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문제에 깊이 파고들수록 말리는 느낌이 들고, 해결도 점점 더 요원해져만 간다.

오히려 이런 문제는 무시하고, 이런 문제를 잊을 수 있도록 기분전환(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헬스, 조깅, 산책,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보는 것,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친구)를 만나 교류하는 것, 음악 감상

독서를 하고, 퍼즐을 풀고, 노래방에 가고, 악기를 연주하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등이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지내다보면

이러한 문제들은 잊혀지거나, 혹은 풀 가치가 없는 문제('내가 이걸 왜 고민하고 있었지')가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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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슬럼프는 온다. 

해결책 1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카드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들은 훗날 빚덩이처럼 커지게 되어 사람들을 압도할 것이다. 


나는 해결책 2를 선호한다. 

나는 "나는 왜 안되는 걸까?", "내가 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는 시간을 들일만한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질문을 잊은 채,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할 것같다. 

즉 시간을 최대한 많이 투자하고, 온 힘을 다해 집중하고,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지속해보는 것이다. 

세계는 복잡 다단한 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따라서 내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외부 환경(한국 경제의 어려움, 자연 재해....) 등으로 성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 실패에 대해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경우이므로 괴로워할 필요없이 담담히 받아들이면 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해결책 1)보다 해결책 2)가 더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오래달리기(https://ideaspace.tistory.com/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