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주의!
먼저 이 글을 읽고 와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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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위해 이야기 순서를 재배치했다.
1. 첫번째 이야기: 나는 故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무대에 선적이 있다.
가톨릭에서 미사를 할 때 신부를 도와 의식이 원할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을 말한다.
난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 성당에서 복사를 맡았다.
수녀님이 몇몇 애들을 선발했는데, 기준은 느낌을 보고 뽑았다고 했다.
나는 당시 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래야 한다'라고 강하게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성당의 친구들과 사람(공동체)에 익숙해져있어서 나가곤했다.
초등학교 6학년 이사를 가면서 부터 종교활동을 등한시하게되었다.
역시 공동체를 통한 구속을 무시할 순없다.
아 이게 중요한게 아니지.
당시 가양동 성당에 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오신적이 있다.
마침 내가 그날 미사 복사여서, 그 분을 도와 복사를 했었다.
평화를 기원하며 악수를 했다. 그 악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정말 큰 영광이었다고 생각한다. 종교활동을 하면서 가장 뜻깊고 보람되었던 시간.
가톨릭동아리와 관련해서 명동성당에 간일이 있었는데
저녁 8시즈음이었나? 갑자기 명동성당의 종이 울렸다.
후에 그 종소리가 그 분의 선종을 알리는 소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여하간 그런적이 있었다.
세번째 이야기: 나는 빼빼로데이날 동시에 세 여자에게 빼빼로를 받은적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 가양동에서 삼양동으로 전학을 갔다.
삼양초등학교 아이들은 같은 서울아이들임에도 불구 이전 아이들에 비해 순박한 면이 있었다.
전학을 왔다고 꽤 많은 수의 다른반 아이들이 창문을 통해 나를 보려했다.
그때가 6학년 10월때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내성적이었음에도 다행히 적응을 잘했다.
고맙게도 같은 반친구들이 친해지려 먼저 다가와주었기 때문인 것같다.
그 당시 기억나는 아이로는 내 짝궁이 있었는데 내게 관심이 있다고 주위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녔다.(현대판 서동요?)
자기가 예전에 좋아하던 남자를 닮았다나 뭐라나.(알 길이없다.)
그 아이로부터 편지받은 것을 기억한다.
그 편지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내가 맘에 든다면 모월모일에 어디로 나와라"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큰 용기를 가지고 썼던 것일텐데
당시엔 그런 개념이 없어서 '화장실로 따라와'도 아니고 무슨 장난치는 것처럼 느껴져서
게임하느라 귀찮아서 나가지 않았다.
그 다음날 키큰 여자아이들 4~5명에게 둘러싸여
사람의 진심을 몰라줄 수 있냐는 비난과 함께 쿠사리를 먹었다. 아찔...
언젠가 중1때 지하철역에서 그 애를 만난적이 있는데, 그 애는 나를 보고 아는척을 했나보다.
나는 음악에 심취해서 알지 못한채로 가고있었는데, 갑자기 옆구리에 훅이 들어왔다.
"야 아는 척해라."였다. 정말 당찬 여자아이였던 것같다.
아 또 다른길로 새고말았다.
나는 빼빼로를 세 여자에게 동시에 받았다.
하나는 그 짝꿍이고, 다른 여자애들에게도 각각 받았다.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원인을 살펴보자면,
일단 외모적인 면에서 큰 변화가 기여하지 않았나 한다.
5학년때는 중등도비만 이었지만
6학년이 되면서 몸무게는 변화가 없이 키가 10cm가 크면서 마른 사람으로 둔갑되었다.
두번째로 전학생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학생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신비감을 주었던 것같다
세 번째로
전학을 오고나서 얼마 안지나 수학경시대회 비스무리한 걸 봤었는데 반에서 가장 시험을 잘 봤다.
이것도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아닌가 한다.
여하튼 선물을 준 여자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빼빼로들을 가방에 넣어 가져가고자 했다. 하지만 가방에 다 채워지지 않아서 들고갔다.
가면서 친구들과 먹었다. 집에가서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남은 빼빼로를 나누어 먹어도 남아서
이틀을 더 먹었다.
이런걸 리즈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 뒤 필자에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네번째 이야기: 나는 72시간 동안 굶어본 적이 있다.
부끄러운 얘기다.
대학교 시절 알바문제로 엄마와 다툼이 있었는데
의견차이란 이렇다.
나: 나는 그만두고 싶다. vs 엄마: 이제 너도 생활비는 알아서 벌어야한다.
나는 내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물은 먹었던 것같다.
방에 틀혀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다시 봐도 부끄러운이야기다.
그런 에너지를 부모님 속썩이는데 쓰지말고
더 좋은 곳을 위해 썼어야했는데
여하튼 굶어본적이 있다.
두번째 이야기: 나는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한 적이 있다.
어느날 엄마가 소식을 가지고 오셨다.
은평 가요제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은평구에서 하는 행사인듯했다.
엄마가 지역소식을 알리셨다.
母: ~~한 것이 있다. 노래 좋아하니까 한번 신청해보는게 어떠니?
나는 솔깃해서 구청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취미활동을 통해 경제적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더욱 좋으니까.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를 뭐로할까 싶다가
조용필의 '모나리자'가 어떨까 싶었다.
대학원 학업중임에도 불구 종종 연습과 에너지를 비축했으나
은평가요제는 메르스로 취소되었다.
물론, 전국노래자랑은 해본적도 없다.
다섯번째 이야기: 나는 팬티만 입은채 여의도 거리를 활보한 적이 있다.
5번이 팬들에게 가장 충격과 공포를 가져온 문항이 아닌가 한다.
많은 분들이 5번을 거짓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이제현이라는 친구와 수영장을 간 적이 있었다.
장소는 여의도 야외수영장.
여의도 야외수영장이다.
수영장에서 잘 놀고 집에 가기 위해 소지품보관장소로 갔다.
그런데 웬걸.
옷과 샌들이 전부 증발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당황..
5시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란 음악이 나오고있었고
집에 가기 곤란했는데 계속 이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문을 닫기위해 직원들은 청소를 하고있었다.
직원들은 초딩의 질문에 하나같이 우리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집에는 가야했다.
하지만 내게 남은 것은 약간의 돈과 수영모와 수영팬티 그리고 물안경.....
일단 버스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친구는 수영팬티만 입은채 여의도 거리를 맨발로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빨리 버스를 타고 집에가야 한다는 일념하나 뿐이었다.
기다림끝에 9번버스를 탔다. 버스에 탄시간 40분.
기억나는 것은
의자가 젖을까봐 앉지 못했던것.
버스에 서있는데 수영팬티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던것.
걸을때마다 생기는 물발자국 정도였던 것같다.
의외로 사람들의 시선이 기억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안좋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충격을 먹어서인가?)
버스에서 내린뒤 집에올때 아는 누가볼까, 그때가 가장 아찔하고 불안했다.
집으로 뛰어갔다.
성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아서??
성적수치심이 크게 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
지금 내게는 단지
흥미로운 회상거리로 남아있지만,
여하튼 그 이후로 야외수영장을 가는것에 부정적 생각을 갖고있긴하다.
야외수영장을 간다면 짐을 지킬 사람 한명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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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많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답을 맞추신분.
축하합니다.
그리고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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