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종북몰이가 일상화한 사회


엊그제 국회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이 민주당 진성준 의원에게 “종북하지 말고 차라리 월북하라”고 소리치는 소동이 빚어졌다. 진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상대로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질의하던 중이었다. 여야 간 고성이 오간 끝에 박 의원이 진 의원에게 “동료 의원으로서 해선 안될 말이었다”고 사과함으로써 소동은 일단락됐다고 한다.

이 소동에는 음미해 볼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매사를 종북 여하로 판단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을 하는 자리라 해도 ‘종북적’ 발언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집권세력의 정서가 표출된 것이다. 또 하나는 이런 사건이 그저 해프닝 정도로 생각될 만큼 일상화됐다는 점이다. 우리는 가히 ‘종북몰이가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땅에서 색깔론·종북몰이의 역사는 길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그 사례는 많다. 2010년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사고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것에 대해 정운찬 당시 총리는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긴다”고 했다.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국민들의 상식에 반하는 종북적 행태”라고 공격했다. 희한한 것은 정부비판, 비국민, 종북을 등식화할 정도로 이들의 사고체계가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야당을 지지한 젊은 층에 대고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이 했던 바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가서 살지”란 말도 별생각 없이 나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정부를 비판하면 종북이고 빨갱이란 이분법적 비논리와 폭력이 활개치고 있다. 박 의원은 작은 사례일 뿐이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에 덧붙여 이념적 양극화마저 진행되는 듯하다. 이념마저 걸핏하면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공안적 풍토에서 양심과 가치의 문제를 존중하는 인식은 자리할 곳이 없다. 과대망상적 종북몰이는 도리어 우리 안보논의의 수준을 매카시즘 시대로 후퇴시킬 뿐이다.

책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2010) 머리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권력과 재물 앞에서는 너그럽고 자유와 인권 앞에서는 경직되어 있지 않은가. 과거 일제와 독재정권에 협력했고 오늘날에도 앞에서는 국익을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국방의 의무마저 회피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 ‘빨갱이’ ‘친북좌파’로 모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이것이 ‘건전보수’라는 단어가 형용모순이 되는 까닭이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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