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증오감 투표를 끝내자
|단국대 의대 교수
영화 <변호인>의 네이버 평점은 8.96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라서 점수가 좀 더 나온 측면도 있지만, 영화가 나름대로 스토리도 있고 감동도 주는지라 박하게 평가해도 8점대는 충분하다고 봤다.
하지만 영화 개봉 초기, 이 영화의 평점은 5점대였다. 초창기에 별점을 매긴 이들이 최하점수인 별 반 개 (1점)를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띄엄띄엄 봐도 6점대는 줄만한 이 영화에 그런 박한 점수를 준 이유는 노무현에 대한 증오심을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정 재미없게 봤다면 별 한 개나 한 개반 정도를 줘도 됐을 테지만, 이들의 목적은 오직 평점을 깎는 것인지라 예외없이 별 반 개를 준 것.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그보다 8.4배나 많은 사람들이 10점 만점을 주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고, <변호인>은 9점에 가까운 높은 평점으로 막을 내렸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보다 맹목적인 증오감을 가진 이들의 숫자가 전체의 10%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선거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후보의 공약을 살펴본 후 마음에 드는 후보를 뽑는 유권자의 비율이 80%만 된다면, 비이성적인 색깔론이나 지역감정 같은 공작이 발을 붙이지 못하리라. 하지만 역대 선거를 되짚어 보면 이성적인 유권자의 숫자는 아무리 좋게 봐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엊그제 나랑 이야기를 나눈 지인을 보자.
모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즉 민주당이 종북정당이라고 했다. “근거가 있나요?”라는 내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예를 들 수는 없지만 난 확실히 알아요. 종북이라는 걸.” 통합진보당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민주당에게 종북이라니 도대체 이해가 안갔다. 그것도 나름 지성인이라고 자부할 대학교수가 말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그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터였기에 더 이상 얘기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는데, 문제는 우리나라에 이런 유권자가 아주 많다는 점이다. 공약이나 후보의 됨됨이를 보기보다는 상대를 종북으로 몰면서 증오감을 키우고, 그 증오감으로 투표를 하는 그런 유권자가 말이다.
이런 증오감 투표는 아무리 봐도 득보다 실이 많다. 일단 원치 않는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북한에 넘어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원하는 후보가 당선됐을 때는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지만, 그 쾌감의 유효기간은 선거 당일밤 하루에 불과하며, 그 다음날부터 씁쓸한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한다.
왜? 증오감 투표로 집권한 세력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리가 없으니까. 적당히 개판 치면서 사리를 취하다가 선거 때마다 색깔론을 일으키면 이길 수 있는데, 집권세력이 뭐하러 좋은 정치를 하겠는가?
선거는 정권의 업적에 대한 심판이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대 선거가 심판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딱 하루 남았다.
과거와 같은 수준은 아닐지언정,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종북을 빙자한 색깔론이 들먹거려지고 있다. 종북 어쩌고 하는 색깔론은 사실 유권자들을 언제든지 조종할 수 있다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전략이다.
지금까지는 그 색깔론에 조종됐다고 해도, 이제 그만 냉정을 되찾자.
변호인에 대한 평점테러를 다수의 관람객이 바로잡은 것처럼,
이번 선거에서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을 펴는 후보를 다수의 냉정한 유권자가 응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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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의대 교수
영화 <변호인>의 네이버 평점은 8.96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라서 점수가 좀 더 나온 측면도 있지만, 영화가 나름대로 스토리도 있고 감동도 주는지라 박하게 평가해도 8점대는 충분하다고 봤다.
하지만 영화 개봉 초기, 이 영화의 평점은 5점대였다. 초창기에 별점을 매긴 이들이 최하점수인 별 반 개 (1점)를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띄엄띄엄 봐도 6점대는 줄만한 이 영화에 그런 박한 점수를 준 이유는 노무현에 대한 증오심을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정 재미없게 봤다면 별 한 개나 한 개반 정도를 줘도 됐을 테지만, 이들의 목적은 오직 평점을 깎는 것인지라 예외없이 별 반 개를 준 것.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그보다 8.4배나 많은 사람들이 10점 만점을 주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고, <변호인>은 9점에 가까운 높은 평점으로 막을 내렸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보다 맹목적인 증오감을 가진 이들의 숫자가 전체의 10%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선거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후보의 공약을 살펴본 후 마음에 드는 후보를 뽑는 유권자의 비율이 80%만 된다면, 비이성적인 색깔론이나 지역감정 같은 공작이 발을 붙이지 못하리라. 하지만 역대 선거를 되짚어 보면 이성적인 유권자의 숫자는 아무리 좋게 봐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엊그제 나랑 이야기를 나눈 지인을 보자.
모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즉 민주당이 종북정당이라고 했다. “근거가 있나요?”라는 내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예를 들 수는 없지만 난 확실히 알아요. 종북이라는 걸.” 통합진보당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민주당에게 종북이라니 도대체 이해가 안갔다. 그것도 나름 지성인이라고 자부할 대학교수가 말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그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터였기에 더 이상 얘기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는데, 문제는 우리나라에 이런 유권자가 아주 많다는 점이다. 공약이나 후보의 됨됨이를 보기보다는 상대를 종북으로 몰면서 증오감을 키우고, 그 증오감으로 투표를 하는 그런 유권자가 말이다.
이런 증오감 투표는 아무리 봐도 득보다 실이 많다. 일단 원치 않는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북한에 넘어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원하는 후보가 당선됐을 때는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지만, 그 쾌감의 유효기간은 선거 당일밤 하루에 불과하며, 그 다음날부터 씁쓸한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한다.
왜? 증오감 투표로 집권한 세력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리가 없으니까. 적당히 개판 치면서 사리를 취하다가 선거 때마다 색깔론을 일으키면 이길 수 있는데, 집권세력이 뭐하러 좋은 정치를 하겠는가?
선거는 정권의 업적에 대한 심판이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대 선거가 심판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딱 하루 남았다.
과거와 같은 수준은 아닐지언정,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종북을 빙자한 색깔론이 들먹거려지고 있다. 종북 어쩌고 하는 색깔론은 사실 유권자들을 언제든지 조종할 수 있다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전략이다.
지금까지는 그 색깔론에 조종됐다고 해도, 이제 그만 냉정을 되찾자.
변호인에 대한 평점테러를 다수의 관람객이 바로잡은 것처럼,
이번 선거에서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을 펴는 후보를 다수의 냉정한 유권자가 응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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