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세계(집단,단체)에서나 약자는 존재한다. 평범한 사람들도 어떠한 계기로인해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만일 약자에 대한 대응책이 하나도 없다면, 사람들은 약자가 되지 않기위해 치열하게 살것이고 또 약자가 된 이들을 능력이 없는 자라고 조롱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양쪽에게 모두 비합리적이다. 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버티기위한 경쟁, 다른 한쪽은 상대적불평등과 차별, 멸시속에서 피해를 입게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안정성은 결국 약자를 대하는 사회의 방식과 관련이있다.
결국 바람직한 사회는 약자들이 본인의 약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모든 사람이 열심히 일을한다해도 어떤사람은 5를 한다면 어떤 사람은 2만큼을 할 수 있다. 이때 '너는 2밖에 하지 못했다라며 그게 너의 몫이다.'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위해 여유분이 있다면 나눠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약자에게 많이 퍼주자가 아니다. 단지 그들의 약함에 따른 불이익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회의 안정성을 가지고 올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점에서 "약자의 약함을 죄로 치부하지 않는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생산되는 총량이 일정하다면 앞선 예에서 보다시피 약자들을 위해 비교적 여유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의 일부분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서, 또 사회의 안정이라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몫을 쉽게 포기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약자들들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해결책으로는 더 큰 권위의 개입이나 다수의 생각을 통한 움직임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더 큰 권위의 개입.
더 큰 권위라면 강력한 집권방식이란 것이고 그런 큰 권위을 통해 이득을 나눠주도록 명령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우려스러운 점이 있어보인다. 첫째로 이 생각은 독재를 옹호하는 논리로도 발전될 수 있어보인다. 대의를 위해 누군가에게 큰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둘째로, 인간은 무척 불완전하다. 신이 아닌이상 공평하게 할 수 없다. 인간은 전지능력이 없기때문에 설령 공평하게 한다해도 둘다 만족할만한 좋은 결정을 하기란 쉽지않다. 또한 강력한 집권을 발휘하는 개인(혹은 집단)이 만약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할때 공명정대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분명 어렵다. 이런점에서 더 큰 권위를 들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그렇다면 두번째 해결책인 다수의 생각을 통한 움직임이 현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해결책인듯하다.
하지만 다수의 의한 결정도 여전히 부족해보인다. 다수가 우매한 상황이라면 어떠한가? 언제나 좋지않은 결정만 할것이며 그것을 막을 만한 견제도 없다. 결국 다수가 우매하지 않게 교육하고 계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수가 우매함을 막으려면 대중다수들에게 주는 정보들이 우매하지 않고 세련되어야 하는데, 그런 정보들의 예로 미디어, 교육, 선전등을 들 수 있겠다. 우리는 평소에 이런 정보들을 중요하게 여겨야한다. 이러한 정보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개인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데 국한하지 말고, 이러한 정보들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질시 어떤 의사결정이 만들어지는가라는 좀더 큰 관점에서 봐야할 것이다. 혹시 대중들을 우매하게 만들어서 바람직한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정보전달 매체가 있는지 말이다.
그럼 이런 정보전달매체를 잘 살펴보기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방법은 무엇인가? 내 생각에는 인문학이다. 그 중 철학은 큰 기여를 한다. 철학은 성찰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것에 관해 잠시 멈추고 의문을 갖게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침을 준다. 결국 인문학은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위한 초석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학이 인류를 물질적으로 어떻게 풍요롭게 할지 고민한다면, 인문학은 인류의 생각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마치며....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
오늘 지하철에서 한 초등학생이 옆자리에 있던 세명의 꼬마아이들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행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아이는 결코 더 큰 권위의 개입에 의해 준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주었다. 거기서 희망을 볼 수 있을 것같다.
물론 이 아이는 자라면서 많은 것을 보고, 교육도 받고 느낄 것이다. 여러 정보(미디어, 교육)를 받으면서 훗날 "내가 중요하다 . 약자를 챙길 필요없다."고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약자들을 도와야한다."라고 더 강하게 교육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보전달매체들은 이런 아이의 순수성을 지켜줄 수 있는가?
어른들은 이런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까?
또 현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저리주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정원호가 만난 사람. (0) | 2014.10.16 |
---|---|
낙서하지 마시오. (0) | 2014.09.30 |
(이미지로 정리하는) 도돌이표 (0) | 2014.06.27 |
지도자란? (0) | 2014.06.23 |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증오감 투표를 끝내자(6월 3일자) (0) | 2014.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