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아빠와 크레파스' 노래를 좋아했다.

 

일곱살때 미술학원에 다녔는데

60색깔의 크레파스를 가지고 오는 아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부러웠던 나머지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라대기까지 했었다.

 

꿈돌이 크레파스, 내것은 노란색 케이스였다

 

 

어느날 

아빠친구분이 60색깔 크레파스를 사주셨다.

그때의 환희와 기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그날 크레파스를 껴안고 잤다.

 

크레파스를 너무 좋아해서인지

크레파스의 모든 색깔들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같다.

 

58색깔[각주:1]크레파스와 60색깔의 차이는

금색과 은색이 추가되었다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60색깔 중 금색, 은색을 가장 아꼈다.

 

당시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 다른 색깔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색깔로 부른다는 점이었다.

 

가령,

고동색, 갈색, 황토색을 구별않고 모두 갈색이라고 불렀다.

빨간색, 자주색, 다홍색을 모두 빨간색이라고 불렀다.

초록색, 청록색, 옥색을 구별않고 초록색이라고 불렀다. [각주:2]

 

그런 상황이 있을때마다 나는 "이거 갈색 아니에요, 고동색이에요"라고 말하곤 했다.

 

미술학원에서 60색깔로 그림을 그렸던 때를 기억한다.

굉장히 으쓱해진 기분이었다.  

남들은 24~40가지 색깔로 그려내고 있지만,

나는 더 많은 색깔로 세상을 더 풍부하게 그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관련지어 생각해보니---------------------

 

영어에 관해서라면, 나는 원어민이 아니다.

원어민이 아니어서, 즉,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서 느끼는 슬픔 중에 하나는

영어로 대화할시 내 감정이나 느낌을 오롯이 그리고 풍부하게 전달하는데 한계를 느낀다는 점이다.

 

여러 경우들이 있다.

 

A: How do you feel?

('일단 잠을 많이 못자서 조금은 피곤하긴한데, 근데 뭐 그럭저럭 괜찮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원: Good!

 

이라고 하는 경우라던가 또는

 

("사실 전달을 잘못받았어. 나는 너가 ~~라고 말했었잖아 근데 내가 ~~로 잘못 들어서 그런일이 생긴듯 싶다. 일단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뭔가 오해를 해서 그런일이 생긴것같다. 이해해주길" 이라고 생각을 표현하고 싶지만 현실은)

 

원: Sorry.

 

 

글쓰기(writing)를 통해 생각을 표현할때는 시간을 고려치 않아도 된다.

반면, 대화(speaking)의 경우 빠른 리액션이 무척 중요하다.

핑퐁을 생각해보자. 내가 상대방에게 탁구공을 보내는 즉시 공이와야 핑퐁이 재미있는데,

그런데 5분후에 핑퐁공이 오면 할 맛이 무척 안 날것이다.

속도를 고려하다보니 특히 대화를 할때면 단순하고 쉬운 몇가지의 어휘(good, bad, it 등의 대명사)로만 생각을 표현할때가 많다.  

 

단순하고 쉬운 몇가지의 어휘들 만으로는 내 생각을 거칠게 나타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앞서 든 크레파스 이야기와 비슷하다. 흔한 몇가지의 크레파스(빨강, 파랑, 노랑, 초록)만으로는 풍경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으며, 거칠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색깔이 많으면 많을 수록 세상의 풍경에 조금 더 비슷하도록 표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풍부한 어휘는 내 생각을 더 오롯이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만, 60색깔 크레파스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영어대화의 경우 스킬, 어휘능력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점일까?

 

외국어로 대화할 시 

내 생각을 풍부하고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또 그러한 날이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족:

만약 내 자식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한 나이가 되어

크레파스를 사주어야 한다면

정말 좋은 것을 사주고싶다.

 

 

 

 

 

 

  1. 55색깔 이었나? 여하튼 [본문으로]
  2.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표지같은 걸까? 흥미로운 부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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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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