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시절 집합이란 것이 있었다.
집합이란 병사들을 불법적으로 모으는 행위를 말한다.
집합은 주로 B창고(화학제독장비들을 모아놓은)에서 이루어졌다.
집합은 주로 누군가 큰 실수를 저질렀을때(무슨 사건이 터졌을때) 발생한다.
다행히 우리부대의 경우 구타는 없었기에, 주로 말로 이루어졌다.
(심하면 폭언을 하기도 하지만, 폭언도 생각해보면 그다지 많지 않았던것같다)
물론 이것은 군대내 악습행위다. 그래서 이것은 간부들 몰래 이루어졌다.
따라서 집합이 생길 시 막내는 자신의 선임들을 찾아다니며 들리지 않도록 귀속말로 조용히 전파해야한다.
(하지만, 간부들도 알면서 묵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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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일이병시절 참 많은 집합을 당해왔다.
상병최선임이 되자, 나도 집합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집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멀리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악습을 했던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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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이 말해주듯 나는 비교적 자유롭게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실 훈련때가 아니고서야 아침에 차량점검을 제외하면 하는일이 크게 없기 때문에,
주로 후임들과 노가리를 까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지만 당연히 노가리를 까면 간부들에게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숨어서 해야했다.
그날도 신나게 노가리를 까고있었다.
그날의 멤버는 나와 상병 Y와 상병 A와 일병 C로 우리들은 B창고에 숨어서 노가리를 깠다.
뭐 대단한 건아니고 말장난을 치며 노는거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던것같다.
원: 자~ 이제 점심먹으러 나가볼까?
Y,C,A: 예 알겠습니다.
문을 열었다.
휑함이 느껴졌다.
원: 어? 다들 어디갔지?
찾아봤다.
없었다.
나는 3분정도 후임들과 찾은 후
모든 인원이 점심을 먹으러 갔음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원: 어 점심먹으러 갔나본데?
후임들은 당황했다.
군대에서 인원을 다 데리고 가는 것은 중요했다.
신속한 전파가 강조되었으며, 항상 단체행동이 요구되었다.
아마 이 상황에서는
모든 인원이 탔다고 잘못 전달되었을 것이고 결국 출발했을 것이다.
식당은 꽤 먼거리에 있어
후임들과 자전거를 타고 먹고왔다.
-------- 밥을 먹고왔다--------
같이 먹고온 후임들이 물었다.
Y: 정원호 병장님, 애들 안 모으십니까?
정: 그럴 수 있지뭐
Y: 그냥 넘어가게 되면 후임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정원호 병장님을 호구 취급할 겁니다. 그래도 넘어가실 겁니까?
정: 글쎄... 뭐 다음에 잘하면 되지, 일병 C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일병 C는 막내와 차이가 안나는 기수기 때문에, 나보단 막내들의 생각을 더 잘 변호해줄 것같았다.
하지만 정말 뜻밖이었다.
C: 모으셔야합니다.
정: 어? 왜?
C: 막내들에게 따끔하게 가르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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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을 태운 트럭이 도착했다.
사람들은 왕고참을 깜빡하고 간것을 인지한듯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내 눈치를 살펴보곤했다.
근기수 후임이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물었다.
근: 정원호 병장님 애들 안 모으십니까?
정: 난 그다지.. 그냥 넘어가면 안되나?
근: 그럼 제가 모읍니까?
내 선에서 빨리 끝내는게 나을 것같았다.
정: 아... 알았어 알았어
내가 모을테니까. 너는 모으지마
전파를 하기위해 막내를 부르려했다.
막내는 이미 사색이 되어있었다.
나는
막내 윗기수를 불렀다.
"D야. B창고에 집합 하라고 전해줘"
--------------------------집합--------------------------
말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막내가 왔다.
"정원호 병장님 B창고에 모두 집합 하였습니다."
"그래 가자"
B창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25명정도의 모든 병사들이 모여있었다.
당시 내가 기억하기로는
(특히) 일이병들이 고개를 푹숙이고 있었고 고요했다.
이렇게 험악한 분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일이병시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위치에서 본 병장은 당시 너무도 무서웠던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 일이병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버린듯 했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도 싫었다. 남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이 이상한 분위기를 해소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 인원파악은 훈련때도 그렇고 이동할때마다 매번 중요하니까..
이번일을 통해 다들 조심하고, 막내가 잘 모를 수 있으니까...
윗 선임들이 서로 신경써주고... 어... 다음엔 이런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다들 내말이 끝날때마다 "예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항상 웃고 인사했던 사이인데 이렇게 되다니, 가해자가 되었다는 현실이 착잡했다.
"자 끝났어. 이제 해산하자"
그런데 근기수 병사가 말했다.
"정원호 병장님. 후임들에게 더 할 말이 있습니다. 제가 더 이어가도 되겠습니까?"
내 멘트가 뭔가 성에 안찼나보다.
"허....
나는 창고를 나왔다.
하지만 내 부탁과 달리 집합은 짧지 않았다.
내 선에서 별것 아닌일로 짧게 끝내려고 했지만
몇몇에게는 그러지 않았나보다.
집합은 점심시간 내내 계속되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마음이 꽤 편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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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후임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해주는 것인지 생각하려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인사도 하고, 일할때면 같이 대화하고, 걸레널기 같은 허드렛일도 도와주려했다.
하지만, 정말 후임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어쩌면, 막내는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다니는게 일이었을지 모른다.
바쁜 시간에 막내가 힘들지 않게 인원파악을 편하게 할 수있도록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
(그런 겉핥기 행동보다) 더 큰 배려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 행동이 막내를 힘들게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웠던 것같다.
그 집합사건은
내가 굉장히 힘들었던 이등병시절의 초심을 잃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내가 후임들을 진정 따뜻하게 배려하고 있었던 것인지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 위에 선임이 두명정도 있었으니 서열 3위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둘은 사실상 열외였으니 왕고라고도 볼 수있다. [본문으로]
- 내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나는 C일병과 허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C일병은 자기 소신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 내가 악습을 방조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해명해보자면, 물론 내가 계급이 높아 억지로 하면 제재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나만큼 내 근기수도 계급이 높았을 뿐더러, 많은 후임들이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존중할 필요도 있었다. <존중과 관련해서 이전에 근기수들과 마찰이 있던 적이 있었다. 추후에 말할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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