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 학원에 다녔었다.

 

학원에 올때마다 영어단어를 외워가야 했다.

 

우선순위 영단어라는 책이었는데, 3일치를 외웠고 거기서 60문제가 나왔었다.

 

60문제 중 10문제까지 틀리는 것은 봐주지만, 11개 이상부터는 손바닥 매가 1대씩 추가된다.

남자건 여자이건 간에 예외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단순 암기를 무척이나 낯설어하는 학생이었다.

못/안(?) 외웠기 때문에 거의 항상 매를 맞았다[각주:1].

 

어느덧 나는 매일 안 외워오는 학생의 대명사가 되어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반항아/독립투사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무슨 제임스 딘이냐?

 

----

그 날도 단어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시험을 볼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던 편이었다.

 

그날도 나는 시험에 최선을 다했다.

 

----------채점 뒤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웬일인지 그 날은 선생님께 매를 맞지 않았다.

 

 

----------사건의 전말--------------------

 

 

오늘도 내가 아는 단어는 9~10개 정도 뿐이었다.

 

막힘없이 써내려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역시 단어시험에 나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분명 나는 '잔인한[각주:2]'이란 글자를 단어장에서 본 것같았다.

 

여백보다는 빽빽한게 뭔가 나을 것같아서, 나머지 50개를 '잔인한'으로 채워넣었다.

 

 

선생님은 시험지를 나눠주면서 내가 십여년을 가르치면서 이런 학생은 처음이라고 어이가 없어 하셨다.

반 전체에 웃음을 나누어준 관계로 그 날은 매를 맞지 않았다.

 

 

학원친구들은 대단한 패기라며 나에게 감동을 받은 듯했다. 나를 '잔인한 놈'으로 부른 건 덤이었다.

 

학원에서 나의 명성[각주:3]은 더더욱 높아져만 갔다.

 

 

  1. 학원가는 버스안에서 급하게 외웠던 것같다. 13~18개 정도밖에 못 맞췄다. 그러므로 손에 불이나도록 맞았을 거라는 얘기. [본문으로]
  2. 그 단어는 'cruel'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3. famous인지, notorious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본문으로]

'추억팔이 > 학창시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요속의 외침  (0) 2019.12.07
"How often" 게임  (0) 2019.11.28
인생 최대의 위기  (0) 2017.06.01
학교 선배  (0) 2016.12.17
고등학교 수업종소리  (0) 2016.12.17
Posted by 정원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