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언어철학시간에 버트란드 러셀을 배웠다.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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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러셀을 알게된 것은 스무살때였다.
친구 인근이의 소개로부터였다.
인근이는
교양시간에 러셀이란 사람이 쓴 책을 읽었는데
너가 생각난다면서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추천해주었다.
대학새내기시절
자율성이란 바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우적 거리고 있는 나에게
냉철하고 이성적인 그의 생각은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괜찮아. 나도 겪어봤어. 그마음 알아.'라는 우리시대의 흔한 힐링은 제쳐두자.-
내용인 즉슨
당시 사회가(1900년 영국)
실업문제를 겪는 것은 기계탓이다. 기계는 사람보다 일을 많이 한다. 또 쉬지않고 한다.
기계가 경제성에 의해 사람을 대체하게 되고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기계에게 빼앗기게 된다. 실업이 필연적인 그러한 시대에서 여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도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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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게으름은 죄악으로 여겨졌었다.
게으름을 가진것에대해 항상 나를 탓해왔었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들이 세상의 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존재라고 보긴 어려울 것같다.
오히려 더 기여했을 수도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불편함을 더 큰 부지런함으로 극복하기 때문에 현실에 잘 적응한다.
반면, 게으른 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만큼 바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나름대로 살아갈길을 고안한다.
편리한 발명품 탄생의 원동력은 아마 게으름이 아닐까?
현실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고치려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만사 귀찮아 하는- 게으른 사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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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책을 찾아보던 중 눈에띄는 버트란드 러셀이란 이름.
종교에 회의하던 나와
너무도 비슷한 점이 많았고,
이어지는 통쾌한 정당화
그 이후로 러셀의 책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같다.
-------------군대--------------
대략 6주에 한번씩 휴가를 나왔는데
그때마다 러셀의 책을 1~2권씩 가지고 갔던 것같다.
가장 좋았던 책은 '행복의 정복'이다.
http://ideaspace.tistory.com/entry/러셀-행복의-정복
이 책을 읽은 것은 일병때였는데
밤에 수면을 취하지 않고 불빛이 새어나오면
선임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불속에서 라이트펜을 켜고 박박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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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군대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을 한적이 있다.
공부를 계속 하고싶다는 생각은 가져왔는데
정작 공부를 왜 계속 해야하는가란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결국 나의 만족을 위해서란 결론을 내렸던것같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했었다.
"산에가서 움막을 짓고 혼자사는것도 좋겠다.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고, 세상사람들의 시시비비와는 동떨어진채
나만의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바꿨던 계기가 있던 것같다.
러셀자서전 서문(러셀이 90살에 작성하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여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도록 만드는 그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며, 비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내가 똑같은 열정으로 추구한 또 하나는 지식이었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늘의 별이 왜 반짝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유전너머에서 수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 피타고라스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나는 많지는 않으나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대로의 범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참고
http://bomber0.byus.net/archives/000120.html
러셀은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마자
반전운동에 가담하였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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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쌓는다 한들 그게
세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치있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나의 지식이 세상에 필요한 부분이 있을텐데
세상과 담을 쌓은채 세상일에 귀를 막고 살아간다면
그것 또한 부조리에 동조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억이 난다.
'내가 잘못생각했구나!' 란것을 알았던때
그때 나는 화학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KM9 2.5톤 제독차
운전하다가 갑자기 "아!"라고 외쳤다.(후임이 '왜 그러십니까?' 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잘못되고
그릇된 생각을 했는지 러셀은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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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휴가때
블로그를 만들었다.
사실 싸이월드를 했었는데
몇일간 썼던글이 -용량의 이유로- 날아가버린 이후로 심히 빡친탓에
전역 후 새로운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하고자 마음먹었다.
이름은 고민을 많이했는데
블로그는 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적을 의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러셀처럼 통찰력있고, 날카로운 에세이들이 나오길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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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화학과로 전과를 했고
2년동안 근 70학점 정도를 (54+12+재수강몇개... 맞네.;;;)들어야했다.
굉장히 빡셌지만
바쁜와중에도
언젠가 러셀과 같은 사람이 되고싶다라는 생각을 잊지 않고있었다.
철학교양은 5학점 밖에 안됐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들었다.
------------교양을 듣다보니 철학에 더 관심을 갖게되었고-----------------
정신 차려보니 여기다.
과학철학은 분석철학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철학을 하려면 분석철학을 배워야 한다.
오늘 언어철학시간에
분석철학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그리고 어쩌면 내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 버트란드 러셀에 대해 배웠다.
러셀의 에세이가 대중들을 위해 쓰여진 얕은 정도의 생각이라면
지금 익히는 러셀이론은 그의 생각깊이의 정수라고 할 수 있을 것도같다.
그의 생각을 정식으로 배우고 공부할 기회가 주어지다니...
어쩌면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러셀의 진짜 제자가 되는 첫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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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셀은 결혼을 4번했다.러셀의 수제자가 독자들에게 다른 의미로 읽힌다면 그것은 나를 크게 오해한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