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휴식이 주어졌다.
감사할 따름
덕분에 취미중 하나인 과거회상을 충실히 하고있다.
어릴적 나는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상황재연을 하는데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을 재연할때 출연한 여자아이가 문근영씨였다.
문근영에게 관심을 가졌던 첫 계기가 이 프로그램이다.
만약 내가 'TV를 사랑을 싣고'에 나온다면 누굴 찾게 될까?
--회상--
그 아이와 나는 초등학교 3학년때 같은 반이었다.
그 아이는 무척 밝은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이 청소당번을 정해주었다.
나는 아마 목요일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는 화요일 당번임에도
매일 남아서 자진해서 청소를 했다.
그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적이 있다.
그 아이와 청소를 할때마다 매번 즐거운일이 생겼던 것같다.
교실은 나무바닥이어서 왁스질을 해야했다.
미끄러운 왁스걸레에 한명이 올라가면 밀어주는 놀이를 했다.
남아서 청소를 한다는 건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집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귀찮은 것이지만 청소를 하는 목요일이 빨리 오길 바랐다.
청소가 끝나면 같은 당번이었던 자연이와 함께 집에 갔다. 어느날 하교길에 자연이가 말했다. "야 그 애 예쁘지 않냐?" 나는 당황스러워 딴말을 했다. 속마음을 절대 드러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자리배치를 한적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남학생이 짝이 되고싶은 여학생을 지목하는 새로운 방식을 구상해오셨다.
단, 여학생이 예스라고 대답을 해야한다. 만약 노라고 답할 경우 같이 앉을 수없다. 안습
교실 앞쪽에는 여학생이 뒷쪽에는 남학생들이 모여있었다.
모두 멀뚱멀뚱
20분이 지났다.
아무도 부르지 않아 담임선생님이 답답해하셨다.
"**이랑 앉고싶다'고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럴수 없었다.
'노'라는 두려움과 놀림감이 된다는 것이 싫었다.
10명의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얼레리꼴레리를 외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누군가 침묵을 깼다.
"**이랑 앉고 싶습니다."
K군이 용기있게 이야기했다.
"우와~"
반 아이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얼레리꼴레리는 없었다.
더 슬픈건 **이가 yes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 아이를 시작으로 많은 아이들이 원하는 짝꿍을 불렀다.
나는 될대로 되라지란 마음을 가지고 무기력했던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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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와
5학년때 같은 반이되었는데
다가가기 위해서 구실을 만드려했던 것같다.
3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좋으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일을 그만두고 외국으로 선교활동을 가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필리핀에서 사진과 함께 편지를 보내주셨다.
원: 나 선생님이 편지보냈다.
**: 나도 보여주라. 주소 좀 알려줘
원: 싫지롱
싫다고 한 이유는 이야기할 구실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같다.
만약 알려주면 더 이상 대화할 구실이 없으니까
**이는 뒤이어 2~3번 정도 부탁했지만
결국 못보여준채로 끝나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난 좀 비겁했던것같다.
5학년때 기억 나는 건 수련회때였는데
포크댄스를 췄었다.
처음 인사를 하고 손을잡고 파트너와 춤을 춘후
남자는 옆의 다른 여자에게 가는 식으로 반복하며 추게된다.
**이가 보였다.
"2번남았다."
옆 파트너로 옮겼다. "1번남았다"
마침내 **이와 춤을 췄다.
인사를 하고 춤을 췄었다. 긴장했었나보다.
회상을 해보려는데 기억이 안난다. 손이 차가웠다 정도?
아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자리배치의 설움을 극복할 기회가 있었다고 할까?
5학년때 짝꿍을 정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우리반은 6명이 한조를 이루어 조별로 수업을 했는데
1등을 한 조의 조원들은 각각 흩어져
맘에 드는 아이를 뽑을 수 있었다.
1등을 하기위해
수업시간에 발표를 일부러 많이 했다.(나댔다고 볼 수 있다.)
공부하라고 아이들을 다그치기도 했다.(미안)
결국 우리조는 1등이 되었다.
나는 5명의 구성원을 선정할 수 있게 되었다.
원: **이가 우리조였으면 좋겠습니다.
승리의 외침.
자리에 앉은 **이가 물었다.
**: 왜 날 뽑았어?
원: 그냥
5학년때를 생각해보면
다가가 대화를 한다해도 퉁명스럽거나,
놀리는 식의 대화를 했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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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도 평가를 봤고 그 결과를 토대로 반이 정해졌다.
운이 좋게도 **이와 나는 6학년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
여전히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놀리는 식의 대화만 있을뿐
내가 6학년때 펌프가 유행했었다.
**: 나 DDR하러 오락실 갈거야. 너는 그거 모르지?
원: 그게 뭐야?
**: Dance Dance Revolution이야. 바보
우리집에서도 DDR매트를 구입했다.
혹시 보여줄 기회가 있지 않을까 부단히 연습했다.
가끔 오락실에가면 펌프를 하는데
그때마다 이 대화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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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학년 10월에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되었다.
할머니집과 살림을 합치게 되었다.
워낙 갑작스러워서 일주일 전에 알았다.
인사도 못하고 전학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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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참 밝은 아이였다.
아버지가 안계셨단걸 안 적이있다.
우연히 혼자있는 것을 보았을때
다가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싫어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같다.
--회상 끝---
'TV를 사랑을 싣고'에 나온다면 누굴 찾게 될까?
막상 지금 생각해보니 만나고 싶지 않다.
청개구리 심보가 다시 살아나는 것같기도하다.
**이는 내 기억속의 **이지
실제 **이가 아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좋다.
생각해보니
**이에게 나는 어떤 추억으로 남았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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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양이 과연 스튜디오에 도착하셨을까요?
한번 불러보세요.
원: **아!
더 크게 불러보세요.
원: **아!
저.....안 나오는데요?
성적표와 과거사진은 스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