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2때를 생각해보니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노태훈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키가 크고 공부를 잘했다.
1학기 중간고사였때였나?
아슬아슬한 차이로 내가 2등을 했었는데
그때 이후로 날 대하는 노태훈의 태도가 달라진듯했다. 라이벌로 인식했달까?
가령 이런류의 조롱을 주로 하곤했다.
"정원호 ㅋㅋㅋ 엄마 젖이나 더 먹고와 ㅋㅋㅋㅋ"
우리반은 키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다.
노태훈은 5번이었는데 그 친구의 키는 174~175cm정도 였던것으로 기억한다.
노태훈은 키다리 3인조로 다녔는데 한명은 2번 백창준이었고 한명은 4번 이대영이었다.
삼인조는 떼를 지어다녔다.
노태훈과 그 일당들은 조롱 뿐만 아니라 속히 말하면 무릎빵을 하기도 했다.
가령, 서있는 정원호를 본다면
3인조는 "Avenger" 라고 외치며 내 무릎뒤를 공격하곤 했다.
(서있는 상태에서는 무릎에 힘이 실려있는데,
무릎뒤를 공격하면 무릎에 힘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무릎 꿇게 된다)
원: 앗!
노: 역시 정원호. 나에게 무릎을 꿇다니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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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그날도 "Avenger"를 당했다.
"ㅋㅋㅋ 또 무릎꿇었다 ㅋㅋㅋ"
"노태훈 비겁해, 키 큰 3명이 1명을 공격하냐?"
"ㅋㅋㅋ"
"남자답게 승부하자"
"뭐로?"
"농구로 승부하자. 너희는 키가 크니까 나쁘진 않을껄?"
"ㅋㅋㅋㅋ 정원호 질려고 환장했냐?"
"일단 해보자니까?"
"지면?"
"앞으로 형님이라 부를게, 대신 내가 이기면 다시는 "Avenger"하지마라"
"그냥 지금 불러 ㅋㅋㅋ"
"됐고, 2주 후에 붙자"
"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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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영택이와 선민이는 항상 같이 집에 갔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도 3인조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상황을 얘기했다.
키가 작은 것도 서러운데, 그렇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택이와 선민이는 키다리들에 대한 분노를 금하지 못했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우리가 불리한 조건임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20번, 영택이는 14번, 선민이는 20번 후반대였다.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하교 후 우리는 일주일에 3~4번씩 2시간정도를 농구장에서 연습을 하고 집에 갔다.
"원호 학원은 안가?"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일단 연습하자!"
나름 열심히 연습했다.
---------------평가전----------------
체육시간 이었다.
체육교사: 자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자유시간이다.
노태훈이 다가왔다.
노: 야 정원호! ㅋㅋㅋ 농구대결 어때?
원: 그래! 상대해주지.
키다리와 숏다리의 평가전이 시작되었다.
4번 이대영: 야 정원호 지고 울지마라
이대영: 개소리하네 ㅋㅋㅋㅋㅋ
반코트로 경기를 했다.
경기를 기억해보자면 거의 완패에 가까웠다.
이대영과 백창준이 골밑에 있었는데
우리든 상대든 노골이 되면 그 둘이 가볍게 리바운드를 했다.
그리고 노태훈은 가드였는데
노태훈으로 부터 공이 시작되고 이대영에게 패스가 되면 골밑슛을 쏘곤했다.
막고는 싶었지만, 키차이로 인해 속수무책이었다.
아주 단순한 공격패턴란 것을 알았지만 이기기 쉽지 않았다.
(노태훈은 심지어 조롱하듯이 공을 굴리면서 드리블 했다)
10:3이 었나? 대충 그랬던 것같다.
"정원호 ㅋㅋㅋㅋ 역시 넌 나한테 안돼"
"아 졌어. 분하다, 다음게임은 정식으로 하는거니까 원코트로 하자"
"그래 ㅋㅋㅋㅋ 지지나 말아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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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게임을 위한 준비를 해야했다.
사실 원코트로 하자는 제안은 전략이었다.
평가전을 해보니, 반코트로 하니까 백창준과 이대영은 거의 골밑 아래에 좋은 자리에서 진을 치기만 하고있었다. 그리고 공이 오는대로 키를 이용해 쉽게 받아먹었다. 이상황에서 우리팀의 리바운드가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원코트면 다르다. 원코트는 농구 특성상 진영을 왔다갔다를 많이 하기 때문에 백코트가 늦을 수 있었고, 또한 반코트때처럼 좋은 자리를 고정할 수 없기 때문에 리바운드면에서 키다리들의 유리함이 많이 상쇄될 수 있다. 따라서 원코트라면 우리가 그다지 불리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2
평가전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우리는 평가전을 거울삼아 전략을 제대로 짜기로 했다.
원: 일단 우리는 속공으로 가자. 저쪽이 골을 넣자마자 내가 반대쪽 골대로 달려갈게. 속공으로 찔러줘. 그럼 내가 레이업으로 슛을 넣는 작전으로 가자.
....작전 논의중....
원: 그리고 슛정확도를 높이자. 저쪽이 리바운드를 할 기회를 아예 주지않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에서 계속 연습하자.
우리는 합의를 했고 대충 이러한 틀에서 전략을 짜기로 했다.
우리는 남은 한주동안 연습을 했다.
나의 경우 (주로 선민이가 찔러주는) 속공으로 받는 패스를 받고 레이업슛하는 동작을 연습했다.
그리고 미들슛을 연습했다. 백보드를 맞고 들어가는 슛(뱅크슛)도 연습했다.
영택이는 슛정확도가 좋아서 주로 슛 연습을 했다.
선민이는 키에 비해 점프력이 좋았다. 자리선정만 잘하면 리바운드에서 승산이 있어보였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분석까지 했다.
영택: 원호 슛을 쏠때는 팔이 이렇게 되어야하고, 점프시에는 앞으로 뛰면서 슛을 날려야해.
하여간 많은 준비를 했다.
------------------그날이 왔다--------------
경기는 수업이 끝난 오후 4:30
공은 내 공으로 하기로 했다.
15점 내기 승부
"노태훈! 이번엔 지지않겠다"
"ㅋㅋㅋㅋ"
2번 백창준과 영택이가 점프볼을 했다.
이번경기는 저번과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경기는 호각지세였다.
노태훈은 도발하고자 공을 굴리는 드리블을 시도했다. 하지만 저번과 달리 별로 동요가 크지 않았다.
효과는 미미했다.
노태훈팀의 주 득점원은 역시 리바운드와 골밑 슛이었다.
하지만 저번에는 리바운드가 거의 n:0 으로 압도적이었다면 이번에는 7:3정도로 훨씬 나아졌다.
선민이가 고군분투로 리바운드를 하면, 나는 선민이를 믿고 적 골대로 뛰어가 공을 받고 레이업슛을 하는 양상으로 진행하였다. 속공작전이 정말 효과가 좋았다. 키다리팀은 알면서도 속공작전에 당했다.
엎치락 뒷치락 속에 경기는 종반으로 가고있었다.
어느덧 스코어는 14:14, 노태훈 팀의 공격찬스였다.
하지만, 노태훈 팀은 노골을 했고, 공격권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마지막 공격은 속공이 아닌 천천히 공격을 시도했다.
노골을 대비해 이대영이 골밑을 지켰고 노태훈과 백창준이 수비를 했다.
따라서 마크가 한자리가 비었다.
"영택아 여기!!! 빨리"
마크가 빈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자신있는 코스에 있었다.
나는 영택이의 패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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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승리했다.
다음날
노태훈은 완전히 풀이 죽어있었다.
나는 호기롭게 명언(이라고 생각하고)을 던졌다.
"키가 작다고 얕보지마라
노태훈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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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을 때의 통쾌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만큼 우리는 정말 그 승부에 몰입을 했다.
그 승리는 내게 중2~중3동안의 자신감의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