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나에게도 별명이 있었다.
누군가 내 별명을 묻는다면 아마도 난처해할것이 분명하다.
내 별명은 '원호지존'이다.
낯간지럽다.
별명이 붙여진 이유를 생각해보면 역시나 단순하다.
기원은 아마 고2때 첫 체육시간이었던것같다. 그때 내가 아마 임시반장이었던 것같다.
축구를 했는데 골을 넣었다.
그리고 나는 '원호지존'이 되었다.
별명이 성립하려면 여러사람들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한다.
보통 첫 사람이 명명식을 거친뒤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몇번 밀어본다.
하지만 주위친구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그새 반응은 시든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려는 몇몇 친구들의 시도가 있곤했지만, 1
그때마다 호응은 시들했고, 그래서 마땅한 별명이 없는 상태였다.
그와 달리 '원호지존'은 타이슨이 별명인 김종혁이란 친구가 주도했고
고2시절 내내 따라다녔다는 점에서 꽤 흥했던 것같다.
원: 내가 왜 원호지존이야?
타이슨: 넌 존재자체가 지존이야.
※ (타이슨이란 별명은 중학교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고등학교 까지 따라왔다고 한다. 안습 근데 진짜 타이슨 닮긴함.)
물론 처음에는 원호지존이란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주 부담스러워서 손사래 쳤는데 그게 도리어 역효과를 내어 더 확대되었다.
이따금씩 언어영역을 잘 보면 '언어지존'이라고도 불렸다.
고3이 되었다.
물론 고3때 대다수의 같은 반 아이들은 내 별명을 몰랐지만, 2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를 '원호지존'으로 불렀다. 그래서 원호지존이라는 별명은 졸업할때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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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별명으로 굳히면 주홍글씨 처럼 지겹게도 따라다니는듯 하다.
몇몇 친구들의 예를 보면 그런것같다.
고2때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이 시험 주관식 문제에 지문으로 나온적이있다.
주인공에 대한 점순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을 묻는 문제였다.
답은 '감자 세 개' 였는데,
한 친구는 안타깝게도 답을 '니나 먹어라'로 적었다.
이 답안은 굉장한 임펙트를 주었고, 그 친구는 1년 내내 '니나 먹어라'로 지칭되었다.
그러고보니 중2때 였나 김창후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우연히
그때 이후로 이름이 불리든, 발표든, 무언가 할때마다
그 시그널이 단체로 합창되었다.
학교를 땡땡이 치는 아이로 둔갑되었다.
생각해보니
별명은 억지로 민다고 되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즉, 적절한 타이밍, 착착 붙는 어감, 이름, 외모등의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나올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
지존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