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검도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너는 무슨 영감처럼 걷고있냐?"

 

나를 부르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같은 반이었던 한주희라는 여자 아이였다.

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걸을때 고개를 숙이는 습관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같다.

 

고개를 들면 수많은 시각 자극들이 보인다.

알록달록한 간판이나, 수많은 사람들, 형형 색색의 자동차, 자전거등이 눈에 들어온다.

다채로운 시각자료들을 관찰하다보면 생각이 파고들 틈은 없다.

 

반면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길 수 있다.

땅바닥은 시각자극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아스팔트나 단조로운 패턴의 보도블럭이 전부다.

땅을 보고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스멀스멀 생각들이 기어들어온다.

나는 걸으면서 나와 관련된 흥미로운 모든 것들(사람, 일,  공상)을 생각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생각에 내 자신을 맡기는 것을 좋아한다.

 

고개를 숙인 것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고개를 들고 걸으며, 자신감을 가질 것을 충고한다.  

그러한 충고는 고마운 것이지만, 내가 고개를 숙이며 걷는 것은 자신감이 없는 것과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어떠한 힘든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이겨낼 것이라고 막연하게나마 믿고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서 산책하는 것은 내가 즐거워 하는 취미중에 하나이다.

그렇기에 큰 계기가 없는 한(가령 건강에 해로운 습관임이 알려진다거나),

고개 숙인 남자모드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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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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