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에서 나와 Y상병, 맞후임인 J병장은 성당팸이다. 매주마다 항상 성당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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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경>

Y: 정원호 병장님. 성탄 전야제 참가하실 생각없으십니까? 노래 할겁니다. 

원: 하지 뭐. 우리 모두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 딱히 할 것도 없잖아?

Y: 좋습니다. 

당시 별 생각이 없었다. 


나와 Y상병, J병장이 협연을 한다. 

J병장이 기타를 치고, 나와 Y상병이 노래를 한다. 

우리가 부를 곡은 Once(ost) - Falling slowly와 이적 - 하늘을 달리다 였다.


연습을 했다.

Falling slowly가 가장 연습하기 힘들었다. 특히 이 부분이다.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ve made it now


녹음 뒤 들어봤다. 원곡과 다른 창의적 해석이었다.

Y: 정원호 병장님. 무슨 로봇입니까? ㅋㅋㅋㅋ 


도입부야 적당히 읊조리면 될 것 같은데. 사비 부분(절정부, 후렴구)의 감정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라앉고 있는 보트. 절박한 상황, 구원, 희망. 

절박함에 살려달라는 외침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떨리고, 감정이 고조된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감정없이 톤이 차분하고 일정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난감했다. 결국 우리는 Falling slowly에서 90%의 노력을 쏟고, 하늘을 달리다는 그냥 신나게 부르면 되는 곡이기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하려했다.[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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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밤이 다가왔다. 긴장이 되었다.

목에 기름칠을 하면 더 잘 부를 것 같아서 치킨을 먹었다.


순서 배치를 보았다. 

군종성당 주일학교 여자 선생님들 공연 바로 뒤에 배치가 되어있었다.

원: 아놔. 왜 이렇게 배치를? 

군종병: 기대할게요!

원: 완전 초라해지겠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왔다. 

단장님 가족분 내외를 포함해서, 병사까지 100명은 넘게 온것 같다.


점점 더 긴장이 되었다. 별 생각없이 승낙한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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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우와!!!!!!!!!!!!!!

여자 선생님들의 공연이 끝이 난것 같다.


군종병: 자 그럼 다음 순서를 소개하겠습니다. 화생방지원대의 정원호 병장, J병장, Y상병의 공연입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군인: 우와!! 짝짝짝 

박수를 쳐주었다. 착한 군인들.


원: 안녕하세요? falling slowly 부르겠습니다. 


Falling slowly를 불렀다. 

진심을 다해 불렀다. 노래가 끝났다.


원인은 모르겠지만[각주:2] 노래가 끝난 후 정신차리고 보니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갑분싸가 되어 진심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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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네!;;;;; 여러분 이어서 허각의 하늘을 달리다를 부르겠습니다. 


원: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쫒고 있었고. 여러분 박수!!

다행히 호응이 좋았다.  


원: 마른하늘을 달려 

군인들: 오오오오

놀랐다. 계획없던 애드리브였다.

군인 관중들이 훌륭한 무대를 창조해주었다. 


Y, 원: 허약한 내 영혼의 힘을 날개를 달 수 있다면(화음)

환호가 나왔다.


원: 마른하늘을 달려

군인들: 오오오오

참가자& 군인들 :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뒤는 그냥 같이 불렀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모두 울적했을텐데 정말 감사하게도 모두 무대를 열정적으로 즐겨주었다.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듣는 무대가 아니라, 관객도 함께 부를 수 있는 무대였다. 그냥 어울려 같이 놀았다.

내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참고: 전야제 연습과정에서 일어난 해프닝

https://ideaspace.tistory.com/545





  1. 경험이 있는 후임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본문으로]
  2.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falling slowly를 잘못 선곡한것 같다. 즐거운 성탄절에 모두 부대안에 있는 울적한 상황이다. falling slowly같은 노래를 부르면 더 우울해질 것 같다. 만일 다시 이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엄청 신나는 노래를 택할 것이다. (유느님이 왜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BPM이 빠른 노래를 선호했는지 알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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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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