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1때 였다.

당시 국어 선생님은 김수현 선생님이셨다. 

본인을 '벼리샘[각주:1]'이라고 하셨다. '벼리'는 어떤 일에 있어서 근본이나 뼈대가 되게 하는 것이라는 순 우리말이다.

벼리샘은 자신의 이야기를 종종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릴적 벼리샘은 호기심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 소녀였다. 

또 벼리샘에게는 우애깊은 오빠가 있었다. 밖에서 노는데 춥다고 하자 오빠가 낙엽을 모아 불을 붙여줬는데 하마터면 산을 태울뻔했다고 하셨다.


내가 배울 당시 국어 교과서는 교육부에서 일괄적으로 만든 교과서였다. 저자 중 한분은 고대 국어교육과 노명완 교수님이었다. 벼리샘은 그 분의 제자라 그런지, 교과서에 아주 충실하게 수업을 진행하였다. 현재 나는 문학작품을 그다지 많이 읽고 있지 않지만, 당시 나는 그 분을 통해 잠시나마 문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읽고 밑줄치고 시험에 나오는것을 가르쳐주시기보다[각주:2]는 인물들의 정서, 감정을 느낄 것을 강조하셨다. 가령 소나기를 배우면 관련된 노래나,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시고,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신 좋은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내 글을 무척 좋아해주셨다. 솔직하고, 담백하다고 하셨다. 당시 글쓰기 재능은 나와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나의 글쓰기를 칭찬하고 자신감을 많이 북돋아 주셨다. 

선생님은 국어는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일때 진정한 자기실력을 볼 수 있다며, 2학기 중간고사때 100% 올 주관식 국어문제를 출제하신 적이있다[각주:3]. 그 중 가장 배점이 높은 10점짜리가, '소나기' 소년의 입장이 되서 소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는데, 정말 진솔하게 썼다며 내 글을 다른 학생들앞에서 낯간지럽게 칭찬한 뒤 읽어주시던(?!) 기억이 난다.

교내 백일장때는 '엄마'라는 제목으로 어머니가 그동안 살아오셨던 삶과 어머니의 하루를 있는 그대로 썼는데, 교내 백일장 은상을 받았었다. 알고보니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라고 들었다. 


선생님은 당시 27~28 살이었고, 우리 학교가 첫 부임지였다. 

선생님은 언제나 열정으로 똘똘 뭉치신 분이었고, 그로 인해 국어 시간은 활기찼다. 

본인의 열정대로 따라오지 않는 반 아이들에게 때론 서운함도 보이기도 하셨고,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기도 하셨다. 열정으로 인해 감정적 소모도 많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상관없이 학생들을 한명 한명 보듬아 주셨던 좋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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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나기를 배웠다. 

벼리샘은 원래는 중 3 교과서에 실려있는 내용인데, 

요즘 아이들 감수성에 맞게 중 1로 낮추었다고 말했다. 


소나기를 읽던 날 벼리샘을 통해 이 곡을 처음 접했다.





  1. 몇몇 친구들은 이름을 살짝 고쳐 '버리셈'이라고 하였다. 하여간 센스쟁이들이다. [본문으로]
  2. 기억하기론 시험을 위한 수업이라는 느낌을 받은적이 없었다. [본문으로]
  3. 그 많은 학생 채점은 언제 다 하셨을까?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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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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