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은 신념을 지니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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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행복의 정복

9. 세상과 맞지 않는 젊은이

 

현대 사회의 경우 도덕관과 신념이 철저하게 여러 계층으로 갈라져있다.

Q. 언제부터 도덕관과 신념이 갈라지기 시작한걸까?

A. 종교 개혁과 함께 시작되었다. 청교도와 가톨릭교도는 신학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에서 견해 차이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계급 간에도 도덕관과 신념의 차이가 보인다. ex) 귀족들은 부르주아들이 용인하지 않는 여러 가지 행동을 허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분열이 존재한다. ex 1) 어떤 계층은 예술을 찬양하고, 어떤 계층은 현대 예술을 사악하다고 생각한다. ex 2) 제국에 대한 충성이야말로 최고 선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런 충성을 악덕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ex 3) 간통을 극악한 범죄로 여기는 사람도 있고, 몇몇 사람은 용서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 4) 가톨릭 교도들은 이혼을 심하게 금지하는 반면, 비가톨릭교도는 이혼을 결혼 관계의 수정 정도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 차이로 인해 특정 취미와 신념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회에서는 배척당하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평범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관이나 생활 방식을 가진 경우 엄청나게 많은 불행이 생긴다. 특정 사상을 받아들인 젊은이는, 자신이 받아들인 사상이 사회와 충돌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완전히 잘못된 견해라고 비난받을까 싶어 언제나 전전긍긍한다. 그들은 청년기뿐만 아니라 평생 이런 불행을 겪어야 한다. 그들은 적대적인 환경에 맞서서 정신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 엄청난 정력을 낭비해야 한다.

ex) 소설가로 유명한 브론테 자매는 자신의 책이 출판된 뒤에도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대담하고 당당한 에밀리 브론테에게는 문제가 안 되었지만, 샬럿은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정신적 고립감을 이기기 위해서는 뛰어난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내면에 이 정도의 힘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지배적인 신념과 관습에 순응한다. 하지만 이런 순응적인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도 아주 드물게 존재한다. 지적 또는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런 소수의 부류에 포함된다.

 

[이러한 소수 부류의]뛰어난 재능을 가진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몹시 불행한 청소년기를 겪는다. ex) 심각한 책을 읽으려고 하면 친구들이 비웃고, 선생님이 꾸짖는다. 좀처럼 보기 힘든 직업을 선택하고자 하면, 사람들은 욕하면서 아버지가 했던 직업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 이런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으려면 여론의 횡포를 모면해야 하고, 지적 소수파 구성원들이 서로 교제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나는 지나치게 반항적인 태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옹호하는 것은 단지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든가, 특정 분야의 책들을 읽는 것 정도, 즉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언행에서 가볍게 벗어난 경우를 말한다.

 

대중과 전혀 다른 취미와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관례에 순응하려 노력하면서 예민한 문제들을 피해간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으니 자연스럽게 신경 과민이 되고, 기분이 언짢으며 호전적인 태도를 취한다.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다른 사회로 옮겨가면 완전히 성격이 달라질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사라지고 상냥하고 외향적인 태도가 나타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대중과 다른 취미를 가진 젊은이라면, 직업을 선택할 때 가능하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직업을 골라라! 이는 수입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할 사항이다.

 

주위 사람들이 무지, 편견 등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 주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다면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ex) 불온 사상을 주장했던 갈릴레이와 케플러를 생각해보자. 현대에도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 역시 불온 사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험난한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젊은이들 또한 나이 많은 사람의 압력에 굴복해선 안 된다. 이는 분별력이 부족한 행동이다. 가령, 연극 생활을 동경하는 젊은이를 생각해보자. 부모는 연극 생활은 너에게 맞지 않는다. 연극을 한다면 인연을 끊겠다라고 반대할 것이다. => 물론 부모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원하는 바대로 해봐라. 만약 당신이 연극에 실력이 없다면 이후 연극계 전문가들이 충고를 해줄 것이다. 그때 가서 직업을 바꿔도 늦지 않다.

, 부모가 주장하는 바를 당신의 행동의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당신이 원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면 부모는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양보할 것이다. , 부모와 달리, 전문가의 의견은 항상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초보자는 늘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남의 의견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굶어죽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을 정도로만 여론을 존중하면 된다. 여론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것은 지나친 횡포에 자발적으로 굴복하는 것이고, 행복을 가로막기 십상이다. 여론에 무관심한 것은 행복의 원천이다.

 

구성원의 획일화는 위험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행동하는 사회보다는 인습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훨씬 더 다양한 개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괴팍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관례에 얽매인 행동만큼 재미없는 행동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타고난 성격대로 행동하자는 것이다. [,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여론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질 경우 사람의 마음을 옥죄고 발전을 저해한다. 이로 인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기는커녕 행복이 깃들어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없다. 행복의 필수조건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충동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언론에 대하여

오늘날 언론의 평가[특정인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 마녀 사냥에 대한 두려움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고도화된 언론의 보도 방법은 위험성을 점점 심화시키고 있다. 언론이 가하는 박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명예훼손 법보다 더 강력한 방침이 필요하다. 특정인에 대해 악의적으로 보도하여 무고한 개인의 일상 생활을 위협하는 관행은 금지되어야 한다.

=> 이러한 불행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법은 대중이 관대한 태도를 기르는 것이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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