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는 폭넓은 관심이 중요함을 주장한다.
Q. 폭넓은 관심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A. 자신의 직업과 벗어나있는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자신의 생활과 관련없는 문제에 대한 관심)을 말한다. 자신의 활동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폭넓은 관심이 이 장에서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폭넓은 관심’이 모든 종류에 대한 관심에 해당하는 것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의지력이나 신속한 결정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고, 감정을 피곤하게 해서도 안되며, 도박처럼 경제적 문제와 관련되어서도 안된다. 대부분의 오락물들은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반면, 경기 관람, 골프를 치는 것, 독서는 바람직한 활동이다. 단, 독서의 경우 자신의 전문적 활동과 관련이 없는 책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
자신의 생활과 관련없는 문제에 대한 관심(폭넓은 관심)의 결여는 불행, 피로, 정신적 긴장의 원인이 된다. 폭넓은 관심이 결여된 사람은 깨어있는 동안 중요한 일을 계속 집착하며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쉬지 못한다. 결국 자극에 민감해지고 분별력과 균형감각을 잃게 되는데, 이는 결국 악순환을 가져온다. 피곤해질수록 외부적인 관심은 더욱 줄어들고, 외부관심이 줄어들면 피곤함은 가중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러 가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은 줄곧 일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에 비해서 훨씬 쉽게 일을 잊으며 휴식을 취하기 쉽다. 결과적으로 훨씬 더 일을 잘 할 수 있다. cf) 이 점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룻밤 자면서 생각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주 현명한 셈이다. 한편 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은 직장인과 달리 일터가 집이기 때문에 장소 변화에서 오는 기분전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과 후에도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대학의 몇몇 교수도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성실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능률이 향상되는 것 같지도 않다.
세상의 조그마한 모퉁이에 대해 지나치게 흥분하고, 긴장하며, 감동하는 식의 태도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들지는 모르지만, 더 잘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폭넓은 관심사는 긴장을 이완하는 것 외에도 균형 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의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다보면, 자신의 일이 인간이 수행하는 전체 활동 중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잊기 쉽다. 우리는 짧은 일생 동안 이 행성에서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습득해야 한다.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무시하는 것은 극장에 가서 연극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같다. 세상은 비극 또는 희극적인 것, 기괴하고 놀라운 것으로 가득 차있다. 이러한 구경거리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삶이 베푸는 여러 특권 중의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협소하게 만들고, 결국 극단주의적인 태도를 빚어낼 위험이 있다. 이들은 마음에 드는 대상만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악은 무시해버린다. 이러한 극단주의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인간의 삶과 우주 속의 인간의 위치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다. ex)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정당 승리를 위해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다고 하자. 이때 정신적 시야가 현재에만 갇혀있는 사람은 세상에 증오와 폭력, 불신을 고안하여 승리를 거두는 경우를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보인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으나, 먼 훗날에 나타나는 결과는 형편없을 것이다.
반면, 인류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인류의 역사가 우주의 역사에 비해 얼마나 짧은지를 인지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벌이고 있는 싸움이 암흑시대의 퇴보를 무릅쓸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설사 당면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그 목적 역시 극히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결국 당면한 목적에 집착하기보다 원대한 목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행성이 얼마나 작은지,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이 얼마나 순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지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느끼는 사람은 비열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며, 사소한 불운에 안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는 늘 따라다니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강렬한 기쁨을 느낄 것이며, 생활에서 갖은 곡절을 겪는다고 해도 깊은 본질에 있어서는 늘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폭넓은 관심이 행복에 기여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경제적 곤란, 결혼 생활 같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걱정의 원인이 아닌 다른 일(장기를 두거나, 탐정 소설을 읽거나, 아마추어 천문학에 열중)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은혜이다. 걱정에 치여서 옴짝달짝하지 못하는 사람은 매번 인지자원을 쏟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필요한 순간에 발휘해야 할 힘을 소진하고 만다. ex)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경우 자신에게 닥친 불행으로부터 최대한의 고통을 이끌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이다. 그 슬픔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찾아서 해야 한다.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설령 하찮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기분 전환할 거리를 찾아야 한다.
올바른 기분 전환 방법은 사고를 현재의 불행과는 거리가 먼,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적은 관심사에만 생활이 집중되어 버리는 경우, 이 관심사가 슬픔에 압도되어 버리면 긍정적인 기분 전환 방법을 사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블행을 극복하기 위해 폭넓은 관심사를 기르는 것이 현명하다.
결국 한 가지 혹은 몇 가지 신념에서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감수성을 지녔다고 찬양할 것이 아니라 생활력이 부족하다고 탄식해야 한다. 언젠가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들의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 점에서 인생의 폭을 협소하게 제한해서는 안된다.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우리 인생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적인 관심사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부차적인 관심사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