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이야기를 접한 것은  어렸을 적읽던 따옥이 만화 채근담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이 책은 1997년 크리스마스에 아버지가 선물로 사주신 책이다. 물론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산타클로스가 쓴 글이지만 필체는 아빠필체라는 것을 4학년 꼬마아이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주려는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교훈을 주는 일화가 나오고 그 일화가 끝날때즈음에 나오는 짤막짤막한 채근담의 구절로 구성되어있다.

지금 이야기 할 제나라 추기이야기는 전국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당시에는 이 이야기가 주는 의미에 관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살면서 이 이야기가 지금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따옥이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만화 채근담

저자
권혁준 지음
출판사
파랑새어린이 | 1996-03-31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채근담은 '나물 뿌리의 맛'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쓴 나물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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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오는 책은 표지가 바뀐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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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齊)나라 편
미남
 제나라 재상(宰相) 추기는 키가 8 척이 넘고 대단한 미남자였다. 어느 때 정장을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던 그가 부인에게 물었다.
"우리 나라에 미남이라고 소문난 서공(徐公)과 나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낫소?"
"아무리 서공이라고 하더라도 대감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아직 만나지는 못하였으나 미남이라고 소문난 서공이었으므로 확신할 수 없어 첩에게 다시 물었다.
"서공과 나, 어느 쪽이 미남인가?"
"물론 대감이 미남이시죠."

 


그 후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물어 보았다.
"나와 서공을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남자답소?"
"그야 대감이시지요."

 


 다음 날 서공이 찾아왔다. 추기는 상대방을 보았는데 역시 자기가 따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여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았으나 보면 볼수록 열등감이 들었다.
그날 밤 추기는 이불 속에서 생각해 보았다.
"아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내 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첩은 내가 무서워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또 손님은 나에게 구하는 것이 있어 왔을 터이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다음날 추기는 입궐하여 위왕[기원전 356 년 즉위, 37 년 재위. 기원전 341 년에는 손빈을 등용해 위나라를 마릉에서 격파함]을 알현하고 위의 내용을 말했다.
"전하, 신이 보니 서공이 신보다 잘생겼습니다. 그런데 신의 처와 첩, 그리고 손님까지 입을 모아 신이 더 낫게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신의 처는 신의 편을 들어주기 위함이고, 첩은 신이 무서웠기 때문이고, 손님은 신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하온데 지금 우리 제나라는 영토가 사방 1천 리, 성이 120 개나 되는 대국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전하 측근의 여관(女官)은 전하 편을 들 것이며, 신하들은 전하를 두려워할 것이며, 나라 안 백성들은 전하의 환심을 사기에 급급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눈을 가리고 계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왕은 "잘 알겠소"하고 다음과 같이 포고하였다.
"이제부터 과인의 잘못을 직접 지적해 주는 자에게는 큰 상을 줄 것이며,
시중에서 또는 조정에서 비판하되 그 말이 과인의 귀에 들어오는 경우라도 작은 상을 줄 것이다."
 그러자 처음에는 간언하기 위해 오는 신하들로 궁궐 문이 깨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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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에서 제나라왕은 자신에게 비방을 하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왕에게 간언을 하려고 온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몇달후에는 그런사람도 없었다. 왕이 더 이상 고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솔직한 이야기를 하려하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하거나, 이루려고 한다면 모두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는 꼭 할 것이다., 이루고도 남을 사람이다." 등등 모두 좋은 말과 격려를 해준다. 그런 말속에서 나는 정말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기 만족속에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해온것을 보면 너무도 부족하다. 어쩌면 남들의 좋은말만 듣고 살면서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들의 이야기는 자신감을 북돋아 주지만 그것이 결코 본질이 될 수 없다. 지금 현 상황은 철저한 자신의 성찰 속에서 나온다. 결코 남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이 조금 더 냉정하게 현상을 보고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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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저자
한병철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2-03-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대한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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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붐비는 곳들 중 하나는 자기개발서 코너이다. 지금 서점에는 자기계발서로 넘쳐난다.

자기 개발서는 우리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카카오톡이나 개인 홈페이지 프로필을 보면 긍정의 메시지를 적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힘든 삶을 이겨내며 살아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을 좋게 말할 수 있을까?

 

한병철의 피로사회의 내용을 말하자면 간단히 "과거 윗 계급에게 착취당했던 시대를 넘어서 점차 우리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는 시대가 오고있다.(윗계급의 타율적인 것 없이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결국 공허감을 줄뿐이다. 그것에 관해 성찰하자!"라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착취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채찍질한다는 것이다 그뜻은 무엇인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것은 긍정이다. 우리가 읽는 자기계발서와 듣는 희망의 이야기(개인적으로 힐링?도 좋게 보지 않는다.)가 우리를 다시 소진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겐 당장에 도움이 되는 것같지만 결국 다시 희망을 향해 남은 에너지를 소진한다. 우리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병철 - 피로사회 참고)

우리는 모든 낙관을 소비했을때 한없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다.

 

자신이 겪고있는 치열한 고민없이는 결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참으면 돼"라는 생각은 어떠한 합리성도 없다. 합리성이 결여가 되면, 자신이 이것을 왜 해야하는지. 더이상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

나는 그런점에서 낙관주의와 자기계발서를 항상 경계해 오려고 애썼다.

나에게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어떻게 하면 될지 많이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큰 나무와 갈대가 있다.

큰 나무는 절대 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갈대는 잔 바람에 언제나 쓰러진다.

항상 상황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작은 상황에 부딪치지만 그런 상황들을 잘 겪어나간다.

언제나 낙관하는 사람들은 흔들릴리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 불어오는 큰 태풍에

나무는 쓰러지지만 갈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 힘은 무엇일까?

 

그 힘은 의문이다. 어떤 현상이 와도 내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 대책은 무엇인치 치열하게 생각해보고 고민해야한다. 무조건적인 긍정은 마약과도 같다. 문제에 관해 성찰없이 마음만 고쳐먹으면 편하다. 어쩌면 종교와도 상충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런상황에 처해있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각해야한다. 바람이 불면 생각하는 갈대처럼 항상 고민하고 이겨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큰 시련이 왔을때 맞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긍정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낸 사람은 정말 견딜 수 없는 큰 시련이 왔을때 부러진 굵은 나무가 될 것이다.

 

이 영상으로 끝 마칠까한다. (나는 이 사람의 정치적 지지자가 아니다. 우연히 본 동영상과 생각만 맞을 뿐.)

제목..;; 글쓴이가 이상한 사람인듯. 내용은 낙관주의의 경계로 보면 좋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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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저자
에리히 프롬 지음
출판사
문예출판사 | 2006-10-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출간 50주년 기념판 성숙한 사랑을 꿈꾸는 인류를 위한 현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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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에 관한 독후감을 발견하여, 이 글에 올리고 또한 생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지금에서 사랑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하였는지 서술 하려한다.

 

※ 내용은 기억도 희미할 뿐더러, 인터넷으로 요약을 금방 찾을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사랑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설 될 수 있을것이다. 이성간의 사랑, 종교적인 사랑, 전 인류애적인 사랑 등 보편적으로 쓰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한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나?

 어렸을때는 사랑이란 것을 주로 없이 못사는 것. 베풀기만 하는 것. 아가페 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부모님으로 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왔기때문에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즉, 간략히 말하면 사랑한다면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것, 이성간의 그리고, 신, 그리고 부모자식간의 관계... 즉 그 사람을 위해 온전히 바칠 수 없다면 사랑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사랑이란 것은, 상호간의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정서, 감정 등. 그러니까 서로 상대방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때 그것을 사랑으로 보았다.

 대학교에 오면서 사랑이란 것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것. 그러니까..예로서는 안치환씨의 "내가 만일"이란 노래처럼 그녈위해 노래하고, 그녈위해 바람이 되고, 비를 맞으면 우산이 되어주는 것. 서로 힘이 되어주고 의지하며, 서로를 지켜나가는 것을 사랑으로 보았다.

 

 시간이 갈 수록 사랑의 의미가 이렇게 변해왔다.

 

지금은 어떻게 보고있나?

사랑이란...지금보기에는 관심이다. 그러니까..옛다 관심..이런것이 아니라.

상당히 말로서 정의하긴 어렵지만, 감정이 포함된 관심이다. 하지만 좋은 감정이어야 한다.

만일 나쁜감정이라면 증오가 될 것이다.

 

 그 사람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 그 사람은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이 옷을 입으면 어떨까? 항상 그 사람에 관해 생각하고, 그 사람의 행동하나하나를 유심히 보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라고 본다.

 내가 내린 나름의 정의에 따라 내가 이런 상황에 놓였을 경우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어느샌가 인정하게 될것이다.

 

미안하지만 나에게 아직 그런 사랑은 없는 것같다.

지금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나" 이고, 내 미래를 어떻게 끌어가야 하나에 많은 초점을 쏟고 있다.

안타깝게도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모티브가 없다.

 

어느날 모티브가 생긴다면? 관심의 초점이 나에서 타인으로 바뀌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것에 관해 사랑의 기술에서는 나 자신을 더 가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외모를 단장하고, 꾸미고, 말재주를 늘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사랑을 받기위한 수단들에 불과하다. 그런 것은 수동적인 활동일 뿐이다. 사랑은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에리히 프롬은 말하고 있다.

결국 사랑을 다른사람에게 주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도 다른 기술 처럼 (목공, 손기술, 여타기술등등), 자기 수련이 있어야 하며, 인내하고, 정신 집중을 하고, 거기에 관심을 갖고 (마치 기술을 익힐때처럼) 배우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경험을 많이 가져보라는 것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컴퓨터게임, 공부처럼 사랑도 마찬가지 인것같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쉽게 Clear할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계속 도전하면 점차 나아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진실한 사랑을 할 수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나 자신에 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고 크게 동의했던 부분은 자신의 관한 수양이다.  

결국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완벽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되었을시에 좋은 분이 따라오고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동안은 내 자신은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소양은 갖췄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어떤분이 나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 조언은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랑이란 이상속의 (異想) 벽을 깨주실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의 있어서 실천적인 부분은 너무도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 분이 말하길 사랑은 불완전한 두사람이 서로에게 맞게 적응해 나가면서 완벽해 지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으며, 완벽한 사람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늦은 것이라고 했다. 결국 너 자신이 여러사람을 만나면서 자신과 그나마 맞는 사람을 찾는 과정을 통해 여러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중에 더 좋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 또한 옳다. 지금와서 살펴보니 에리히프롬은 실천부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론(내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랑의 정의가 뭐고...) 또한 중요하지만 이것만 알아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앞에 나온 이야기는 실천 부분이고, 그것 또한 양립하면서 가지고갈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오해하기 쉬운 것이, 실천이란 것이, 타인을 홀리는 말솜씨라던가, 외모, skill이런 것을 전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있으면 좋으나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관심을 주고받으며 서로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속히 말하는 루저(키가작거나, 돈이 없거나 등등...) 이런것을 통해 쉽게 좌절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물론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사회에도 문제가 있다. 단순히 그런것 없이 연애란 것이 현실적인 요소만 전적으로 생각 되는 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만나 모든것을 이뤘어도 결코 행복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분명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괜히 자신감을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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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하기 위해 그동안 먼 길을 돌아왔는데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한다.

"옷을 잘 입고 다녀라" "헤어스타일 좀 바꿔라" 등등등...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내겐 사랑에 있어서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만일 내 겉모습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그 정도 가치밖에 안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예전에 프로포즈시에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 보다는 사랑을 할 시 내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가란 물음에 머뭇거렸었는데, 요새들어 조금 더 실천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사랑이란 것을 통해, 서로가 서로로 인해 더욱 발전하고, 내가 타인이 되고, 타인이 내가되는 정서적인 교류를 느끼고 싶은 순간이 생기기를,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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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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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0000)

The Bicycle Thief 
9.4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
출연
람베르토 마지오라니, 엔조 스타이오라, 리아넬라 카렐, 지노 살타메렌다, 비토리오 안토누치
정보
드라마 | 이탈리아 | 96 분 | 0000-00-00

 

 

 

 

1. 범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주인공도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자전거를 도난당하고, 범인을 잡았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마을사람들에게 모욕만 당하면서 주인공은 큰 좌절감에 빠지게 되었다.

자전거는 그에게 생계수단이었던 것 뿐만 아니라 미래이고, 가족들의 희망이었다.

자전거가 없어진 의미는 무척 컸다. 결국 그도 자전거 도난을 결심했고, 주인없는 자전거를 훔치려다 잡히게 되었다.

도난 당한 사람은 주인공을 용서한다. 그 이유는 주인공 아들(브루노)의 눈물이었다.

브루노의 눈물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실망감이 섞였던 눈물이었을 것이다.

범죄란 것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2012년 9월 초. 현재 지금은 성범죄로 말이 많다. 그러기에 많은 대책들이 나온다. 모 정치인에 말로는 사형제를 실행해야 한다. 어떤 국회의원들은 처벌의 강도를 훨씬 높여야 한다. 경찰을 늘려야한다. 수상해보이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불시 점검을 할 수 있어야 한다등. 한마디로 경찰의 권위를 높이고, 법을 더 엄격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게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범죄란 것은 결국 사회적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를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본다.

범죄란 것은 이성에서 나오기보다는 감성에서 주로 나온다고 생각한다.(특히 흉악범)

아무리 법을 높여도 감성적인 부분을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은 무엇을 생각하기도 전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생각하는 대책은 무엇인가?

결국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다. 부모도 먹고사는 문제로 서로 가족들에게 소홀하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빈곤속에서, 의지를 가지고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서는 찾기 힘들다. 범죄자란 대개 어떤사람들인가? 우리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둠속에 있던 사람들이다. 

범죄를 막기위한 것은 높고 무서운 법이 아니다. 나그네의 코트를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다. 이 처럼 낮은 자를 향한 정책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 자전거에 대한 여러가지 추억.

2-1 자전거를 처음 도난당한 그 날. 그 인연

때는 6살이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505자전거를 사주셨다. 지금은 볼품없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갖고 싶던 세발자전거였다. 아파트에 살고있던 나는 그것을 타고 5단지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타면서 하늘을 보았다. 푸른하늘에 달같은 것이 떠있었다. 무척 아름다웠다. 대낮에 달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자전거를 도난당했다. 504동에서 3명의 아이들에게 빼앗겼다. 너무 재미있게 탔기 때문이었을까? 여튼 여러아이들은 내 자전거를 이유없이 빼앗았고, 나는 울기만 했다. 나는 싸움을 잘 못했다. 결국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뿐이었다.

엄마에게는 빼앗긴 동만 알려줬을 뿐인데 자전거를 용케 찾아오셨다.

주도해서 뺏은 아이는 박OO이라는 아이였고, 나보다 한살이 어렸다. 그 아이는 나와 뒤에 성당에서 만나게 된다. 그때 뺏기고 빼앗겼던 위치는 어느덧 바뀌어 있었다. 긴 얘기 이므로 나중에....

 

2-2 누가 영화 '자전거 도둑' 주인공에게 돌을 던지랴?

때는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나는 어머니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 문제의 세발자전거 이후로 나는 자전거를 사본적이 없었고, 친구들이 두발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릴때면 내심 부러워지곤 했다. 나는 엄마에게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넌지시 얘기했다. 그 뒤 엄마는 어디서 가져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꿈돌이 자전거를 가지고 오셨다. 초등학생이 타는 두발 작은 자전거이다. 엄마는 가져왔으니 잘 타고 다니라고 했다.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8비트 게임기만 정신없이 했던 나에게 자전거는 하나의 새로운 전환이었다. 그것을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 김민구와 5단지를 타고있었는데 2명의 여자아이와 그들의 아버지가 내 자전거쪽으로 왔다.

"이거 맞지 않아?" "그러게 안장이고 핸들이고" "아빠, 이거 우리꺼 아니야?"

세 명이 내 자전거 주위로 와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던 것이다.

"너 이거 어디서났어?" ".....엄마가 타라고 했어요" "정말 이거 너꺼 맞니?" "네 맞아요.." "그래, 일단 알았다."

아저씨는 두 딸을 데리고 갔다.

"야 이거 너꺼 맞어?" 김민구가 물었다. "그럼 맞지. 엄마가 준건데"  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위장을 하자. 또 보면 뭐라고 할 거 같은데?"

나는 민구와 운동장에 갔다.

그리고 페달에 낙엽을 붙이고 종이를 끼워넣고 안장높이를 바꿨다. 어떻게 해야 못알아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와서 그날 있던 사실들을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어느날 자전거는 없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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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당시 우리는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그 당시 사실상 생계는 어머니가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족은 다섯명이었고 두 동생은 8살 6살 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가 자전거를 구입할 여력이 있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 하지만 당시에는 아픈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어머니께는...

 

2-3 자전거를 도난 당한날

돌아가는 길을 기억한다. 가장 쓸쓸하고 비참했던 날.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마땅한 자전거가 없어, 아버지가 타시던 비싼 mtb자전거를 타고다녔었다.

하아....잊어버렸다. 자물쇠는 확실히 잠궜으니 근 13~14시간 되는 시간안에 자물쇠를 끊고 도주를 했다보다.

'아버지가 운동용으로 타고다니시던 건데...'

배회하고 배회했다. 아무리 봐도 빨간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괜히 자물쇠가 없는 자전거를 찾아보게 되었다.

1시간 30분을 배회하다 집에 왔다. 절망을 주는 말을 가족들에게 차마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버지께 직접 말씀을 드렸다.

"저..아빠 자전거를 잃어버렸어요."

"할 수 없지...... 괜찮다."

 

과거는 돌릴 수 없는 것인가? 어떤 상황이 오든 그 상황에 빠르게 수긍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그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후에 후회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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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사와T교수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유진오 (범우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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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과 현실이 부딪힐때....인간은 모순덩어리다. 
당연한듯.->그렇다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사이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할까?

글에서 처럼
인간은 모순덩어리라는 것이 맞다.
특히 지식인의 경우는 더 그렇다.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상과 어쩔 수없이 부딪치는 것같다.

정치인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좋은 이상사회를 만들겠다고 막상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 해도
정치인이 되기위해서는 연줄이 필요하다.
정치인이 되면 그 연줄에 크고 작은것이 좌우되기 쉽다.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기 쉽지 않다.
비록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지않다해도 자신의 정당이 그렇게 해나간다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도저도 아닌꼴이 된다.

대학원 생활도 마찬가지다.
기사를 보면 심화된 연구를 위한 대학원 생활이 막상보면
교수들의 노예생활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들도 그게 옳지 않음을 알고있지만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한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군대에 있을때다.
이병으로 처음 입대했을 당시. 많은 악폐습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시간동안 변하지 않았고 없어지지 않았다.
그들 선임은 자신들이 겪어오면서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난 불합리 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병이 바꿀수는 없었다. 그 체제에 순응해야했다.
선임이 되면 만들고 싶은 부대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집단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 내 생각을 숨기고 규칙에 따랐다.
세월이 흘러 병장이 되었다.
무언가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하지만 나 혼자만으로는 힘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 후임들은 누구보다도 똑똑했고 결국 동기들과 후임들의 도움으로 악폐습을 많이 없앨 수 있었다.
(다 없애지는 못했다...완전한 이상은 불가능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타협할 것은 먼저 하고 그 뒤에 타협하거든 계획하고, 실현하라.
하지만 앞에서처럼 혼자서 이룰 수는 없다.
조광조도 훈구세력을 개혁하려 했으나 섣부르게 서둘러서 실패했다. 기회를 보고 상황을 본뒤에 용의주도하게 계획한뒤 실행해야 성공하는 것같다. 물론 그 긴 기간동안 자신의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한다.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H교수에게 잘보이고, 교장에게 잘 보인뒤 뒤통수를 탁! 이렇게 되는건가...;;;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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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아래서(세계문학전집50)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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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입신양명, 공명심이라는 가치에 무작정 공부하고 있지는 않을런지. 주인공 한스를 보며 현재 내 자신을 대조해봤다. 전역하기 전 5일간 바쁘게 읽었던 책인데, 전역하고 나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설정하는데, 이 책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스가 죽음을 맞기전까지, 어른들의 말대로 친구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진리를 향해 가는 것은 그 만큼의 희생이 따르는것같다. 알면알수록, 더 혼란스럽고 모르는 것도 더 많아진다.
그냥 모르는 채로 지낸다면 혼란스럽지도 않고 행복할 수있을까? 그냥 걱정 근심없이...

 한스가 방황했던 이유는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과, 주위에서 요구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자연과 어울리고, 본능에 충실하고 싶었을뿐이었다. 헤세는 [예전으로 돌아갈 기회는 없다고 한다. 나무를 자르면 순이 돋아나지만, 그것은 겉모양에 지나지 않으며 다시 나무가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상당히 회의적이다. 하지만 한스가 구원받을 기회는 있었다. 바로 '사랑'이다. 본능에 충실한 열정적인 사랑이 모든것을 잊게 해 줄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사랑은 떠났고, 또 노동이란 것으로 다시 불씨를 살려보려 했으나, 결국 술에취한 한스는 익사하게되었다.

 젊은 날의 방황이 없다면 불행할 것같다.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못찾는다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생, 결국에 진정한 나는 없을 것이다. 즉, 주체성이 없다면 퍽 불행한 일이다. 자신의 주관을 가질때, 다름을 알고 비판할 수있는 능동적인 인간이 된다. 하일러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럼 그냥 주체성 없이 만들어진 꿈속에서(세속적인) 노력하여 목적을 이루고 성공한다. 그렇게 살아갈 순없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답을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노력하지 않는 자는 도태되는 것이 이 사회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밑에 깔리게 되는 것이다. 필사적으로 달려야 한다. 마치 한스가 그렇게 좋아하던 여름방학을 공부로 써버리듯이 말이다. 이 게임은 소수의 승자만 승리하고 다수는 패하는 마치 배틀로열과 같다. 패자에게는 인정사정 없다. 아주 잔혹하다.

 헤르만 헤세는 대안을 자연에서 찾은것같다. 자연을 즐기는 것은 누구나 다 누릴수있지 않은가? 그리고 인간이 가장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곳이다.

 인상깊었던 책 구절이 있다. [선생은 천재보다, 덜 똑똑하지만 말 잘듣는 학생을 원한다. 천재는 반항하고 비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에 기여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그들이다. 결국 기성세대들이 아이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만들어진 꿈을 주입함으로서 마음에 맞는 아이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현재, 이 시대를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했을때, 이 책은 분명 지금까지도 읽을 수있는 명작이다.

 나는 여지껏 공부를 해왔다.(물론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하에 게임을 했지만.) 그리고 꿈은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경쟁했다. 여름방학에도, 겨울방학에도 공부를 했다. 많은 학생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남을이겨야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있고, 그 꿈을 이룰수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나를 부러워했기 때문에. 난 야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말은 학창시절동안 내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았다는 말로도 들릴 수있겠다. 내 자신에게 가슴으로 물어보기 전에, 나는 목적없이 공부하고 있었으니까.

 이 책을 읽고 참 씁쓸했다. 쓰디쓴 보약을 먹은 느낌이랄까? 아직 나는 화학이란 학문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했기때문에, 공부를 더 하려고 하지만. 과연 "화학"이란 학문이 내 가슴을 울릴 수있을지.(Oh! chem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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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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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부터 꼭 읽고싶은 책이었는데, 휴가나와서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읽었다. 
말년휴가때 할일이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여튼 뭐 잘읽었다.
김예슬선언오늘나는대학을그만둔다아니거부한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예슬 (느린걸음, 2010년)
상세보기

독후감.

 이 사회는 뭔가 잘못된것 같다.  사회는 행복해지기위한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남보다 앞서기 위해 치열하게 산다. 좋은 대학교 가기위해, 좋은 곳에 취업하기위해, 승진하기 위해 살아남기위해... 참 이상한 것은 사회가 지나면 지날 수록 인간이 살기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하는데, 어쩌면 심리적으로 뭔가 쫓기고 더 불행한것같은 이유는 뭘까? 인간이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수있을까? 물론 세상은 윤택해지고 풍요로워 졌지만, 그 시대에 안살아본 탓일까?
 
 스스로 질문해봤다. 공부를 왜하지? 성공한 인생을 살기위해. 그럼 성공한 인생이란 뭘까? 의식주가 갖춰진 환경,  예쁜 부인과 자식들. 그럼 좋은 차, 집이 필요할까? 꼭 인생을 살기위해 갖추어야 할 요소일까? 살아가면 갈수록 뭔가 기준은 높아진다. 삐삐->시티폰->핸드폰->스마트폰 이런식으로 바뀌면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나? 무언가 사회의 기준은 높아진다. 이것이 없이는 사회에서 살수없으니말이다. 그럼 우리는 또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계속 열심히 일해야한다. (글과 관련은 없지만 기계에 우리 생활이 종속되는것은 점점 더 심해진다.)
 
 지금 취업이 힘들때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업은 점점 힘겨워질것이다. 취업문에 통과하기 위해 사람들은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스펙은 점점 더 높아질것이다. 100으로 정했다면 모두가 치열하게 해서 100을 넘기면 200으로 정해서 또 그 기준을 만족하는 합격자를 뽑을 것이다. 20대의 젊음은 사라진다.

 사실 현실이 그럴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학생들은 대학교를 취업을 위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이 지식을 탐구하는곳? 진리를 연구하는곳? 아니다. 일단 취업이 잘 되어야 하는것아닌가?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그들이 회사에 취업하면 대학에서 배운것과 다르게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것이다. 사회의 일꾼을 만드는 곳이라기 보다는 취업을 위한, 취업의, 취업에 의한 곳이 되버렸다. 영어말하기, ppt, 발표능력. 기업입장에서 보기좋은 물건들을 만드는 기술. "저를 데려가세요."

 김예슬씨는 이런 상황에서 과감한 선택을 했다. 자신은 용기가 없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세상을 향해 선언했다고 하지만 어느누가 그녀를 용기없다고 생각하겠는가? 세상을 향해 물음표를 던진 그녀의 행동에 경의를 표한다.

 난 글쓴이처럼 용감하게 결정할 수 있을까? 대학생이란 신분을 버리는 순간, 맞딱드릴 세상이 너무도 두렵다. 당장 생계를 생각해야한다. 아마 한순간에 알바인생이 될거다. 전전하다 가정을 이루면, 알바경력으로 중소기업같은 곳에 취직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부터 자식이 장성할때까지 계속 먹고살아야 할 걱정을 해야한다. 무척 어려울 것같다. 

 나의 꿈은 끊임없이 공부(철학, 순수과학, 역사, 예술등)하고 그 공부한 지식을 나중에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다.(글을쓰는등의 창조활동.) 지금 나는 화학을 전공하고있다. 목표대로라면 대학원에 갈것이다. 하지만, 대학원 연구도 이미 기업이랑 연계되어있는 곳이 있어, 학문에 열의라기 보다는 돈되는 학문이 비중이 클것이란것은 당연한것이다. 연구자체도 돈이 필요하기때문에 기업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열악한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연구활동도 돈의 논리가 어쩔 수 없이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가보다.
 
 (다른 사람과 달리) 나의 경우는, 취업이 주(主)가 아니기때문에, 대학교는 꿈을 이뤄줄 수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분명 대학을 포기하게 되면 계속 공부할 수있는 기회는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예슬씨와는 달리 대학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김예슬씨는 자신의 가짜꿈(=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꿈, 오염된꿈)을 가지고 공부를 해서 소위 명문대란 곳까지 왔다. 대학교에와서 자기자신에게 가슴으로 물어보고 이것이 아님을 알고 과감한 결정을 했다. 누구나 다 그럴것이다. 우리의 문제니까. 나란 사람도 만들어진 꿈으로 공부를 했고, 현재까지 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에 관한 성찰인 것 같다. 좋은 대학에 가고보자라고 일단 공부만 해서 대학교에 입학을 하면 그제서야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찾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미 선택은 늦었다. (늦은때가 가장 빠른것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탓도 있지만 성찰을 못하는 주된 이유는 사회의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학벌주의, 엘리트주의가 이러한 문제를 부추기고, 나아가 경제에 악이되는 사교육 문제의 주범이지 않은가? 결국 난 또 사회에 화살을 돌리고 말았지만......
 
 한국사회가 타락하지 않은것은 이러한 희망의 작은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있기때문 아닐까? 나는 이런 이상주의적인 생각이 언젠가는 올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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