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고기 먹자 - 2

심심풀이 2024. 4. 25. 21:42

전편에서 이어지기 때문에 전편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전편 주소는 https://ideaspace.tistory.com/1892이다.

친구가 단체방에 (질기면서) 쫄깃쫄깃한 고기를 먹고 싶다고 카톡을 보냈다.

이 날은 말만하면 개그가 되는 날이었다. 

 

(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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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로 '유체'를 살펴보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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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 정말 빡센 학기가 있었다.

일주일에 1~2번 정도는 꼭 밤을 샜었는데, 공부를 끝나고 기숙사 가는길에 듣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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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모두가 나만 미워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죽인다고 생각하거나, 감옥에 가두려한다는 생각은 극단적인 피해망상이다. 이 장에서는 그러한 극단적인 피해망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피해망상을 다루고자 한다. 가벼운 피해망상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거나 불친절하다는 생각인데, 이러한 피해망상의 원인은 사실 자신에게 있다. 자신이 가상으로 지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물론 그들의 주장에 이상한 구석은 없지만, 아무리 운이 나빠도 늘 그렇게 많은 악당을 만나는게 실제로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개연성의 법칙에 입각한다면 사람들마다 겪는 냉대의 양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설령 말마따나 늘 해코지를 당한다면, 아마 그 사람 자신이 그런일을 자초할 만한 원인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만약 자신이 피해를 당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1. 입지도 않은 가상의 피해를 주장하거나, 2. 남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짜증나는 행동을 본의아니게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장에서 나는 피해망상증의 요소를 찾아내는 방법, 그리고 그 요소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피해망상증은 행복한 삶을 방해하기에, 이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피해망상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피해망상은 0. 험담에 대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입방아를 찧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헐뜯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나서 어쩔줄을 몰라한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태도는 극히 정상적인 것이지만, 이 증상이 심해지면 피해망상증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들이 단점을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친구들도 당신을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만약 친구로부터 당신에게 결점이 있다고 듣게되면, 이 사실을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마라. 부디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피해망상은 1. 자신의 장점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내가 본인의 장점을 과장하는 성격을 지닌 극작가라고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쓴 희곡이 실패했다면 나는 극장인과 배우, 평론가들이 나에게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들이 나같은 천재가 끼어드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으며, 나는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실패했다는 사실로부터 잘못된 균형감각을 가지게 된다.

 

또한 피해망상은 2. 박애주의적인 유형에서 비롯된다. 이 유형의 사람은 원치않는 선행을 베풀고는 그들이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한다. 그런데 이들이 선행을 베푸는 동기는 대체로 순수하지 않다. 첫째로 선행은 대개 권력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두번째로 선행은 질투심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 , 도박, 게으름 같은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질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결국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쁜 행동(, 도박, 게으름 등)을 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 1) 과거 금연법을 보자. 비흡연자은 선행을 이유로 금연법에 찬성을 던졌는데, 이들은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는 것에 대해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흡연자들은 자신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인생을 바쳤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 실망한다.

ex 2) 정치 세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치가는 자신이 공적인 이유로로 법안(가령 금주령, 금연법, [현대:셧다운제?])을 추진했으며 이를 선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자신에게 고마워하지 않고 혐오하는 것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결국 이러한 실례로부터 네 가지의 일반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네 가지를 깨달으면 피해망상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다.

1.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반드시 이타적이지 않다.

2.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3.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4.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지 않다.

 

나는 이 네 가지 원칙에 대해 순서대로 언급하고자 한다.

1.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반드시 이타적이지 않다.

첫 번째 원칙은 특히 자선가와 정치가에게 필요하다. 이들은 보통 자신들이 인류에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선가와 정치가들은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저마다 세상에 대한 나름대로 견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자선가와 정치가의 선행 동기가 권력욕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다른 동기가 있는데 이는 허영심이다.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이란 직함을 위해 출마했다고 비웃는다. 국회위원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놀라지만, 돌이켜보면 유권자들의 말이 옳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으로 보아 이타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타인에게 우호적인 관심을 갖는 경우가 있으나, 나는 이러한 관심도 이기적인 동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인습적인 윤리가 강요하는 이타심은 사실상 거의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자선가와 정치가들은 본인들이 대단한 경지의 이타심에 도달했다고 확신하지만, 이러한 자기기만은 쉽게 피해망상으로 이어진다.

 

2.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이 이야기는 극작가의 희곡 사례를 통해 이야기한바 있다. 이러한 극작가가 본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본인이 정말로 천재일 수 있다. 이 경우 본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맞다. 그의 고집은 영웅적인 것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두 번째 경우라면 길을 고집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는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본인이 천재인지 아닌지는 죽고 백 년쯤 지나서야 결정될 것이다.

만약 본인이 천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면 한 가지 평가 기준이 있다[물론 백이면 백 다 들어맞지는 않는다]. “어떤 관념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껴서 작품을 쓰는가? 아니면 갈채를 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작품을 쓰는가?”

천재(진정한 예술가)라면 갈채를 받고 싶은 욕구는 부차적인 동기이다. 만약 갈채를 받고 싶은 욕구가 주된 동기라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갈채를 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면 꼭 해당 분야가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일도 무리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배후의 음모로 인해 당신의 재능이 높게 평가받지 않는다고 여긴다면, 이는 당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당신의 재능이 대단치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는 물론 고통스럽겠지만, 고통의 끝을 넘어서면 다시 행복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3.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다른 사람(특히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라. 물론 딸이 병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이성에 어긋날 정도의 이타심이다. 우리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당신의 입장에서 인생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타인을 위해서 인생의 근본 노선을 어그러뜨릴 것이라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물론 큰 희생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두터운 사랑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되고, 희생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판해서는 안된다.

 

4.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지 않다.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해코지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직업과 관심거리가 있기 때문에 남을 해코지하는데 집중할 여력이 없다. 물론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같은 위대한 인물이라면 모든 행동이 그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실제 영국 정부의 활동은 나폴레옹 타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인물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이는 정신병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이러한 자기기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진실을 단호하게 직시하여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 진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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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서양철학사를 완독하는 것은 예전부터 가져온 소망이었지만, 긴 분량에 압도되기도 했고, 여러 작업으로 인해 여력이 허락되지 않아 지체되기만 했었다. 더 이상 길어지면 안될 것 같아, 최근에 틈틈히 러셀 서양철학사를 읽으려 시도하고 있다.

최근 러셀 서양철학사와 관련한 책 리뷰를 보다가, 평점 2점을 준 리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공감표시도 제법 있었는데, 평은 다음과 같다.

"야심차게 쓰인 철학사책이지만 한 사상을 담백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는데 치중해있다. 자기자랑은 철학사책의 미덕이 아니다."

가혹한 평가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이 정말 타당할까? 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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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사책의 미덕? : 철학 사상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 진정 가능하긴 한가? 

저자의 '철학사책의 미덕'이 무엇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해석은, 최대한 의견을 내지 않고(주관없이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해당 철학자 텍스트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치중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객관적인 텍스트 해석이란 것이 정말 가당키나 할까? 저자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 독자의 주관이 가미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 같다.

가령,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에 대해 어떤 학자는 과학의 합리성에 위협을 가하는 사람으로, 다른 학자는 합리성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해석한다. 또한 "어느 것이든 좋다"라고 외친 파이어아벤트에 대해 과학에 있어 최악의 적(The worst enemy of science)으로 본 학자가 있는 반면, 파이어아벤트를 온건하게 보는 진영도 존재한다. 

이러한 해석 논쟁은 텍스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관이 필연적으로 개입함을 잘 보여준다. 같은 텍스트를 읽었음에도 중요하다고 간주한 텍스트(글귀)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해석 중 옳은 해석은 무엇일까? 만약 그들 모두 자신의 해석이 정당함을 설득력있게 보이고 있다면, 이는 결정하기 힘든 열린 문제이다.

러셀도 철학자를 해석하는 것에서 자신의 주관이 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러셀은 철학자의 견해를 왜곡한 것일까? 완독은 아직 못했으나 그렇다고 결론내리긴 힘들 것 같다. 러셀은 나름의 문헌과 근거를 들어 자신의 해석에 대해 나름의 정당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령 러셀의 주관적 해석이 가미되었다고 해서 이를 "'철학사책의 미덕'을 위반했다"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곡이라고 밝혀지지 않은 이상, 이러한 결론은 무척 성급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중립적인 텍스트 해석? 가당치도 않다!]

 

2. 자기자랑? : 철학 사상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제기하는 것이 뭐가 그리 못마땅한가?

저자의 '철학사책의 미덕'에 대한 또다른 해석은, 철학사를 다룬 책이라면 철학자의 사상을 담백하게 설명[각주:1]하는데 집중해야지, 괜히 철학자를 비판하는 식의 자기 자랑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다시 말해, 저자가 혹평을 가한 이유는 아마 러셀의 비판이 들어간 점이 아닐까 한다. 즉, 저자의 사상이나 -담백하게?- 소개하면 되지, 본인이 괜히 나서서 철학자의 견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등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중립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이미 텍스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해석자의 주관이 개입되므로, -철학자의 문헌을 복사하는 것 외에는- 객관적인 서술은 어려울 것이다.]

러셀 서양철학사는 다른 철학사 책 보다도 러셀 자신의 특유의 견해가 가미되었다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즉,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한 뒤,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례로 플라톤 장에서는 플라톤을 소개한 뒤, 플라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 철학자의 견해를 그냥 본인의 의견없이 단조롭게 서술하는 책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의견없이 지식의 단조로운 나열은 교과서와 다를 것이 없다. 물론 교과서도 정보 전달 측면에서 나름의 중요성이 분명 있지만, 이러한 서술 방식이 철학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철학적 글쓰기든 철학적 사고든, 결국 철학이란 것의 요지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설득력있게 정당화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러셀의 글쓰기 방식(정당화 방식)은 분명 철학적 훈련을 하는데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셀의 이러한 의견 개진은 우리의 생각은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으면서, 정보 전달(철학자의 사상)뿐만 아니라, '러셀의 견해가 정말 옳은가?, 철학자를 변호할 여지는 있나' 등에 대해 추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철학자들의 논의도 더 풍부해 질 것이다. 즉, 러셀의 논의로 인해 촉발되어 다른 철학자들도 여러 의견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다양한 논의들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논의의 장을 흥미롭게 지켜보면 된다. 이러한 심층적 논의들은 우리의 지적 성장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러셀의 의견 개진은 단순히 '자기 자랑'으로 격하할만한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러한 평이 정말 이 책에 유효한 비평일지 의심스럽다.

 

(23.02.15)

 

 

 

  1. 다만, 사상을 '담백하게' 설명하는게 무엇인지는 분명하진 않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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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시절에 실험에 대한 생각을 적은 편지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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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정원호 학생입니다. 말씀하신 후에 집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느낀 사항들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1. 실험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실험이란 원래 원하는대로 잘 안나오는게 당연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험을 하기전에 계산을 통해 이론적으로 이런값이 나올 것이다 예상을 하고 실험을 하지만, 역시나 원하는 데이터가 나오기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원하는 데이터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을 경우 필요한 것은 인내와 체력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에디슨이 발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고자 했던 끈기와 집념,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학부과정에서는 시간적인 한계 상 많아야 2~3번의 시도밖에 할 수 없지만, 나중에 학부과정을 졸업하여 전문적으로 공부를 할 시에 이러한 상황에 부딪친다면, 결국 체력이 밑바탕이 된 상태에서 포기하지 않고 끈기를 더욱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실험 수업을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2. 창조, 발견의 과정은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실험 수업은 노력의 발견 과정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에서 실험은 2~3번 과정을 통해 이러이러한 결과가 나왔다라고 결론짓지만, 이 실험을 처음 시도한 과학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수많은 가정을 하고, 수많은 반복된 실험을 통해서 결론지은 것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화학은 돌턴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업적과 성취속에서 이뤄진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4~5시간의 실험은 과거 과학자들의 과정에 비하면 힘들다고 말하기는 초라할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3. 작은 것을 잘 챙겨야 한다.

저는 세세한 부분들을 잘 챙기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끔 덜렁대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분석실험의 경우 결코 사소한 실수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작은 오차도 큰 차이를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지시약의 경우, 우습게 보기 쉽지만, 색깔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란 이유로 많이 넣어서는 안됩니다. 지시약 자체가 산이나 염기로 작용할 수 있기때문에 많이 넣을시에 반응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콩나물 500g과 콩나물 501g은 별차이가 없지만 화학의 경우 시료 1g만 달라도 큰 차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실험은 특히 주의와 집중을 요하며, 역설적으로 작은 것이 매우 큰 차이를 보임을 (당연한 것이지만)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상입니다~!

(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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