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durl.me/3ojbr9

"'피닉제'(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 이인제 대표의 정치 역정도 선진당을 많이 닮았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통일민주당 의원으로 국회에 등장한 그는 3당 합당을 거쳐 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다.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여론조사 지지율 30%를 믿고 신한국당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 15대 대선에 출마해 김대중, 이회창 후보에 이어 3등을 했다. 그 다음 해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한 이 대표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고향인 충남 논산·금산에 출마해 3선에 성공했다.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하자 또다시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합류했다. 그러나 군소정당으로 추락하자 이 대표는 2007년 탈당해 구 민주당 계열의 민주당으로 간다. 그렇게 출마한 17대 대선에서는 득표율 1%도 넘기지 못했고, 대선이 끝나자 통합민주당에 합류했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하자 다시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5선에 성공했고, 19대에서는 자유선진당 의원으로 6선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모든 정당, 여야와 무소속을 넘나드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남긴 이 대표는 18대 대선을 앞두고 친정인 새누리당 복귀를 앞두고 있다."
cbs 노컷뉴스 윤지나 기자. 2012.10.2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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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정당이란 뜻은 "정치에 대한 이념이나 정책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하는 단체" 다.

근데 이 분은 책을 하도 많이 읽고 여러 사상을 공부한 탓에 이념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인가?

 

정당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껏 가지고 있던 이념,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인생을 바꿀만한 큰 결단을 해야하는데 이사람은 정당이 그저 자기 집 안방이다.

정당을 우습게 보는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지역에서 열심히 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왜 무시하고 자기 기득권 챙기기 급급한 것일까?

 

 이런행동을 하도록 여건을 조성한 것은 사실 우리 국민들이다. 즉 우리 탓이다. 이름만 좀 유명하다 싶으면 뽑고, 그사람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어떤 비전을 갖고있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탓이다.

지역정당을 통해 충청도에 뿌리를 내리시고 다시 원래 정착지로 가시려는 이 분.

 

나는 그저 자신이 왜 그랬는지 합리적인 해명과, 정치적비전이 뭔지 듣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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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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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주저리주저리 2012. 10. 7. 20:14

"(새누리 의원들에게) 같은 당으로서 문제 일으키지 말고 함께 화합을 해서 가야한다"

"캐캐묵은 역사문제에 이야기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가야한다."

 

무섭다.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게 옳은 사회다.

그 소수를 버린다 해도, 다수내에 소수는 언젠가 또 생기게 된다.

결국 그때그때마다 가지를 쳐서 나가면

남은 것은 앙상한 가지 뿐이다.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다수가 다른 방향으로 갔을때 누군가 제동을 걸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차가 빨리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단 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박대표의 이러한 언행은 태클이나 논쟁을 의미없는 것, 불필요한 것, 장애가 되는 것 으로 보는 것같아 두렵다.

만일 이런 분위기속에서 옳게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다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갔을때 누군가 이런 논리로 이야기 하지 못하게 된다면...생각만 해도 무섭다.

Posted by 정원호
,

누구를 지지한다고 하기전에 선거공약부터 보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치적인 이유(북한,지역감정 등)로 지지한다기 보다는 우리 국민부터 이성적으로 어떠한 공약을 이야기하는지 보고나서 판단하는 것이 더 선진화된 국민의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후보들의 정치, 이념 싸움보다는..(그것도 흥미롭지만)

서로간의 공약을 비판하고 더 나은대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토론하는 한단계 성장하는 성숙한 선거가 되길 유권자로서 바라고 있습니다.

지지하는 이유를 공약을 들면서 어떤 긍정적 효과가 날지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정치이야기를 할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런지...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료 1.

 

 

 

자료 2.

 

 

 

자료 3.

 

 

 

자료 4.

 

 

Posted by 정원호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319138&cp=nv

2012년 8월 6일자 신문 <국민일보>

 

서울 지역 초등학생들의 안경 착용 비율이 43.8%에 달해 시력 보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는 전국 초등학생 평균 안경 착용 비율 35.8%보다 8.0% 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건양대 김안과병원(원장 손용호)은 지난 5월 1일부터 6월 22일까지 서울 소재 10개 초등학교 학생 5877명을 대상으로 눈 건강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6일 밝혔다. 서울 지역 초등학생들의 눈 건강 상태가 그만큼 안 좋다는 뜻이다.

조사 결과 안경 착용 비율은 1학년 23.4%, 2학년 26.7%, 3학년 39.8%, 4학년 44.4%, 5학년 57.3%, 그리고 6학년의 경우 무려 61.9%에 이를 정도로 고학년생일수록 높았다. 병원 측은 평소의 잘못된 생활습관, 학부모들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아이들의 눈 건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수면 부족이 큰 문제로 드러났다. 하루 평균 8시간 이하의 수면을 취하는 아이들은 안경 착용 비율이 58.4%에 달한 반면, 9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는 아이들의 안경 착용 비율은 41.6%다.

초등학생들의 눈 건강에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요인은 ‘야외활동’ 시간이었다.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아이들일수록 안경 착용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절한 야외활동은 체력뿐만 아니라 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눈 건강에 대한 학부모들의 지식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소아 약시는 눈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지만 만 열두 살 이전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교정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잘 모른다’고 응답한 학부모가 33.2%에 달했으며, 심지어 적정 치료시기를 성인 이후로 잘못 알고 있는 비율도 6.7%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손용호 김안과병원 원장은 “눈 건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건강한 생활습관을 몸에 익혀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이라며 학부들과 어린이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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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론

요즘들어 안경 쓴 초등학생이 많은 것같다.

불과 15년 정도 전(오래되긴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만해도 안경을 쓰는 아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참고로 나의 경우 지금은 시력이 마이너스정도일 정도로 시력이 나쁘지만

초등학교 5학년(12살)때만해도 내 시력은 1.2였다. 안경쓴 아이는 고작 1~2명 뿐이었고

시력도 그래야 0.6~0.7이었고 천성적으로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초등학생들의 시력저하의 요인은 무엇일까?

추측하건데 여러가지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1. 스마트폰, 2. 수면부족 3. 여과생활의 문제(컴퓨터등 전자기기) 4. 편식등이 있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는 이런것을 개인차원의 문제라기 보다 사회현상으로 보고싶다.

결국 아이들을 신경쓰지 않고 돈의 대상으로 초등학생을 대한 어른들의 탓이다.

 

1. 스마트폰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로 기억한다. 소년한국일보에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마련하자라는 광고가 나왔다. 루키폰이라는 것이었는데, 자식걱정을 막기위해 핸드폰을 하나 장만해주자는 것이었다. 그 핸드폰은 고작 전화밖에 안되는 지금으로 보면 구식폰이지만 어린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준다는 것 자체가 꽤 혁신적인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팔기위한 하나의 수단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그것이 아이들에게 핸드폰 시장을 넓히기 시작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88만원 세대 참고하세요.(부정적으로 바라보고있음)

 현재는 많은 초등생에게 핸드폰은 어색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고, 어느샌가 필요한 것 구입해야 할것으로 사회가 바뀌어 버렸다. 핸드폰=스마트폰인 현재 시대에서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소유는 이상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 초등학교 때는 전자기기를 실시간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야 오락실이나 TV가 전부였다. 하지만 초등학생은 매일같이 전자기기를 붙들고 산다.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을 떼고 살지 못하게 된것은 인생을 10년 내외로 산 초등학생들의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그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준 사회(어른들)의 잘못인가?  

 

 

2. 수면부족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09/h2012090402381521950.htm (일제고사에 관하여)

초등학교 교육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듯하다.

이제 초등학생들은 좋은 중학교(국제 중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다.

86년 생만 해도 영어는 중1때 익혔다. 그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나의 경우에는 영어를 3학년때 처음익혔다. 요즘아이들은 영어를 처음접하는 시간이 더 빠르다. 어렸을때부터 영어를 익히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빨리 익혀야 잘하니까?!

 우리때는 한학기에 한번보는 수학경시대회가 전부였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력평가를 보고, 일제고사를 본다. 배우기위한 공부가 아니라 시험을 위한 경쟁을 해야한다. 경쟁에서 낙오되면 좋은 학교에 진학 할 수 없기때문이다.만약 초등학교에서부터 그런 부담을 느낀다면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긴 힘들것같다.

그런 상황에서 초등학생이 학업에 관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기사는 충격이다.

나는 학업에 부담을 느꼈다기보다 보통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대다수였고 성적이라봤자, 담임의 서술로만 되어있는 통지표일 뿐이어서 성적에 큰 부담을 느낀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서열과 등수는 많이 경험할 텐데 벌써부터 성적과 등수로 평가받는 자신을 일찍느낀다는 것은 가혹한 일일 것일것이다.

여지없이 끝나면 학원으로 바로 직행하는 초등학생들이 많은 것같다. 비록 개구리가 올챙이적 기억하지 못한다지만, 개구리가 된 입장에서 봤을때 지금 올챙이들은 내가 올챙이 였던 때보다 더 심각한 환경에 있는 듯하다.

그런의미에서 수면부족은 당연하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놀시간은 그때뿐이고 따라서 늦게 놀고, 자는시간도 당연히 늦고, 학교는 가야하니 잠을 적게 자는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잘 시간을 어기고, 밤 늦게까지 노는 초등생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런 환경을 만든 사회의 잘못일까?

 

3. 초등생의 여가시간

참고기사 : http://www.vop.co.kr/A00000472633.html

http://idea.kedi.re.kr/IdeaBank/IB_Idea/IB_StudyRepView.jsp?RR_IDX=4385&cpage=20&S_CONTENTS=&S_KEY=0&S_Kind=

사람들과 얘기할때마다 나는 그나마 복받은 초등학생이라고 이야기한다.

비록 내 초등학생의 패미콤오락기가 여가생활의 큰 비중이었으나, 아파트에 살다보니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고, 따라서 그들과 어울릴때는 주로 바깥에서 놀았다. 아파트라 놀이터도 한 단지에 4개정도 있어서 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때는 아이들이 많아서 사람이 많은 만큼 놀이터가 활기가 넘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놀이터는 조금다르다.

아이들도 있지만 지극히 어린아이들이 많거나, 노인들의 쉼터로 변한것을 본다. 초등학생같은 경우는 많이 보기 힘들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문화공간은 어디로 간걸까?

가끔 pc방에 가는 일이 있는데 금연석을 보면 초등학생들이 꽤 많다. 태권도장을 갔다왔는지 도복을 입은 학생, 슈팅게임을 하면서 욕설을 하는 학생, 10시면 나가야하는 룰로 인해서 9시 50분만 되면 아르바이트생과 실랑이를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동네의 첫 pc방은 내가 3학년때 pc방이 나왔지만 그때는 초등학생들이 접하기 어려웠다. 게임도 어려웠을 뿐더러, pc방도 많지않아 돈도 시간당 1500원으로 조금 비싼축에 속했다. 6학년 정도가 되고 pc방이 많아지면서 값도 싸지고 스타크래프트란 게임이 많이 보급되고 알려지면서 그때 많이가기 시작했던 것같다. 즉, 나는 pc방의 거의 처음 초딩축에 속했다. 그래서 우리때가 놀이터에서 노는 초등학생의 거의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초딩들에게 pc방은 일반적인 곳이다. 왜 그들은 놀이터를 가지 않을까? 말그대로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이다. 우리는 공을 차면서 진짜 친구와 어울렸지만, 그들은 다르다. 친구의 아바타라고 하지만, 실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아바타일 뿐이다. 그것은 진짜 그 친구자신이 아니다. 그들은 혼자 논다.

초등학생에게 pc방 이것또한 그들의 문제인가? 그렇게 만든 사회의 문제일까?

 

결론

초등학생에게 사리분별을 맡기는 것은 힘들다. 따라서 초등학생들이 어떤 문제점이 있다면 그것은 주위의 여건탓이다. 초등학생의 시력저하를 건강의 측면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초등학생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어른들의 탓이다. 그리고 한국사람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눠놓은 지긋지긋한 학벌사회 탓이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대학교 1학년때 목동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친적이 있었는데, 가장 애로사항은 수학을 가르치는 것보다 그들을 잘 타이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교육열이 특히 심한 목동에서 학원을 9개를 다니고 수학학원에 와서 원치않는 공부와 과제를 3시간씩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동정이 들었고, 결국 원장도 그런 나의 모습을 알고, 나는 학원에서 오래 일하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되었다.

그때에 관해 후회하지 않는다. 난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때 얻어가야 하는것은 중요한건 인수분해를 배우네 마네가 아니라 먼 훗날 삶이 힘들때 그때를 생각하며 버틸수있는 추억이라 생각한다.

 

초등학생의 시력저하는 우리의 사회의 문제고 결국 사회의 병이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다. 부디 초등학생의 시력이 회복되기를 이 에세이를 쓰면서 진심으로 바란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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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란 것을 위해 우리는 전공이란 것에 목메단다.

 

물론 취업에 있어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특히 나 포함한 우리 이공계생들!

 

우리는 그동안 전공서만 읽었어. 어려운 책들만 쌓아놓고, 프로젝트와 조별모임으로 항상 골머리 쌓아왔지

맞어 바빴지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알지못했어

학점과 시험속에서 중요한것을 놓쳤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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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노동자란 용어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막노동자들이란 의미인줄 알았어...

난 우리나라의 한민족이 반만년동안 같은 핏줄을 물려받은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해왔어

난 파업이란 것은 시민들의 편의를 막는 바보같은 행위인줄알았어

전태일이란 사람이 이 사회에 어떤영향을 끼쳤는가 잘 몰랐지

난 비정규직 노동자가 우리주변에도 있었는지 몰랐어

또 그들이 받는 부당한 피해와 차별에 대해서도..

심지어 우리어머니도 한때 비정규직 노동자였다는것도 몰랐지

지금의 대학생이 겪고 있는 88만원세대도 남일인줄 알았지

근데 우리주변...선배님들이었다는걸.....(곧 우리가 되겠지만)

난 버리는 것은 '-'라서 항상 얻으려고 만했어..

버리는 것의 자유로움을 모르고 살았어

난 음란물을 보는것이 불법이고 나쁜건줄 알았어

 

 

난 지금껏 너무도 많은 것을 몰랐어

난 가족이란 굴레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비참한 것인지...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께 얼마나 잘못하고 있었는지 몰랐어 화학이란거 조금안다고...

오직 관심사는 '나'였고, 남의 시선에서 보지는 않았지

그리고 오로지 내 잣대에서만 남들을 구별짓고 평가했지

화학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아니야

우리가 대학생이 되어서 배워야 할것은 따로있었어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학점취득공장은 분명아니야

 

나는 더 배워야 한다.

Posted by 정원호
,
흔히 평균을 구할때는 전체 개체들의 값에서 전체 개체의 수를 나누어 주면 되는 방법으로 평균을 구한다.
예를들어 이런것이다. 5,4,3,2,1 평균은 3이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경우는 어떨까?
1,2,2,2,3,3,3,3,3,190
이런경우는 평균이 압도 적으로 올라간다. 평균값은 21.2다.
이는 평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아 이값들은 21.2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나머지 9개의 값이 전부 3이거나 3보다 작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균값에도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평균값이 집단을 대표할 수 없는 사례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수학에서도 최빈값이라던가 중앙값을 대표값으로 쓸때도 있지 않는가.

GDP는 국내총생산으로서 나라의 경제성장을 가늠하는 지표라고 한다.
하지만 GDP가 10%늘었다한들
모든 사람들의 생활여건이 10%향상되었는가... 생각해봤을때 판단하기 쉽지않다.

소득불평등지수인 지니계수도 전에 비해서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한다.(뭐..추세인지는 모르지만 복잡한것은 모른다.)
그 소득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엥겔지수도 올랐다고 한다.

대표값은 평균일 수도 있고, 가장 수가 많은 계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평균은 이 사회의 대표값으로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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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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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두가지를 학벌사회와 지역감정이라 봅니다
그 둘은 사람간에 불평등을 만들기때문에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보다 민족을 분열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번 총선 양상을보니 불리한 상대 당 텃밭에 지역감정타파라는 대의명분하에 유명하신 분들이 출마를 결심하더군요..
그 분들의 진심을 알 수는 없습니다.
뭐 당원들과 사람들의 신임을 받아 권력을 잡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비록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출마했다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으신 분들이 불리함을 안고 당 기반이 약한 곳에 가는 것은
그래도 지역감정을 타파하는데 무척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정당의 궁극적목표는 정권창출입니다.
그동안은
지역을 기반으로 삼아서 동과 서로 대립하고,
정치인들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들이 당을 고려치 않고 공약을 보고 뽑기를
(저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과거와 달리 선진화된 의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해묵은 지역감정을 해소하는데 힘써주시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지켜보겠습니다
Posted by 정원호
,
1. 법이란게 과연 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법이란 것이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출연한 것은 고조선의 8조법에서다. 알다시피 고조선은 청동기~철기시대 국가이고 그 당시에는 식량 생산이 많이 증가하여 잉여재산이 생겼고, 가진 자 못 가진 자에 따라 사유재산(내 재산)이 발생하여 계급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층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법이란것을 만들었다. 즉, 법이란 것은 애초부터 약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물론 사회보장법같은 좋은 법도 많고, 사회에 해가되는 높은분(?)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지만, "법은 약자편이다" 라는 말에 대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법은 피해자의 손해에 대한 보상 혹은 가해자의 처벌을 하는 것일뿐 약자라고 더 봐주지는 않는다. 법에서 봤을때는 부자가 분유 한 통을 훔치든 가난한 자가 분유 한 통을 훔치든 죄값은 똑같으니까...(형법??) 
빈곤하고 살기 절박한 사람들이 범죄행위 그리고 법적 처벌에 더 많이 노출되있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부자,기득권들이 범죄할 수도 있다해도 그들은 법의 헛점을 이용하거나, 혹은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머리좋게 처벌을 피해갈 확률이 높기때문에....)

2. 법은 보수성을 띌 수 밖에 없다.

"사법(司法)은 본질적으로 법 질서의 유지와 법적 평화의 실현을 그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소극적· 현상유지적·수동적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사법부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법을 해석하여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적용하는 기관으로서, 사회적 변화를 선도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려는 속성을 갖는 것이다.
또한, "법"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사회의 여러 문제와 갈등을 통제하고 통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원은 자신의 판결이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다시 말해 보수성을 기본적 가치로 표방하는 "조직"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법관들이란 그 직역(職域)의 특성상 개인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기를 꺼리는 것이 일반적인 바, 오죽했으면 출처도 원전도 전혀 알 수 없는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넌센스가 하나의 법언이요, 경구인 것처럼 일컬어지기까지 할까.
어쩌면, 이러한 법원과 법관의 보수성이란, 극심한 사회 변화 속에서 법의 이름으로 중심을 잡아 달라는 요구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각주:1]

 이처럼 법이란 것은 보수성을 띄는 것이 당연하다. 덧붙여 말하자면 법을 공부할때는 흔히 예전 판례를 통해서 배운다. 그말은 법이란 것이 과거의 판결사례를 주(主)로 그것에 맞게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몇 진보적인 법조인도 있을 것이나 대체로 보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란 무엇인가?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꼼수의 정봉주씨가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리 놀랄일이 아니다. 판결을 통해 약자는 법에 체념할 뿐이며, 법이란 성향자체가 빠른 사회환경에도 갈피를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그토록 많이 논의되던 호주제도 폐지되었고, 국가보안법도 논의되고있다.
잡음은 언제나 시도때도 없이 생기지만, 여러사람의 노력으로 사회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게 나의 결론이다. 그러니 너무 초초해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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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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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일까에 대해 생각해본날.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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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서점가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서점에 갈때마다 붐비는 코너는 거의 똑같이 볼 수 있다. 바로 재테크와 자기계발서 코너이다.
 
사람들이 즐겨읽는 많은 자기개발서들....
시크릿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론다 번 (살림Biz,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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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공부하고천재처럼꿈꿔라반기문유엔사무총장이세계의청소년?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신웅진 (명진출판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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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인간관계론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데일 카네기 (씨앗을뿌리는사람,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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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경쟁사회에서 남들과 차별하기 위해서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아마 시간이 갈수록 경쟁사회는 점점 치열해질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책들이 더 많이 나오리라는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의 사람과는 달리 나는 이러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자기계발서가 이런 힘든 경쟁사회에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자기계발서는 경쟁이란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임을 전제로 한다. 그 뜻은, 남과 차별할 수 있는 성공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이런책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즉 경쟁을 해소시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경쟁을 더 부추기며 나아가 또 이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성공비법을 모르기 때문에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하지만 읽지 않았다고 해서 꼭 도태되지만은 않을 것같다->그건 다음내용에 나온다.)

궁금한 것은,.. "시크릿"을 예를 들었을때,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1등이 되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뭐 저자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모두가 간절히 바랬어도, 더 간절했던 사람이 1등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생각해보건데 모든 사람들이 "스크릿"을 읽고 잘 숙지하더라도, 경쟁사회에서는 결국 승자는 따로있다. 다른 많은 자기계발서들에도 이것을 적용해 볼 수 있다.(모두 자기가 원하는것을 써보고, 인간관계도 좋아지려하고 등등등) 모두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뜻은 무엇인가? 자기계발서가 성공의 필요한 양분이 될 수 있으나, 이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회과학서는 어떤가? 사회과학서는 성공비법보다는 사회의 한계점을 이야기하고 개선할 점을 이야기한다. 비록 그것이 개인의 성공에는 도움이 안될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와 달리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해 조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방향의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자기계발서와 사회과학서 모두 잘 사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지만 접근방법은 완전다르다.
그중에서도 나는 자기계발서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발전하라는 말에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남들도 그렇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있다. 옛날만 해도 학점관리를 어느정도껏만 해도 직장에 여유있게 취업할 수있었다. 불과 5년전만해도 토익스피킹이 없었다. 언젠가 우리는 좋은 영어성적을 받기위해 토익을 공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두 토익을 열심히 하고 잘한다. 그렇지만 토익의 한계점으로 기업은 좋은 인재를 뽑기위해서 토익스피킹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학점 뿐만 아니라 영어, 거기다 말하기 또한 인턴 봉사활동 까지 만능맨이 되지 않으면 안될 시대에 진입했다.

그 이유가 꼭 자기계발서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 자기계발서가 과연 이 사회에서 대안이 될 수 있는지(오히려 심화시키지는 않는지), 주위보다는 나 자신의 성공만을 여겨오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다. 즉, 우리와 성공한 사람들은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꼭 그들을 따라서 행동하고, 생각하고 살아가야할 이유는 없다. 야구를 봐도 마찬가지다. 물론 교본에서의 정석적인 자세도 좋다. 하지만 자기만의 자세로(단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단점을 극복하고 좋은 타격을 하는 타자들도 많다. 우리가 사는게 남들보다 게으르다고 할 지라도, 오히려 그런탓에 여유있는 성격일 수 있다. 그사람처럼 바꿔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 보다는 그 단점을 장점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성공에 효율적일 수 도 있다.

즉,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다고 해서 꼭 도태된다??라는 앞의 내용에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 인간관계적인 면에서는 당연히 뛰어날 것이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내적인 사고를 많이하기 때문에, 생각을 깊게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문제점도 적다. 너무 지나치면 문제일분 성격은 문제점이 아니라 그 사람의 특징이다.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것일 뿐이다.

그런면에서 자기계발서는 이러한 점도 있구나,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참고하는 면에서 보는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사람처럼 살아야해 하면서 밑줄을 치고, 그 사람처럼 변하려고 해서 자신의 특징을 완전히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성취는 위대할 수 있다. 하지만 빌게이츠나 평민이나 똑같은 사람이다. 1:1이다. 사람아래 사람없고, 그 위에 사람없다. 우리는 누구보다 위대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방법, 지금 가진 가능성 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자기계발서를 쓴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런 두 가지면에서 사실 자기발계발서가 나쁘게 말하면 상술이라는 점도 없지않아 있을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자기계발서는 사실 내 독서에서 그다지 많이 우선을 두지 않는 책이다.
남들과 간혹 책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이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는다고 하면, 독서를 깊게 하지는 않는구나라는 생각이든다. 먼저 자기계발서를 읽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의 틀을 적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틀을 갖춘다면 어떠한 이야기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주관을 유지할 수있다. 그 경지가 되고나서 나중에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더 현명한 독서습관이라고 생각한다.

(틀을 만드는 방법??->글쎄..다양한 독서아닐까요?? 하하하;;;죄송합니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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