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다 문창극씨를 봤다.

 

이분....

 

 

똘마니인지 조교인지를 한명 데리고 갔다.

같이 차를 타던데 무척 좋아보였다. 모델은 잘 모르겠으나 상표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벤틀리

브랜드 밸류로 따져보자면 벤츠와 롤스로이스 사이에 위치할만큼 고급브랜드에 속합니다. 모나코 황실 등 귀족들과 신흥부호에 인기를 끌고 있죠. (출처 : http://getcha.tistory.com/56?viewbar)

 

아 그렇군요...

차에 대해 잘 몰라서.

 

 

 

여튼 잘 지내는 것 같아보였다.

외제차였구나.

 

외제차를 구입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나보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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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낙서가 많이 되어있다.

누군가가 그곳에 굵은 글씨로 '낙서하지 마시오'라고 썼다.

 

사람들은 실소를 지을 것이다. 자신도 낙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실소할 일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을뿐이지 존재하는 것같다.

 

폭력을 막기위해 더 큰 폭력이 나오며, 그것은 합법화한다.

전쟁을 막기위해 핵무기를 만든다.

 

낙서의 예와 비슷한 사례들이다.

 이런 것들 또한 합리화 될 수 있을까?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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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세계(집단,단체)에서나 약자는 존재한다. 평범한 사람들도 어떠한 계기로인해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만일 약자에 대한 대응책이 하나도 없다면, 사람들은 약자가 되지 않기위해 치열하게 살것이고 또 약자가 된 이들을 능력이 없는 자라고 조롱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양쪽에게 모두 비합리적이다. 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버티기위한 경쟁, 다른 한쪽은 상대적불평등과 차별, 멸시속에서 피해를 입게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안정성은 결국 약자를 대하는 사회의 방식과 관련이있다.

 

결국 바람직한 사회는 약자들이 본인의 약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모든 사람이 열심히 일을한다해도 어떤사람은 5를 한다면 어떤 사람은 2만큼을 할 수 있다. 이때 '너는 2밖에 하지 못했다라며 그게 너의 몫이다.'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을 위해 여유분이 있다면 나눠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약자에게 많이 퍼주자가 아니다. 단지 그들의 약함에 따른 불이익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회의 안정성을 가지고 올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점에서 "약자의 약함을 죄로 치부하지 않는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생산되는 총량이 일정하다면 앞선 예에서 보다시피 약자들을 위해 비교적 여유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의 일부분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서, 또 사회의 안정이라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몫을 쉽게 포기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약자들들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해결책으로는 더 큰 권위의 개입이나 다수의 생각을 통한 움직임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더 큰 권위의 개입.

더 큰 권위라면 강력한 집권방식이란 것이고 그런 큰 권위을 통해 이득을 나눠주도록 명령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우려스러운 점이 있어보인다. 첫째로 이 생각은 독재를 옹호하는 논리로도 발전될 수 있어보인다. 대의를 위해 누군가에게 큰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둘째로, 인간은 무척 불완전하다. 신이 아닌이상 공평하게 할 수 없다. 인간은 전지능력이 없기때문에 설령 공평하게 한다해도 둘다 만족할만한 좋은 결정을 하기란 쉽지않다. 또한 강력한 집권을 발휘하는 개인(혹은 집단)이 만약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를 결정할때 공명정대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분명 어렵다. 이런점에서 더 큰 권위를 들이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그렇다면 두번째 해결책인 다수의 생각을 통한 움직임이 현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해결책인듯하다.

하지만 다수의 의한 결정도 여전히 부족해보인다. 다수가 우매한 상황이라면 어떠한가? 언제나 좋지않은 결정만 할것이며 그것을 막을 만한 견제도 없다. 결국 다수가 우매하지 않게 교육하고 계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수가 우매함을 막으려면 대중다수들에게 주는 정보들이 우매하지 않고 세련되어야 하는데, 그런 정보들의 예로 미디어, 교육, 선전등을 들 수 있겠다. 우리는 평소에 이런 정보들을 중요하게 여겨야한다. 이러한 정보들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개인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데 국한하지 말고, 이러한 정보들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질시 어떤 의사결정이 만들어지는가라는 좀더 큰 관점에서 봐야할 것이다. 혹시 대중들을 우매하게 만들어서 바람직한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정보전달 매체가 있는지 말이다.

 

 그럼 이런 정보전달매체를 잘 살펴보기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방법은 무엇인가? 내 생각에는 인문학이다. 그 중 철학은 큰 기여를 한다. 철학은 성찰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것에 관해 잠시 멈추고 의문을 갖게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침을 준다. 결국 인문학은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위한 초석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학이 인류를 물질적으로 어떻게 풍요롭게 할지 고민한다면, 인문학은 인류의 생각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마치며....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

오늘 지하철에서 한 초등학생이 옆자리에 있던 세명의 꼬마아이들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행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아이는 결코 더 큰 권위의 개입에 의해 준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주었다. 거기서 희망을 볼 수 있을 것같다.

물론 이 아이는 자라면서 많은 것을 보고, 교육도 받고 느낄 것이다. 여러 정보(미디어, 교육)를 받으면서 훗날 "내가 중요하다 . 약자를 챙길 필요없다."고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약자들을 도와야한다."라고 더 강하게 교육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보전달매체들은 이런 아이의 순수성을 지켜줄 수 있는가?

어른들은 이런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까?

또 현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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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월호사건

 

 

 

 2. 중앙일보 박용석 만평 4/29일자.

 

 

3. 박근혜정부에서 지명한 두명의 총리 후보자 낙마.

 

 

4. 반려. 

 

 

도돌이표?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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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란?

주저리주저리 2014. 6. 23. 21:19

지도자의 정의는 이렇다.

 

집단의 통일을 유지하고 성원이 행동하는 데 있어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

지도자란 엄밀한 의미로 집단에 있어서의 리더십(지도적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규정되어야 하며, 어떤 인기 있는 사람이나 대표자, 또는 문화영역의 권위자 등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도자 [leader, 指導者] (두산백과)

 

1. 지도자에게 있어서 유능함은 필수조건이다.

 

생각해봤을때,

우리의 대표이다. 대표를 엄한 사람이 해서는 안된다. 지도자에 있어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유능함이다. 유능하지 못하면 조직은 이상한 일을 하게된다. 모두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조직 전체로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이란 것을 배로 봤을때 지도자는 키잡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를 젓는 사람으로 보면 좋지 않을까?

키잡이가 유능하지 않다면 개개인은 열심히 젓는다 할지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빠른속도로 질주하게 되므로 오히려 역효과가 나게된다.

 

2. 유능함을 갖췄다면 끝난 것인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44105&cid=40942&categoryId=31630

두산백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도자는 유능하다. 뭔가 보통사람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남들과는 달라야한다.

지도자는 사진이 평범하게 사는 사람과 뭔가 다름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을 넓게 볼 것이다. 아니 넓게 보아야한다. 그런 지도자가 없는 조직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능함이 지도자의 충분조건이라 결론지을 수는 없다.

 

다음의 예들로서 어떤 방향이 옳은지 살펴보자.

 

다음은 정몽준의 아들이 쓴 이야기이다.

정몽준씨의 아들이면 돈이 많으므로 좋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고 언젠가는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도 족히 몇백명은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보통사람보다 우월할 수있다. 아니 우월해야한다. 지도자가 부족하면 어느 누가 신뢰하고 따라올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통솔하고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을 미개하다라고 보는 관점은 곤란하다.

리더의 힘은 보통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자신이 리더가 되어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보통사람들 때문이다.

비슷한 예가 아래에 또 나온다.

 

 

 

문창극 후보자.

우리는 조선민족이다. 당신은 리더의 후보자로 올라와있다. 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해 본 결과 당신은 리더가 될 유능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래의 점에서 당신은 리더가 될 자격이 없어보인다.

당신은 당신이 끌고가야할 백성(평민,보통사람)을 게으른 사람으로 보았다.

지도자는 백성을 사랑해야한다.

 

문창극씨는 이것의 사안을 친일행적이 있네, 없네로 생각하고 있는 것같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것은 총리는 대통령을 도와 시민들을 감싸 줄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 기름유출 사건등 사건이 터지면 대통령이 못갈때 대행으로 가는 사람이 총리이다.

총리가 시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총리로서 자격이 없다. 그 사람이 설령 유능하다 하더라도

리더(키잡이)는 노를 젓는 사람들에게 격려해주고 안아주어야한다.

 

리더가 유능하더라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 참 걱정스럽다.

"너희들은 원래 노나 젓는 사람이었다. 노예근성의 놈들. 노나 저어라" 라고 비하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의 생활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합리화를 하게되고, 어느 누구도 지도자에게 덤벼들 생각을 못하게 된다.

왜냐...백성들은 착하니까. 그들은 순종적이다. 이런 메시지를 무의식으로 믿어버릴때가 가장 무섭다.

이것을 당연하다고 믿을 때 문창극이 말하는 노예근성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 사진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두렵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행여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두렵다.

 

3. 유능함외에 가져야 할 것.

다음은 브나로드 운동이다. 계몽운동과 비슷할 것같다.

우리가 배웠던 심훈의 "상록수"라는 소설에 나와있다.

브나로드 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식인에서 부터였다.

그들 또한 정몽준의 아들, 문창극씨 처럼과 같이 보통사람과 다름을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브나로드를 이끈 지식인들은 백성들을 미개하다라고 보지 않고, 그들을 계몽하고자 했다.

그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려 노력했고, 그들을 깨우쳐주려했다.

문창극씨, 그리고 훗날 지도자가 되실 정예선씨, 그리고 수많은 예비 지도자가 되실 분들과 생각해보고 싶다.

 

맞다. 지도자는 우월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도해야할 방향은 무엇인가?

미개한 자들이여 우리의 뜻에 무조건 따르라인가?

혹은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그들을 일으켜세우는 길인가?

 

 백성들을 사랑한다면(애민정신) 리더의 힘이 이들로부터 나온다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아무리 유능할 지라도 보통사람들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공부해서 느낀 것이지만, 결국 부정한 지도자를 심판한 것은 보통사람들이며, 역사를 조금조금씩 정당한 방향으로 이끌어 온것도 이들의 힘이었다. 우리가 왕을 욕하면 잡아가고, 태어나자마자 속박된 신분에서 살던 시대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완전하지는 않지만)평등한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보통사람들의 힘이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미개하고, 게으른 DNA의 사람들이다.

 

지도자는 자신이 이끌어갈 사람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고마움, 감사의마음)도 가져야한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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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증오감 투표를 끝내자
|단국대 의대 교수

영화 <변호인>의 네이버 평점은 8.96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라서 점수가 좀 더 나온 측면도 있지만, 영화가 나름대로 스토리도 있고 감동도 주는지라 박하게 평가해도 8점대는 충분하다고 봤다.

하지만 영화 개봉 초기, 이 영화의 평점은 5점대였다. 초창기에 별점을 매긴 이들이 최하점수인 별 반 개 (1점)를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띄엄띄엄 봐도 6점대는 줄만한 이 영화에 그런 박한 점수를 준 이유는 노무현에 대한 증오심을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정 재미없게 봤다면 별 한 개나 한 개반 정도를 줘도 됐을 테지만, 이들의 목적은 오직 평점을 깎는 것인지라 예외없이 별 반 개를 준 것.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그보다 8.4배나 많은 사람들이 10점 만점을 주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고, <변호인>은 9점에 가까운 높은 평점으로 막을 내렸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보다 맹목적인 증오감을 가진 이들의 숫자가 전체의 10%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선거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후보의 공약을 살펴본 후 마음에 드는 후보를 뽑는 유권자의 비율이 80%만 된다면, 비이성적인 색깔론이나 지역감정 같은 공작이 발을 붙이지 못하리라. 하지만 역대 선거를 되짚어 보면 이성적인 유권자의 숫자는 아무리 좋게 봐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엊그제 나랑 이야기를 나눈 지인을 보자.

모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즉 민주당이 종북정당이라고 했다. “근거가 있나요?”라는 내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예를 들 수는 없지만 난 확실히 알아요. 종북이라는 걸.” 통합진보당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민주당에게 종북이라니 도대체 이해가 안갔다. 그것도 나름 지성인이라고 자부할 대학교수가 말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그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을 터였기에 더 이상 얘기하기를 포기하고 말았는데, 문제는 우리나라에 이런 유권자가 아주 많다는 점이다. 공약이나 후보의 됨됨이를 보기보다는 상대를 종북으로 몰면서 증오감을 키우고, 그 증오감으로 투표를 하는 그런 유권자가 말이다.


이런 증오감 투표는 아무리 봐도 득보다 실이 많다. 일단 원치 않는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북한에 넘어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원하는 후보가 당선됐을 때는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지만, 그 쾌감의 유효기간은 선거 당일밤 하루에 불과하며, 그 다음날부터 씁쓸한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한다.

왜? 증오감 투표로 집권한 세력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리가 없으니까. 적당히 개판 치면서 사리를 취하다가 선거 때마다 색깔론을 일으키면 이길 수 있는데, 집권세력이 뭐하러 좋은 정치를 하겠는가?

선거는 정권의 업적에 대한 심판이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대 선거가 심판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딱 하루 남았다.

과거와 같은 수준은 아닐지언정,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종북을 빙자한 색깔론이 들먹거려지고 있다. 종북 어쩌고 하는 색깔론은 사실 유권자들을 언제든지 조종할 수 있다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전략이다.

지금까지는 그 색깔론에 조종됐다고 해도, 이제 그만 냉정을 되찾자.

변호인에 대한 평점테러를 다수의 관람객이 바로잡은 것처럼,

이번 선거에서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을 펴는 후보를 다수의 냉정한 유권자가 응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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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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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보았다.

 

직접적인 원인은 세월호의 선원들의 의식부족과 해경의 미흡한 대처이다.

그러나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그 자신의 책임을 결코 피할 수 없다.

 

담화문에서 아쉬운 것은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함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오직 해경과 안전부등 하위조직을 비판하였다.

왜 문제점에 대해 단편적인 해결책(정부조직 수정, 변화)만 생각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인가?

 

안전문제를 느끼고 이에대한 대응으로

해경을 없애고 규모를 축소하고 강하게 압박하는등의 여러 이야기를 했다.

물론 강한 처벌, 급격한 변화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시간이 오래지나게 되면 흐지부지하게 되고, 또 예전의 익숙했던 관행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결국 제도를 고치고, 처벌을 강화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것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결국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양심에 맞게 사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대우받고, 그런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는것.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물론 우리는 도덕교과서를 통해 이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배운다. 정정당당하게 일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고, 편법을 이용해 돈을 벌고, 뇌물을 통해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은 별일 없이 살아간다. 이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높은 사람들(주위사람들) 모두 부정을 저지르는데 이것은사회의 당연한 속성이며 심지어 나도 불의를 할 수 있다.(해야한다)"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부정부패를 통해, 또 불법, 법을 이용한 다양한 편법등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용인하고 그것에 관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없어지지 않는 한 

아이들을 버린채 뻔뻔하게 돈을 말리고 있는 선장

부정부패를 당연하게 여긴채 평형수를 뺀 배를 용인하는 등의 불법을 묵인하는 관행과 관피아(전관예우)는 어느시기고 존재할 것이다. 

 

결국 국민들에게 정의로운 사회가 좋은사회이며 정의로운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사례를 늘여가는 것)이 가장 첫번째 목표이다.

 

결국 이를 위해서는

해경 안전부, 부패한 세모회사만 처벌하는 단편적인 처벌,제제 또한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대통령 주변의 청와대 인사의 부정부패, 혹은 높으신 분들의 행태를 살피고 개혁하는 것이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해결책이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세월호 참사와 정의로운 사회만들기. 이 둘은 관련이 없어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사회의 관피아(퇴직관료 재취업 관행, 전관예우)가 세월호의 불법과적을 눈감아 준 원인이라고 봤을때, 또 뻔뻔한 선장의 행태를 봤을때 관련이 있다고 볼 수있으며 근본적인 문제라고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정을 범한 자가 벌을받는고, 바르게 사는 사람은 상을 받는다란 기본적인 원칙.

이것은 양심에 맞게 또 정정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우리의 삶이 옳은 방법이며 그렇게 살야아 한다는 메시지를 또한 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눈물을 보고 나서 더 씁쓸해졌다. 이유는 이 영상이 생각나서이다.

동영상을 보자

(짧으니 처음부터 봐도 좋고) 중간에 20초부터이다. 범죄예방과 사회안전대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선토론 당시.,

본인은 대통령이 되면 모두 바꿀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최우선이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누구도 국가를 믿지 못하고 불신으로 세워진 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국가에 대한 의무를 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일 사건시 고 노무현대통령 재임시절 박근혜대통령은 

한명의 국민이라도 그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며 강하게 정권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302명.......

결국 바라던 대통령이 된 현재 바뀐것은 전혀 없다.

 

과거로 부터 이어오던 불법관행과 부정부패를 전혀 개선하지 못한 점. 불신사회를 자초했다는 점에서 분명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인지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헛되지 않으려면......

 

해경을 없애고, 정부부처를 개선하는 것도 좋지만

대통령 임기마다 나오는 대통령 주변 비리문제, 인사문제등. 높으신분들의 부정부패를 끊어주시길.

바르게 살고있는 국민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지 않기를. 부정하게 살아야 출세한다는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사례를 남겨주길.

선장에게 법을 세게 구형,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 필요하지만.

애초에 선장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주길. 인격을 갖춘 훌륭한 사람이 "선장(지도자)"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주길.

 

결국 근본적인 대책. 정의로운 사회.

정말 정말. 간절히 바란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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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너도 힘들지 청춘은 어둡고 힘들다 라는것.

힐링은 무엇인가? 본인이 힘들기 때문에 위로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왜 힘든가? 대체 왜?

 

결국 이러한 원인은 불평등 때문이다. 결혼이든 미래문제든 경쟁사회에서 경쟁이든말이다.

즉, 상처받는 원인은 경쟁사회에 따른 불평등으로 본다.

경쟁사회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가 갈 수록 우리나라안 에서도 불평등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에따른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문제를 느끼는 즉, 아파하는 청춘들은 가면갈수록 더욱 많아질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너도 힘들지"공감 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여기서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상황은 그대로이다.

고민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 힘들지만 다시 시작하자." 하면서 힘든 상황으로 다시금 자신을 집어넣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힐링 또한 노력을 부추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잠시 위로해 주는 척하면서 결국 노력, 경쟁으로 자신을 또 몰고가는 것이다.

이런점에서 힐링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상처의 아픔만 느끼지 못하게 하는 진통제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임시방편일 뿐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이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힐링없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자신의 삶의 문제를 관철해야 한다.

 

여러가지 삶의 문제가 있을것이다. 취업문제든 연애문제든. 미래에 관한 문제. 각박한 경쟁

결국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얼까?

경쟁을 위한 더 치열한 노력 or 이 경쟁을 장려하는 사회의 문제인가?

 

물론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의 부족이거나 삶의 태도의 탓)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사회적인 구조적인 문제또한 바라봐야 할 문제다.

 

결국 삶의 문제를 관철할 때에는 개인 사회,양쪽의 관점에서 모두 생각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힐링열풍은 사회적인 현상, 문제로 보는 관점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우리는 너무 개인적인 문제에만 치중해 왔다. 반대로 사회적인 문제에는 너무 관심이 없어왔다. 우리가 겪는 문제를 사회적인 구조를 통해 바라보는 것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해결책이라면?

결국 불평등이 원인이므로, 불평등으로 인한 상처를 최소화 해야한다.

불평등은 무조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누구는 열심히 일했으니 많이 가지고가고

누구는 노력을 안했으니 적게 가지고 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평등으로 인한 상처를 정당화할 순 없다.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당연하다고 손가락질을 할 순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인 아이에게, 혹은 수학보다 다른 것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에게, 운동을 못하는 아이에게, 분명 불평등은 존재하지만 이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은 수준낮은 행동이다.

결국 경쟁을 통해 우열은 가려지겠지만, 그것을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대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우열에서 열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있는 어떠한 내부적 상황 혹은 외부적상황 혹은 자라온 환경으로인해서 발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무수히 많다. 이런 경우 이런 사람들을 뒤쳐진다고 해서 우리가 멸시할 정당성을 갖는가?

없다면 또 멸시를 가져왔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이러한 상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공동체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란 점을 끊임없이 인지하는 것이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첫 시작이라 생각한다.

 

 

가장 인상깊게 본 tv프로그램이 있다. 산에서 홀로사는 할머니를 위해 아들과 손녀손자가 땔감을 가지고 왔다. 모두 자신이 들 수 있을 만큼 들었다. 능력이 모자란다면 너는 왜 안되냐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불평등은 있어왔다.(원시인도 일잘하고 못하는 사람있다.)

항상 겪는 이러한 불평등에서 그것을 조금이나마 더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 진보한 사회이다.

 

평소 잘 지내왔다해도 어느 누군가가 잘 나가게 되면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그전까진 문제점이 아닌것이 어느순간 문제점이 되고 마음의 문제로 생겨버린 것이다. 앞으로 사회가 불평등이 심화된다면 이러한 아픔을 가진 사람도 늘것이고, 이러한 문제는 더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이들에게 언제까지 경쟁에서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야하며 앞으로 나가야한다고 떠밀것인가?

분명 소득은 늘었는데 왜 더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375회는 힐링에대해서 90분동안 떠들었지만 결국 이것의 본질적인 문제는 불평등이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사회(자본주의사회) 또한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는 불평등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이 좋은 사회이다.

결코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 보기는 어렵다.  

 

정리하자면 힐링현상은 불평등이 심화된 현대사회에서 대두된 현상이라고 본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람들이 힐링을 통해 자신의 부족 등의 개인적인 면으로서만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시 힐링 후 경쟁사회에 돌아온다고 해도 언젠가 경쟁에서 괴로움과 힘든점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사회는 필수라는 점에서 개인적인 문제또한 분명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구조속에서 '나'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모두 사회의 공동체원임을 인식하고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가 즉, 노력의 방안은 따로 적지 않고 생각만 하겠습니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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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논설위원의 "야당도 개조해야 한다."를 읽고나서.(저작권상 올리지 못하니 찾아볼것.)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5/07/14192578.html?cloc=olink|article|default

 

그의 논리는 세월호 문제로 모두 고쳐져야 한다. but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이 의회의 절반을 쥐고있으며, 언론이나 다른 시민단체로 부터 지원을 받고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야당 또한 고쳐져야 한다며

평소 반복하던 자신의 주장을 또 하기 시작했다.

 

 

전 국민적인 슬픈일에서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것은 당연 맞는 일이다.

하지만 그 잘잘못은 여당을 바꾸고 야당을 바꾸는 것보다

안전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근본적인 안전불감증에 대해 논의(정치인들의 안전에 대한 대책의 부족)를 해야 할 일이다.

 

야당의 행태가 잘못되었다고

세월호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기가막히게 평소의 자기주장으로 껴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근성있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였다.

 

--

학급에 회장과 부회장이 있다.

부회장은 회장을 거드는 정도의 역할을한다. 결정은 회장이 주로 하는 것같다.

회장과 친한 친구가 한명있다.

 

반에 사고가 났다. 회장은 잘 대처하지 못했다.

회장의 리더십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회장의 친한친구는 용감하게도

회장도 잘못이 있지만 부회장이 잘 보좌하지 못했다며

이 사건의 원인과 관련없이 평소하던 부회장의 행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회장이 잘하면 회장칭찬만 할것이고

나쁜일이 생겨도 이렇게 남을 비난함으로서 회장을 옹호하려 도와줄 것이다. 

 

김진위원은 이성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친하다거나 마음에서 더 끌린다는 이유로 옹호하려 하는 것인가?

 

이 가상의 사건을 생각해 봤을때. 어떤의도로 이야기하는 것인지(야당을 까려한다.)는

확실해 지는 것같다.

--

진정 본인이 논설위원이고 이성을 갖고있다고 자부한다면

이번 안전에 관한 사안에 대해 (이때다 싶어)

평소 불만있는 것을 말하려는 창구로 활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라에 좋은일이 생기든 나쁜일이 생기든

항상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는....정말.

 

아.... 내가 신문을 읽는 이유는

누구를 좋아한다. 편애한다라는 것을 보면서

편향된 시선에 환호하고 박수치기 위함이 아닌데.

 

이런글을 보면 정말 신문보기 싫어진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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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중인데.

누군가가 흉을 보고있었다.

 

왜 흉을 보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에게 침을 뱉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그 순간 흉에대해 동조해 줄지는 몰라도.

속으로는 믿지못할 사람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또 흉은 그 사람의 격을 낮게 만든다.

대화의 주제가 흉이 되면, 그만큼

대화의 질은 떨어진다.

 

흉이란게 친목도모라는 점에서 좋은 점도 있겠지만,

다른 친목도모의 수단도 많다는 점에서

흉을 권장한다거나 흉을 정당화 하는데는 무리가 있을 것같다.

 

그럼 너는 어떻길래 그러냐란 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흉을 잘 안보는 편인 것같다.(물론 볼때도 있다.)

위와 같은 이유에서 잘 안한다.

일단 대화주제로서 흉은 그닥 흥미도 없고, 시간만 아까운 것같다.

 

나는 남과 적을 지기는 해도(대립) 절대 흉을 보지 않는다.

 

흉을 왜 보는 것일까?

아..인간간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듯하다.

 

뭔가 나와는 다르다거나, 정말 (모든 사람들도) 이해가 안될 정도로 맘에 안드는 사람이 있다면,

난 철저하게 적을 진다.

선을 긋는다거나, 이야기해서 안되면 어느정도 자른다.

(너는 너 나는 나 라는 점에서 타인의 행동에 대해 큰 의미를 안둔다는 점도 한 몫할 것이다.)

 

하지만 흉은 다르다.

의외로 남과의 관계를 잘 신경쓰는 사람들이 흉을 잘 본다.

맘에 안들더라도 억지로 끌고가려다 보니 그 사람 앞에서는 웃고 좋은 관계로 지내면서 안좋은 점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있을때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게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등등.

나도 흉을보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주로 권위적인 대상일 경우. (직접 안좋은 점을 얘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에)

그래서 권위적인 대상인 경우 불가피하게 이런 점이 있는 것 같다라고 남에게 토로하거나 심하게 격앙되게 이야기할때가 있다.

 

하지만 험담은 분명 좋지 않은 태도이다.

결국 다수를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이 사람과 관계가 안좋아지면 어쩌지 굉장히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진가?? 여하튼)

 

하지만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그 사람 이런 면은 좀 그런것 같다"라는 일치점이 있으면, 굳이 억지로 끌고가지 말고 흉보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본인과의 일대일 관계라면,

방을 안치운다거나 약속에 상습적으로 늦는다거나.

그 상황에 이야기 할 것. 사과를 받아낼 것. 질질 끌고가지 말것. 약간 쿨해져야 할 것도 있는 것같다.

 

흉은 정말 좋지않다.

그건 자신은 이렇게 남 잘 욕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얼굴에 침뱉는 행위나 다름 없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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