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나 단체여행을 갈 시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 바로!
마피아 게임이다.
학생들이 마피아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지목하고있다.
마피아 게임의 기본적인 룰은 모두 알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선량한 시민을 헤치는 마피아를 지목해서 처단해야한다. 간혹가다 엄한 시민이 당할 수도 있다. 물론 지목될 것같은 시민은 자신이 아니라고 현사코 주장하지만, 다수가 그러하면 처단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꽤 재미있어한다. 서로 예상을 하고 속고속이는 긴장감, 긴박감을 좋아라하는 것같다.
내 생각에는 현실에서도 마피아 게임이 진행되는 것같다. 하지만 이것은 다같이 모여서 하는 게임처럼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무고한 시민이 마피아로 지목된다면 게임과 달리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이 끝나면 서로 지목한 것을 미안해하고 원래의 친구로 돌아가는 게임과는 달리 실제의 마피아 게임은 선택이 잘못되어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또 처벌도 잔혹하다. 그 사람의 평생 인생을 바꾸어 버리니 말이다.
인혁당 사건 당시 재판모습
다음은 인혁당 사건의 당시 모습이다.
인혁당 사건(人革黨 事件)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도예종 등의 인물들이 기소되어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해,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인혁당 사건은 국가가 법으로 무고한 국민을 죽인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인권 탄압의 사례로서 알려져 있다.
현실에서는 마피아로 선정된 사람들을 사형집행을 할시
비록 실수였어도 절대 게임처럼 다시 살아나 하하호호할 수 없다.
자세한 출처는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B%AF%BC%ED%98%81%EB%AA%85%EB%8B%B9_%EC%82%AC%EA%B1%B4
사례는 이 하나가 아니다.
빨갱이라는 누명을 무려 49년만에 벗었다. 그들또한 부당하게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들이다.
이런 예는 너무너무 많다. 메카시즘의 의한 이런 희생자들의 예는 너무나도 많다. 검색어에 "빨갱이 누명" 이나 매카시즘이란 단어만 쳐도 그런 사례들은 무수히 많이 나온다.
이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아닌가? 시대가 남과 북으로 갈린 시대인 만큼 이런 마피아게임이 일어나는 것은 시대탓이라고 생각하는 생각말이다.
하지만 어느시대든 이런 마피아게임은 지속되어왔다. 즉, 마피아로 무고한 시민을 몰고가는 사람들은 어느시대에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에서는 그것이 정적(政敵 : 정치적 라이벌)을 없애고 자신의 권력을 잡기위한 수단으로 많이 쓰인 것 처럼 보이는 것 같다.
조선시대로 가보자.
사문난적이라는 용어가 있다.
본래 사문난적이라는 단어는 고대 중국에서 사이비 학문으로 궤변을 펼치는 변설가들을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였다. 고려말기 성리학이 도입될 때부터 나타나 존재하였으나 주로 활용된 것은 조선중기, 사림파가 정계를 장악한 명종 후반 이후였다.
이후 성리학 이외에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를 비방하는 단어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조선 중기 명종 중반인 1560년경부터 사림파가 조정을 장악해나가면서 상대방 붕당의 당인들을 매장시키는 악의적인 용어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훈구파 보다는 같은 사림파 중 다른 사상이나 의견을 가진 자에 대한 증오, 경멸의 표시로 남발되었다. 조선후기에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것은 사회적 매장 혹은 사형에까지 이를만큼 치명적인 것이었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82%AC%EB%AC%B8%EB%82%9C%EC%A0%81
우암 송시열. 당시에는 자신만이 옳은 학문을 하고 나머지는 사문난적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시대의 주류였겠지만, 현재 그의 관한 역사평가는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대표적으로 송시열같은 사람들이 사문난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장시켰다. 자신의 학문만을 정통으로 여겼고, 그것에 관해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가졌을경우, 사문난적으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 어떤 의도였는지 당시 상황을 알 수 없으나 그로 인해서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였다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사례를 보면 어느 시대나 남과 다른 사람을 마피아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심지어는 목숨을 거둬가는 사례는 과거에도 충분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과거는 사람들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랬고, 지금 빨갱이, 반역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 정당한,확실한 논리일 수 있지 않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권력의 다툼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그 갈등은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 아닐까? 권력을 잡기위해 "저 사람은 적과 내통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예는 정말 흔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잇다. 지금 "빨갱이, 반역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거의 그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과거나 지금이나 뭔가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은 강력한 정적으로 여겨져서 과거 유신정부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죄는 36년이 지나서야 무죄 선고를 받았다.
시대는 달라도 본질적인 것은 비슷한 것같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의 많은 예들이 말해주고 있다. 결국 역사는 반복된다. 정권을 잡기위해 하는 방법은 시대가 변해서 다르게 느껴질지 몰라도 다 똑같이 느껴진다.
지금이라고 이런 사례가 없을까? 아니다. 지금도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빨갱이, 혹은 반역자로 매도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치생명을 걸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했다면서 그게 틀릴 시에는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이야기했다.
과연 그의 결과는 맞을까? 마피아로 지목을 했지만 결국 마피아로 밝혀졌을까?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말을 한적이 없으며, 본인도 착각이라고 인정하였다.
아님말구~
결국 본인의 무리수였음이 밝혀졌으나, 결국 입을 다문체 배째라 식으로 버티면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대체 아니면 말고식으로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을 매장시킬 계획인지 모르겠다.
송시열의 사례처럼 먼 미래에 역사가 밝혀낼 것이고, 심판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2년 라디오에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였다.
더이상 현실의 마피아 게임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매카시즘으로 인해서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은 구시대적인 방법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글쎄... 이렇게 주장하는 김무성은 과거 송시열의 사문난적과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나는 단순히 무고한 시민이 조금이나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보기에 이 글이 정치 편향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주로 "빨갱이다.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라는 주장은 어느 세력을 통해 주로 이뤄지는지.
이렇게 사문난적, 빨갱이, 종북주의 등은 다수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권력층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들은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어떤 누군가가 정적으로 다가올 시에 "그는 반역자다. 적과 내통했다."라는 주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잇다.
결국 이렇게 마피아를 만드는 것은 큰 세력에 의해서 이루어져왔다. 그런점에서 비판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편향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공격이 주로 어떤 조직에 의해 일어나는 지 생각해보라!
이 글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
자신의 정권획득을 위해 개인의 인생을 망가뜨린것, 국민들을 현혹하고 호도한 것은 정말 벌받아 마땅하다.
저들은 분명 "아니면 말고~"식의 잘못된 행동을 국민(우리)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런 "아니면 말고~" 식에 계속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또한 의식수준을 향상시켜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마피아게임에서 다수(국민)을 움직이는 것은 말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람을 잡고 "누구가 마피아인 것 같다"라고 하면 다수는 그냥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만약 그 다수가 꼼꼼하게 그 사람은 왜 마피아(빨갱이)인지 왜 처단해야 할 사람인지 비판적으로 따지고 조금 더 의식만 앞선다면 시대마다 나오는 이런 억울한 사례들을 조금 조금씩 줄여 나갈 수 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줘야한다.
비록 이런 일들은 조선시대, 일제시대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가 만연했던 전쟁 직후. 심지어 지금도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그러한 사례가 없어져 감을 보여줌으로서
미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와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