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동화 때부터 팬이었죠.

첫 열애설이네요.

정말 좋아보이네요.

김범씨랑 사랑을 잘 쌓아나아시길......! 

 

 

 

근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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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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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전 주석>

 

나는 2008년도에 진로설정과 경력개발이란 수업을 듣고있었고, 내가 되고 싶은 분야의 사람을 찾아 인터뷰하는 과제가 있었다. 시간은 흘러흘러 5일앞으로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얼마 안남은 상황에서 당시 지도교수님이셨던 원기훈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만난분은 KIST의 엄영순 박사님이었다. 그분을 만나고 쓴 글이다. 지금 보면 생각이 많이 달랐던 것같기도 하다. 그리고 글을 쓸 당시 기분이 많이 좋은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21세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글? 같기도 한다.

 과거의 자료는 중요하다. 우연히 시험공부 하다가 찾게 되었다. 이것을 적는 것은 먼 훗날 우연히 이 자료를 볼 시에 추억을 생각하며 작은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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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맞다!!!! 아 발표인데~ 아 5일 남았네. ㅜㅜ 먼 일 같았던 직업인 인터뷰가 발등의 코앞으로 떨어졌다. 이미 친척들을 다 살펴보았다. 삼촌, 외삼촌, 아버지 친구분들.... 내가 찾는 연구원이라는 직업의 분은 보이지 않았다. 아;;; 체념해야 할까? 근심으로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최후의 보루로 지도교수님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도교수님과는 많은 대화를 한 편은 아니었지만, 연구원이셨다가 교수로 부임하신 분이기 때문에 많은 연구원이신분들과 인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아 맞다. 난 왜 이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나는 그날 바로 원교수님을 찾아갔다.

 

 "원교수님 안녕하세요. 지도학생으로 있는 정 원호라고 합니다."

 "어 원호야 어서와, 무슨 일이니?" 나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야 임마 숙제를 그것도 인터뷰라며 그걸 4일전에 말하면 어떡하냐? 휴.... 나 대구에서 근무해서 대구사람들 밖에 모르는데 아 맞다. 이 분이 계셨지.... 너 국공립 연구원이 꿈이라고 했지? 잠깐만 기다려봐라" 교수님께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거셨다.

 

 "내 지도학생 중 한명이 과제가 있어서 인터뷰 가능한지... 안된다고? 자라나는 새싹에게 희망좀 줘라.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 그래 한다고 했지? (나를 보며) 그러게 좀 혼나야 겠어 4일 전에 해달라고 부탁이나 하고, 토요일날 시카고로 발표회가야 한다고? 그럼 내일 시간 되지? 그래 내일 보낼게. 알았어"

  휴~ 얼핏들으니 잘 끝났나보다. 안심이 되었다. 사실 숙제 못하는 줄 알고, 정말 고민 많이 했었는데, 마지막 잡았던 지푸라기가 사람 한명 살렸다. ㅋㅋ

 

 4/25일 금요일 시험날과 겹쳤지만, 이 시간들은 현재에 나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별로 귀찮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무척 설렜다. 어떤 곳일까? 시설은 어떨까? 안의 분위기는 어떨까? "사실 나 KIST에 갈것"이라고 한 10명의 친구들한테는 떠들고 자랑한 것같다. 그만큼 기뻤고 호기심이 많았다.

 6호선 상월곡 역에서 내려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엄영순 박사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KIST는 국공립연구소이기 때문에 중요한 기술유출방지를 위해 보안도 철저했다. 들어갈때 신분 조회를 통해서 방문증을 끊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KIST부지는 우리학교 캠퍼스보다 2~3배는 큰 것같았다. 따라서 교수님께서 연구하고 계신 곳을 찾는 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연구실 4동을 드디어 찾았는데 들어갈때 자꾸 암호 같은 것을 대라고 해서 애를 먹었다. 근데 마침 그곳을 들어가려던 친절한 연구원분을 만나서 입장을 도와주셨을 뿐만 아니라 호실도 가르쳐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입구에서 15분쯤 걸어 도착한 4322호. 숨을 깊게 들이쉬고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그곳엔 작은 여성 한분이 계셨다. 그 분이 이번에 내가 인터뷰 하게 될 바로 엄영순 박사님 이셨다. 첫인상은 '멋있다!' 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박사님은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계셨다. 그것도 아주 유창하게.... 당연히 나는 무슨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상황을 볼 때는 외국인에게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나도 외국인과 여유있게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또 나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던가?'

 

 교수님의 외관을 보자면 평범하신 분이다. 거기에 보태자면 팔도 가느시고, 키도 작으시다. 하지만 그 분이 연구하는 분야는 우리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의 큰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교수님께서는 내일 시카고에 학술발표회를 가셔야하기 때문에 정말 많은 시간을 상담하지 못한것에 대해서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셨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물론 성격과 전망 임금등의 다른 질문들도 이 직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질문은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물을 수 있었던 기타 질문 이었다. "저희 집이 어려워서 사실 유학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집은 형편이 어려운 편이다. 아버지는 실직상태이시고, 고등학생인 두 동생까지 있었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내 꿈을 접게 되면 어떻하지?' 란 두려움을 최선의 노력없이 가졌던 적이 많았다. 사실 박사님의 학창시절도 참 어려우셨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 때(지금 이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열심히 공부하셨고, 이공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셔서 유학도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에 관계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오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 자신은 "경제적인 문제가 꿈을 이루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명이다." 라고 말씀하셨을때,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말하기 꺼릴 수도 있었던 사실을 스스럼없이 말씀해준 박사님께 참 감사드린다.

 

 질문을 마치고 박사님은 문밖까지 나와주셨다. 이런 솔직한 질문이 오간뒤에 더 가까워진 것같았다. 연구실을 나와 큰 KIST의 부지를 걸어가면서 내가 이곳에 오기위해서는 지금 무러 이뤄야하지 라고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해본 목표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TOEIC 750이상 받고자 노력할 것.

2. 지금보다 대학교 공부를 더 열심히하여 학점을 4.0을 넘기자! (현재 3.95)

3. 전공부야에 대한 공부를 얕고 넓게 보다는 좁더라도 정확하게

4. 역할 모델을 잡고 그 사람을 따라가고자 노력할 것(나의 의지박약인 면을 고려할시)

 

내가 연구원이라는 지금의 꿈을 지닌 것은 고 1때이다. 그때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냥 끊임없이 계속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연구원이란 직업이 있구나.... 괜찮겠다." 이정도 였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그렇게 말만큼 쉽지 않은 것같다. 박사님께서 가지런히 정리하신 책장에는 대학전공도서들, 즉 환경이나 화학, 생물을 다루는 전공서들이 많았다. 즉, 끊임없이 공부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책 '큰 바위얼굴' 의 주인공 어니스트처럼 난 믿는다. 꼭 이루고 싶다. 언젠가 그 목표를 원하면 그 목표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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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다시 단 주석.

 

1. "3. 전공부야에 대한 공부를 얕고 넓게 보다는 좁더라도 정확하게"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었던 것같다. 저학년이면 아직 전공에 관해 모르므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다른 식견도 길러야할 시기인것같다. 어떤 사람은 교양이 쓸모없다고 이야기한다. 교양이 자기가 봤을때 남는 것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공만 배워서 빨리 인재를 양성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거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교양은 인생에서 배우는 마지막 지식이다. 사회로 나가면 더이상 교양지식을 배우기 힘들다.

 "교양을 배워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 수업교수때문인지 본인의 흥미때문인지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나는 이것만 맞아, 이것만 배워야해." 라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면 다른 것은 쓸모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흥미가 없게된다. 그것은 옳지 않다. 대학교 특히 저학년시기에는 정해서 나아간다는 생각보다는 어려가지 다양성을 듣고 체험해보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나는 2008년에 3에관해 생각했었나보다. 결과적으로는 군대가 이런 생각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군대에서 철학이나 사회학등 매우 얕지만 넓게 접함으로서 세상에는 화학뿐만 아니라 다른 흥미있는 것도 많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다.

 자신을 한정짓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목표를 빨리 잡는 것은 좋지만 잘못된 목표를 잡고 빨리 노를 저어가면, 되돌아 가고싶어도 다시 갈 수 없다.

 

2. "TOEIC 750이상 받고자 노력할 것."

아마 이때는 카투사를 쓰려고 노력했었겠지.. 난 항상 영어인생이구나 영어가 발목을 잡는군.

내가 2008년도의 정원호였다면 이렇게 얘기하겠지. 영어공부 열심히 하게나. 영어는 선택의 폭을 훨씬 넓게 해준다네/

아 그리고. 토익보다 토플이나 텝스를 하게

 

3. "지금의 꿈을 지닌 것은 고 1때이다. 그때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미안하지만 이 글을 쓴것이 대학교 2학년때였는데 그때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고 1을 생각하면서 지금에서야 다 깨달은 것 처럼 말하다니 ㅋㅋㅋㅋ

 

4. "역할 모델을 잡고 그 사람을 따라가고자 노력할 것(나의 의지박약인 면을 고려할시)"

굉장히 좋은 생각이다. 좋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면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이다. 좋은 것 깨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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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또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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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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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남주나"의 드라마 삽입곡이라고 한다.

우연히 들은것 으로 찾았다.

자세한 설명. http://wivern.egloos.com/11046679

 

 

You're Only Lonely - J. D Souther

당신은 외로움 입니다.
When the world is ready to fall on your little shoulders
세상이 당신의 작은 어깨를 무겁게 누를때
And when you're feeling lonely and small
또 당신이 외로움과 소외를 느낄때
you need somebody there to hold you
당신을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You can call out my name when you're only lonely
당신이 외로울땐 당신은 나를 부를수 있어요.
Now don't you ever be ashamed When you're only lonely
지금 당신이 혼자일때 언제나 수줍어 하지마세요
When you need somebody
당신이 매일밤 당신과 함께할 누군가를
around on the nights that try you
필요로 했을때
I was there
나는 그곳에 있었요.
when you were a queen and I'll be
당신은 한 여신이며 내가 최후의
the last one there beside you
한 사람이 되었을때 당신 바로 옆에 있을 거에요.
so you can call out my name when you're only lonely
그러니까 당신이 외로울때 날 부를 수 있어요
Now don't you ever be ashamed You're only lonely
지금 당신이 혼자일때는 수줍어 하지마세요
When the world is ready to fall on your little shoulders
세상이 당신의 작은 어깨를 무겁게 누를때
And when you're feeling lonely and small
또 당신이 외로움과 소외를 느낄때
you need somebody there to hold you
당신을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You can call out my name when you're only lonely
당신이 외로울때 날 부를 수 있어요
Now don't you ever be ashamed When you're only lonely
지금 당신이 혼자일때는 언제나 수줍어 하지마세요
darling call out my name When you're only lonely
당신이 외로울땐 자기가 내 이름 불러요.
You can call Darlin' we got lots of time
당신도 자기라고 부를 수 있어요 우리는 시간이 많아요
No, there's nothin' wrong with you Darlin' I get lonely too
아니에요 당신은 잘못된게 없어요. 자기 난 기꺼이 외로움을 삼킬래요.
So, if you need me All you've gotta do is call me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면 당신은 나를 불러야 해요.
Well, you're only lonely Ooh, Ooh,
그래요 당신은 외로움이 에요.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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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여론재판의 ‘독’
김종훈 사회부장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인 멜레투스 등의 고발로 독배를 들고 죽음을 맞이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가 통치권을 장악한 뒤 수천명을 죽이거나 추방한 것을 두고,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며 선동한 결과였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은 고발자의 의도대로 흘러갔고,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내렸다.

15세기 영국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는 콩피에뉴 전투에서 포로가 된 뒤 ‘마녀다’ ‘남장을 했다’ 등 혐의로 종교재판에 회부됐고, 1430년 화형에 처해졌다. 잔 다르크는 전투에 나서기 전 신학적 검증을 받은 독실한 기독교도였다. 남장을 한 이유도 적진 속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시종의 옷을, 전투 중에는 갑옷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 다르크는 정치적 술수와 왜곡된 진술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소크라테스와 잔 다르크의 속절없는 죽음의 뒤에는 대중을 기만하는 이른바 ‘여론 재판’이 자리한다.

2007년 3월, 필자의 미국 연수 때 일이다. 한 국내 방송사는 ‘공무원 해외연수 실태’를 파헤치기 위해 미주리주 컬럼비아시를 방문했다. 두 달 뒤 방송은 “해외연수 공무원들이 공부는 뒷전인 채 허구한 날 골프만 즐긴다”고 질타했다. 방송은 허술한 평가제도의 문제점, 해외연수제도의 허실 등도 다뤘다. 이를 본 시청자 대부분은 “욕 먹을 만하다”며 혀를 찼다. 들끓는 비난 여론 때문인지 대통령 직속 중앙인사위원회는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보도 내용은 모두 ‘사실의 영역’에 있다. 그러나 방송이 놓친 것들이 있다. 당시 컬럼비아시에서 연수 중인 중앙부처 및 지자체 공무원 60여명 중 40여명은 필자가 공부하던 미주리 대학 ‘ㄱ센터’ 연구생들이다. 수업은 하루 4시간·학기당 16주, 연간 32주로 짜여졌다. 매월 1차례 미국 내 공공기관을 견학하고, 숙제와 프레젠테이션(발표)도 해야 했다. 이들이 수업에 빠지는 일도 드물었다. 이들이 골프를 즐긴 것은 골프만큼 ‘값싼 운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컬럼비아시는 두 곳의 대중골프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를 1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 가격이 우리 돈으로 50만원이 채 안됐다. 국내서 헬스클럽 다니듯, 골프장을 다닌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서면경고’라는 징계를 받아야 했다.

캔들 코피의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을 옮긴 권오창 변호사의 말을 빌리면, 여론재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사라진다. 증거절차를 거치지 않은 유죄추정의 논거들이 나라 전체를 논쟁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여론재판 광풍이 불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 자식 논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등 ‘유죄추정의 주장·폭로’가 난무하고 있다. 이 사건·논란들에 공통점이 있다. 현 정권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을 때 터져나왔고, 그때마다 현 정권에 대해 제기되던 화두들은 묻혔다. 국가정보원의 18대 대통령선거 개입 및 정치 관여 혐의가 드러나자, 이석기 의원의 ‘5월12일 모임’ 녹취록이 공개됐다. 채 전 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도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채 전 총장은 현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채동욱 검찰’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및 경찰의 봐주기 행태를 드러내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을 법정에 세웠다. 이 수사는 ‘108만표 차이 대통령’을 창출한 현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는 민감한 것이다. 채 전 총장을 내쫓기 위한 ‘일’은 짜여진 각본처럼 진행됐다. 여권 핵심부에서 “채 총장을 물러나도록 할 것”이라는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왔다. 혼외 자식이라는 흥미 넘치는 주제로 여론은 들끓었고 채 전 총장은 ‘쫓겨나듯’ 물러났다. 그리고 국정원의 대선 개입 및 경찰의 축소·은폐 의혹 사건은 세상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최근 현 정권을 위협하는 일이 또 제기됐다. ‘기초연금 후퇴’ 등 공약 파기에 대한 비판여론이다. 그러자 청와대와 여권은 검찰이 발표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중간수사결과를 앞세워 ‘사초(史草) 폐기다’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했다’ 등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관참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회의록은 국정원에도 있고, 봉하 e지원에도 남아있다. “초안을 삭제했다면 위법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종이문서인 초안은 최종본이 보고되면 정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은 것도 “후대의 대통령들이 읽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검찰의 설명을 보면, ‘통치행위’로 볼 수도 있다. NLL 포기 발언에 대해서도 어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 조성과, 노 전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가 뭐가 다른가”라고 묻는다.

여론재판이 횡행하면 사회 전반에서 ‘사실에 입각한 판단’은 뒤로 물러선다. 그만큼 사회는 후퇴하고, 역사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사회가 딱 그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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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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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나 단체여행을 갈 시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 바로!

마피아 게임이다.

 

학생들이 마피아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지목하고있다.

 

 마피아 게임의 기본적인 룰은 모두 알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선량한 시민을 헤치는 마피아를 지목해서 처단해야한다. 간혹가다 엄한 시민이 당할 수도 있다. 물론 지목될 것같은 시민은 자신이 아니라고 현사코 주장하지만, 다수가 그러하면 처단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꽤 재미있어한다. 서로 예상을 하고 속고속이는 긴장감, 긴박감을 좋아라하는 것같다. 

 

 내 생각에는 현실에서도 마피아 게임이 진행되는 것같다. 하지만 이것은 다같이 모여서 하는 게임처럼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무고한 시민이 마피아로 지목된다면 게임과 달리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이 끝나면 서로 지목한 것을 미안해하고 원래의 친구로 돌아가는 게임과는 달리 실제의 마피아 게임은 선택이 잘못되어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또 처벌도 잔혹하다. 그 사람의 평생 인생을 바꾸어 버리니 말이다.

 

인혁당 사건 당시 재판모습

 

다음은 인혁당 사건의 당시 모습이다.

인혁당 사건(人革黨 事件)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유신반대 성향이 있는 도예종 등의 인물들이 기소되어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해,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인혁당 사건은 국가가 법으로 무고한 국민을 죽인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인권 탄압의 사례로서 알려져 있다.

 

현실에서는 마피아로 선정된 사람들을 사형집행을 할시

비록 실수였어도 절대 게임처럼 다시 살아나 하하호호할 수 없다.[각주:1]

자세한 출처는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B%AF%BC%ED%98%81%EB%AA%85%EB%8B%B9_%EC%82%AC%EA%B1%B4

 

 

 

사례는 이 하나가 아니다.

 

 

 

 

 

빨갱이라는 누명을 무려 49년만에 벗었다. 그들또한 부당하게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들이다.

이런 예는 너무너무 많다. 메카시즘의 의한 이런 희생자들의 예는 너무나도 많다. 검색어에 "빨갱이 누명" 이나 매카시즘이란 단어만 쳐도 그런 사례들은 무수히 많이 나온다.

 

이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아닌가? 시대가 남과 북으로 갈린 시대인 만큼 이런 마피아게임이 일어나는 것은 시대탓이라고 생각하는 생각말이다.

 

하지만 어느시대든 이런 마피아게임은 지속되어왔다. 즉, 마피아로 무고한 시민을 몰고가는 사람들은 어느시대에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에서는 그것이 정적(政敵 : 정치적 라이벌)을 없애고 자신의 권력을 잡기위한 수단으로 많이 쓰인 것 처럼 보이는 것 같다.

 

조선시대로 가보자.

사문난적이라는 용어가 있다.

 

본래 사문난적이라는 단어는 고대 중국에서 사이비 학문으로 궤변을 펼치는 변설가들을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였다. 고려말기 성리학이 도입될 때부터 나타나 존재하였으나 주로 활용된 것은 조선중기, 사림파가 정계를 장악한 명종 후반 이후였다.

이후 성리학 이외에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를 비방하는 단어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조선 중기 명종 중반인 1560년경부터 사림파가 조정을 장악해나가면서 상대방 붕당의 당인들을 매장시키는 악의적인 용어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훈구파 보다는 같은 사림파 중 다른 사상이나 의견을 가진 자에 대한 증오, 경멸의 표시로 남발되었다. 조선후기에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것은 사회적 매장 혹은 사형에까지 이를만큼 치명적인 것이었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82%AC%EB%AC%B8%EB%82%9C%EC%A0%81

 

 

우암 송시열. 당시에는 자신만이 옳은 학문을 하고 나머지는 사문난적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시대의 주류였겠지만, 현재 그의 관한 역사평가는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대표적으로 송시열같은 사람들이 사문난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매장시켰다. 자신의 학문만을 정통으로 여겼고, 그것에 관해 다른 의견이나 생각을 가졌을경우, 사문난적으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 어떤 의도였는지 당시 상황을 알 수 없으나 그로 인해서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였다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사례를 보면 어느 시대나 남과 다른 사람을 마피아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심지어는 목숨을 거둬가는 사례는 과거에도 충분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과거는 사람들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랬고, 지금 빨갱이, 반역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 정당한,확실한 논리일 수 있지 않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권력의 다툼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그 갈등은 원시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 아닐까? 권력을 잡기위해 "저 사람은 적과 내통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예는 정말 흔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잇다. 지금 "빨갱이, 반역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거의 그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과거나 지금이나 뭔가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은 강력한 정적으로 여겨져서 과거 유신정부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죄는 36년이 지나서야 무죄 선고를 받았다.

 

 시대는 달라도 본질적인 것은 비슷한 것같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의 많은 예들이 말해주고 있다. 결국 역사는 반복된다. 정권을 잡기위해 하는 방법은 시대가 변해서 다르게 느껴질지 몰라도 다 똑같이 느껴진다.

 지금이라고 이런 사례가 없을까? 아니다. 지금도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빨갱이, 혹은 반역자로 매도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치생명을 걸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했다면서 그게 틀릴 시에는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이야기했다.

과연 그의 결과는 맞을까? 마피아로 지목을 했지만 결국 마피아로 밝혀졌을까?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런말을 한적이 없으며, 본인도 착각이라고 인정하였다.

 

 

아님말구~

결국 본인의 무리수였음이 밝혀졌으나, 결국 입을 다문체 배째라 식으로 버티면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대체 아니면 말고식으로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을 매장시킬 계획인지 모르겠다.

송시열의 사례처럼 먼 미래에 역사가 밝혀낼 것이고, 심판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2년 라디오에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였다.

 

더이상 현실의 마피아 게임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매카시즘으로 인해서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은 구시대적인 방법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글쎄... 이렇게 주장하는 김무성은 과거 송시열의 사문난적과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나는 단순히 무고한 시민이 조금이나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보기에 이 글이 정치 편향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주로 "빨갱이다.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라는 주장은 어느 세력을 통해 주로 이뤄지는지.

 

이렇게 사문난적, 빨갱이, 종북주의 등은 다수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권력층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들은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어떤 누군가가 정적으로 다가올 시에 "그는 반역자다. 적과 내통했다."라는 주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잇다.

 결국 이렇게 마피아를 만드는 것은 큰 세력에 의해서 이루어져왔다. 그런점에서 비판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편향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공격이 주로 어떤 조직에 의해 일어나는 지 생각해보라!

 

이 글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

자신의 정권획득을 위해 개인의 인생을 망가뜨린것, 국민들을 현혹하고 호도한 것은 정말 벌받아 마땅하다.

저들은 분명 "아니면 말고~"식의 잘못된 행동을 국민(우리)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런 "아니면 말고~" 식에 계속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또한 의식수준을 향상시켜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마피아게임에서 다수(국민)을 움직이는 것은 말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람을 잡고 "누구가 마피아인 것 같다"라고 하면 다수는 그냥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만약 그 다수가 꼼꼼하게 그 사람은 왜 마피아(빨갱이)인지 왜 처단해야 할 사람인지 비판적으로 따지고 조금 더 의식만 앞선다면 시대마다 나오는 이런 억울한 사례들을 조금 조금씩 줄여 나갈 수 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줘야한다.

비록 이런 일들은 조선시대, 일제시대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가 만연했던 전쟁 직후. 심지어 지금도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그러한 사례가 없어져 감을 보여줌으로서

미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와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1.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004년 8월 29일, 인혁당사건 관련 사과요구에 대해서 '(사형판결은) 법적으로 결론난 사항들'이라서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본문으로]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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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이라니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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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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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가 쩌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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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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