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에 해당되는 글 59건

  1. 2020.05.15 기억나는 은사님
  2. 2020.03.25 BTD
  3. 2019.12.24 성탄 전야제
  4. 2019.12.07 고요속의 외침
  5. 2019.11.28 "How often" 게임
  6. 2019.11.01 평범한 건 싫어!
  7. 2018.08.22 압존법
  8. 2017.11.14 불새와 제초
  9. 2017.10.05 관습에 관한 생각
  10. 2017.09.18 잔인한 놈

중 1때 였다.

당시 국어 선생님은 김수현 선생님이셨다. 

본인을 '벼리샘[각주:1]'이라고 하셨다. '벼리'는 어떤 일에 있어서 근본이나 뼈대가 되게 하는 것이라는 순 우리말이다.

벼리샘은 자신의 이야기를 종종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릴적 벼리샘은 호기심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 소녀였다. 

또 벼리샘에게는 우애깊은 오빠가 있었다. 밖에서 노는데 춥다고 하자 오빠가 낙엽을 모아 불을 붙여줬는데 하마터면 산을 태울뻔했다고 하셨다.


내가 배울 당시 국어 교과서는 교육부에서 일괄적으로 만든 교과서였다. 저자 중 한분은 고대 국어교육과 노명완 교수님이었다. 벼리샘은 그 분의 제자라 그런지, 교과서에 아주 충실하게 수업을 진행하였다. 현재 나는 문학작품을 그다지 많이 읽고 있지 않지만, 당시 나는 그 분을 통해 잠시나마 문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읽고 밑줄치고 시험에 나오는것을 가르쳐주시기보다[각주:2]는 인물들의 정서, 감정을 느낄 것을 강조하셨다. 가령 소나기를 배우면 관련된 노래나,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시고, 관련된 일화를 들려주신 좋은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내 글을 무척 좋아해주셨다. 솔직하고, 담백하다고 하셨다. 당시 글쓰기 재능은 나와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나의 글쓰기를 칭찬하고 자신감을 많이 북돋아 주셨다. 

선생님은 국어는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일때 진정한 자기실력을 볼 수 있다며, 2학기 중간고사때 100% 올 주관식 국어문제를 출제하신 적이있다[각주:3]. 그 중 가장 배점이 높은 10점짜리가, '소나기' 소년의 입장이 되서 소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는데, 정말 진솔하게 썼다며 내 글을 다른 학생들앞에서 낯간지럽게 칭찬한 뒤 읽어주시던(?!) 기억이 난다.

교내 백일장때는 '엄마'라는 제목으로 어머니가 그동안 살아오셨던 삶과 어머니의 하루를 있는 그대로 썼는데, 교내 백일장 은상을 받았었다. 알고보니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라고 들었다. 


선생님은 당시 27~28 살이었고, 우리 학교가 첫 부임지였다. 

선생님은 언제나 열정으로 똘똘 뭉치신 분이었고, 그로 인해 국어 시간은 활기찼다. 

본인의 열정대로 따라오지 않는 반 아이들에게 때론 서운함도 보이기도 하셨고,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기도 하셨다. 열정으로 인해 감정적 소모도 많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상관없이 학생들을 한명 한명 보듬아 주셨던 좋은 분이다. 

------


당시 소나기를 배웠다. 

벼리샘은 원래는 중 3 교과서에 실려있는 내용인데, 

요즘 아이들 감수성에 맞게 중 1로 낮추었다고 말했다. 


소나기를 읽던 날 벼리샘을 통해 이 곡을 처음 접했다.





  1. 몇몇 친구들은 이름을 살짝 고쳐 '버리셈'이라고 하였다. 하여간 센스쟁이들이다. [본문으로]
  2. 기억하기론 시험을 위한 수업이라는 느낌을 받은적이 없었다. [본문으로]
  3. 그 많은 학생 채점은 언제 다 하셨을까?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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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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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D

추억팔이/군대 2020. 3. 25. 00:36

2011년 부대 최고 권력자 시절 때 였다. 


후임들은 일과를 마치고 뮤직뱅크를 보고있었다. 

당시 나는 음악 방송엔 별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더군다나 남자 가수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체단실(체력단련실, 헬스장)에 가려고 준비중이었는데,

TV를 보니 남자 몇명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원: 이거 무슨 노래야?

후: 인피니트의 BTD라고 합니다.

원: BTD가 뭐야?

후: 잘 모르겠습니다.


...


원: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인가? 

일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개그 하나 성공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운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인피니트 팬이 계시다면 사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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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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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대에서 나와 Y상병, 맞후임인 J병장은 성당팸이다. 매주마다 항상 성당을 간다. 

---------------

<11월 경>

Y: 정원호 병장님. 성탄 전야제 참가하실 생각없으십니까? 노래 할겁니다. 

원: 하지 뭐. 우리 모두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 딱히 할 것도 없잖아?

Y: 좋습니다. 

당시 별 생각이 없었다. 


나와 Y상병, J병장이 협연을 한다. 

J병장이 기타를 치고, 나와 Y상병이 노래를 한다. 

우리가 부를 곡은 Once(ost) - Falling slowly와 이적 - 하늘을 달리다 였다.


연습을 했다.

Falling slowly가 가장 연습하기 힘들었다. 특히 이 부분이다.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ve made it now


녹음 뒤 들어봤다. 원곡과 다른 창의적 해석이었다.

Y: 정원호 병장님. 무슨 로봇입니까? ㅋㅋㅋㅋ 


도입부야 적당히 읊조리면 될 것 같은데. 사비 부분(절정부, 후렴구)의 감정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라앉고 있는 보트. 절박한 상황, 구원, 희망. 

절박함에 살려달라는 외침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떨리고, 감정이 고조된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감정없이 톤이 차분하고 일정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난감했다. 결국 우리는 Falling slowly에서 90%의 노력을 쏟고, 하늘을 달리다는 그냥 신나게 부르면 되는 곡이기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하려했다.[각주:1]

-----------------

전야제 밤이 다가왔다. 긴장이 되었다.

목에 기름칠을 하면 더 잘 부를 것 같아서 치킨을 먹었다.


순서 배치를 보았다. 

군종성당 주일학교 여자 선생님들 공연 바로 뒤에 배치가 되어있었다.

원: 아놔. 왜 이렇게 배치를? 

군종병: 기대할게요!

원: 완전 초라해지겠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왔다. 

단장님 가족분 내외를 포함해서, 병사까지 100명은 넘게 온것 같다.


점점 더 긴장이 되었다. 별 생각없이 승낙한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

군인; 우와!!!!!!!!!!!!!!

여자 선생님들의 공연이 끝이 난것 같다.


군종병: 자 그럼 다음 순서를 소개하겠습니다. 화생방지원대의 정원호 병장, J병장, Y상병의 공연입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군인: 우와!! 짝짝짝 

박수를 쳐주었다. 착한 군인들.


원: 안녕하세요? falling slowly 부르겠습니다. 


Falling slowly를 불렀다. 

진심을 다해 불렀다. 노래가 끝났다.


원인은 모르겠지만[각주:2] 노래가 끝난 후 정신차리고 보니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갑분싸가 되어 진심 당황했다.


---

원: 네!;;;;; 여러분 이어서 허각의 하늘을 달리다를 부르겠습니다. 


원: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쫒고 있었고. 여러분 박수!!

다행히 호응이 좋았다.  


원: 마른하늘을 달려 

군인들: 오오오오

놀랐다. 계획없던 애드리브였다.

군인 관중들이 훌륭한 무대를 창조해주었다. 


Y, 원: 허약한 내 영혼의 힘을 날개를 달 수 있다면(화음)

환호가 나왔다.


원: 마른하늘을 달려

군인들: 오오오오

참가자& 군인들 :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뒤는 그냥 같이 불렀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모두 울적했을텐데 정말 감사하게도 모두 무대를 열정적으로 즐겨주었다.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듣는 무대가 아니라, 관객도 함께 부를 수 있는 무대였다. 그냥 어울려 같이 놀았다.

내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참고: 전야제 연습과정에서 일어난 해프닝

https://ideaspace.tistory.com/545





  1. 경험이 있는 후임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본문으로]
  2.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falling slowly를 잘못 선곡한것 같다. 즐거운 성탄절에 모두 부대안에 있는 울적한 상황이다. falling slowly같은 노래를 부르면 더 우울해질 것 같다. 만일 다시 이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엄청 신나는 노래를 택할 것이다. (유느님이 왜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BPM이 빠른 노래를 선호했는지 알 것 같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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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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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 이맘때(12월 경)였던 것 같다.
이 시기에는 특목고 진학으로 인해 기말 고사를 빨리친다. 그래서 12월이면 놀자 분위기다.

수학 시간(백원준 선생님)이었다.

한 친구가 호기롭게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원: 수업 안 들어?

친: 음악이나 들어야겠다.

------
그 날도 백원준 선생님은 학생들이 어렵게 느낄만한 문제를 던져주었다.

적막이 가득했고 선생님은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고요---------

갑자기 누가 크게 외쳤다.

"야 백원준 존나 거만하지 않냐? ㅋㅋㅋ"

이어폰을 낀 그 친구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것 같았다.

모두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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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다. Always, usually, often, sometimes, occasionally, rarely, seldom, never ..... 등의 빈도부사 카드가 있다.

빈도부사 카드 3장을 뽑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 카드에 맞게 대답하도록 "How often~?"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령 usually, rarely, often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방이 "usually", "rarely", "often" 이라고 대답하도록 질문해야 한다.

나는 "always", "never", "thrice a week"카드가 나왔다.

신사같은 질문들만 지루하게 오고갔다.
기다렸다. 내 차례다.

원: How often do you go to the moon?

당황한 교실 분위기가 느껴졌다.

옆자리 학생: ...... Can I lie?
선생: No.

옆자리 학생: Never.
원: ㅇㅋ 굿

돌아왔다. 다시 내 차례

원: "How often do you breathe?"
고통받는 옆자리 학생: oh my god! I always breathe.

원 : "always!" ㅇㅋ 굿

-----
그러나 내 질문 때문인지 병맛스러운 질문들이 시작되었다.
-------

타인: How often do you die?
일동: ......?!

모두 공황상태가 되었다.
선생님은 서둘러 게임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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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에서는 무리지어 걸을 때 줄을 맞춰 이동해야 한다. 

대충 다음과 같은 식으로 줄을 맞춰 이동한다.


그날은 차가 없어 다같이 부대로 걸어가야 했다. 

보통 짬이 가장 높은 사람이 인솔자를 하게 되는데, 

그 당시에는 내가 가장 짬이 높아[각주:1] 인솔자가 되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하나 두울 세엣 네엣......

걸음에 따라 구령을 넣었다. 터벅 터벅 걷는데, 너무 따분하여 재미가 없었다. 


元: 참새!

부대원: ???!!??[각주:2]

-----------

부대원: 짹짹!

元: 병아리!

부대원: 삐약삐약!


元: ㅋㅋㅋㅋㅋㅋ 올~ 다 받아주네! ㅋㅋㅋㅋㅋㅋ


이것도 다소 평범하다. 평범한건 싫다.


元: 짭새!

부대원: ????!!??

---침묵 뒤...----

후임A[각주:3]: 짭짭


나와 부대원 모두 공황상태가 되었다. 손과 발이 시공간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후임들에게 무슨짓을 하는건가 싶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인솔을 했다.




  1. 병장 말(?)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뭐지?" 싶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3. 내성적인 성격의 후임이었다. 군생활동안 나를 정말 잘 따르려 했다. 당시 후임이 많은(15~18명 정도?) 고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던진 무리수에 대처해보려 했던 것 같다. 전역하는 날 내 사진에 천사 날개와 몸을 그려줬던 것이 기억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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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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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존법

추억팔이/군대 2018. 8. 22. 22:05
압존법이란 듣는 이를 기준으로 존대 여부를 정하는 어법을 말한다.

나는 군대에서 압존법으로 꽤 고생을 했다.
일병이 되도록(2달이 지나도록) 군대식 말투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분명 긴 시간이었기에 지적을 많이 받았었다.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바로

'윗사람 말 따라하기!'

이 원칙을 적용하면 결코 압존법으로 혼날일은 없다.

Ex)  '야 김하사 어디갔냐?'
원 : 김하사 잠시 화장실 갔습니다.
Great!

'야 홍길동은 왜 안와?'
홍길 오늘 휴가라고 합니다.
Great!

오주현 상병님 어디 계신지 아니?
오주현 상병님 B창고에 계십니다.
Great!

기타 등등

하지만 이 방법도 100%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부를 경우가 그렇다.

Ex) 야 장뿡 어디갔냐?
원 : 장뿡 지금 화장실갔습니다.

안꽝은 면회나갔습니다. 등

선임의 별명을 나도 모르게 부르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걱정해야할 새로운 문제 거리가 생긴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압존법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만큼은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이따금씩 선임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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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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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불새'는 고 1때(2004) 했던 드라마였다.

 

 

 

병맛스러운 개그소재로 쓸 수 있을 것같아 기억해 두고 있었다.

 

 

---------그 후 간간히 써먹었다------------

 

 

군대때 였다.

 

 

무척 더운 여름이었다.

풀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우리대대는 대규모의 제초작업을 하기로 했다.

행정실 2~3명을 제외하고 20명의 사람들이 전부 나와 제초를 했다.

 

나는 병장을 앞둔 상병(베테랑)이었기에,

선두에 서서 제초작업을 하였다.

 

 

대략 다음과 같다.

 

 

제초기를 매고 오는 길이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드립을 날릴 절호의 찬스였다.

 

 

 

 

원: 뭐 타는 냄새 안나요?

 

막내가 갑자기 놀라며 당황했다.

 

등 뒤 제초기가 불타고 있었다.

 

 

 

 

 

 

 

 

 

동료들은 "내 제초기가 지금 불타고 있잖아요" 라는 사건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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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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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이다.

이 글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친척들을 만나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먹었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과거로부터 오랫동안 지켜 내려온 관습이다.

관습들 중에는 오늘날 미덕으로 평가되는 좋은 관습도 있고, 나쁜 관습도 있을 것이다.

 

산책을 했다.

관습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기어나왔다.

내가 겪었던/겪고있는 관습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였다.

 

 

군대때 였다.

나는 병장이었고, Y군과 N군은 나와 같은 생활관이었다.

 

Y군은 자신의 보급품을 잃어버린듯 했다.

 

Y: 아 보급품을 잃어버렸습니다.

원: 꼭 필요한 거야?

Y: 그렇습니다.

 

원: 별다른 방법이 없다면 막내의 보급품을 너가 갖는건 어떨까?

막내한테는 후임이 오면 그 후임것을 가지라고 하면 되지.

그 후임은 다시 새로운 후임것을 가지겠지. 이렇게 이어지는 거야 ㅋㅋㅋㅋ 

 

N: 헉 진짜 악마가 나타났다.

 

Y: 이런 분이 마음을 잘못 먹으면 부대가 큰일나는 겁니다.

 

 

--------------------------------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설득력은 떨어져 보이지만, 나는 후임들에게 괜찮은 선임이었다.

------------------------------------

 

내가 있던 부대에는 꽤 많은 악폐습이 있었다.

뭐 이런 걸 외우나 싶은 것도 많았고,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쓸데 없는 일들도 많았다.

 

악폐습을 처음 접한 이병 시절,

나는 동료들과 몇몇 관습들의 부조리함, 쓸모없음에 대해 함께 공감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계급이 높아질 수록, 동료들은 점점 온건해져갔다.

몇몇은 '이것이 유지되온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러한 악폐습들을 없앤다면, 선/후임간 구분이 흐려지지 않겠는가'라는 의문도 던졌다.

 

그렇지만 물론 내 동료들은 정말 월등하게 훌륭한 동료들이다.

그동안 많은 선임들이 하지못했던 악폐습들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큰 용기를 갖고 결단을 내렸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조금 더 과감하게 악폐습을 없애지 못한 것은 아쉽다.

아마 내가 전역한 뒤에도 없애지 못한 몇몇 악폐습들은 계속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입병사들은 우리가 했던 고생들을 똑같이 겪어왔을 것이다.

 

어쩌면 이어질 미래에도 그 악습이 살아남아 고생이 계속될런지도 모르겠다.

 

악습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없애는데,

내가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한 것은

군생활에서 지금도 아쉬움에 남는 몇몇 일들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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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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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학원에 다녔었다.

 

학원에 올때마다 영어단어를 외워가야 했다.

 

우선순위 영단어라는 책이었는데, 3일치를 외웠고 거기서 60문제가 나왔었다.

 

60문제 중 10문제까지 틀리는 것은 봐주지만, 11개 이상부터는 손바닥 매가 1대씩 추가된다.

남자건 여자이건 간에 예외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단순 암기를 무척이나 낯설어하는 학생이었다.

못/안(?) 외웠기 때문에 거의 항상 매를 맞았다[각주:1].

 

어느덧 나는 매일 안 외워오는 학생의 대명사가 되어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반항아/독립투사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무슨 제임스 딘이냐?

 

----

그 날도 단어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시험을 볼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던 편이었다.

 

그날도 나는 시험에 최선을 다했다.

 

----------채점 뒤 시험지를 나눠주었다-------------

 

웬일인지 그 날은 선생님께 매를 맞지 않았다.

 

 

----------사건의 전말--------------------

 

 

오늘도 내가 아는 단어는 9~10개 정도 뿐이었다.

 

막힘없이 써내려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역시 단어시험에 나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분명 나는 '잔인한[각주:2]'이란 글자를 단어장에서 본 것같았다.

 

여백보다는 빽빽한게 뭔가 나을 것같아서, 나머지 50개를 '잔인한'으로 채워넣었다.

 

 

선생님은 시험지를 나눠주면서 내가 십여년을 가르치면서 이런 학생은 처음이라고 어이가 없어 하셨다.

반 전체에 웃음을 나누어준 관계로 그 날은 매를 맞지 않았다.

 

 

학원친구들은 대단한 패기라며 나에게 감동을 받은 듯했다. 나를 '잔인한 놈'으로 부른 건 덤이었다.

 

학원에서 나의 명성[각주:3]은 더더욱 높아져만 갔다.

 

 

  1. 학원가는 버스안에서 급하게 외웠던 것같다. 13~18개 정도밖에 못 맞췄다. 그러므로 손에 불이나도록 맞았을 거라는 얘기. [본문으로]
  2. 그 단어는 'cruel'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3. famous인지, notorious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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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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