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에 해당되는 글 59건

  1. 2017.06.01 인생 최대의 위기
  2. 2017.01.26 피아노
  3. 2016.12.27 군대에서 몰았던 차량들
  4. 2016.12.17 학교 선배
  5. 2016.12.17 고등학교 수업종소리
  6. 2016.12.14 사회과 부도
  7. 2016.09.15 키다리 vs 숏다리
  8. 2016.08.26 집합
  9. 2016.08.17 나얼 - 귀로
  10. 2016.08.11 별명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 도래할 때가 있다.


 


경험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기에, 나중에는 대단치 않은 일이 되어있겠지만

(훈련소를 다시 입소하게 된다면, 확실히 덜 힘들것 같다)


일단 처음 겪는 당사자에게는 무척 곤혹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


8살 때였다.


물론 박자연과도 친했지만 (참고: 서울 공진초등학교에 관한 글)

이지훈과도 친했다.


내가 검도장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검도장에 등록을 했을 정도로 친했다.


어느날 검도학원이 끝나고 같이 오는데, 이지훈이 새로운 놀이를 제안했다.



장난감 활. 끝에 빨판이 있어 잘 붙는다.

장난감 활쏘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동의하여 문방구에서 500원 짜리 개량 활을 샀다.


우리는 서로 즐겁게 활쏘기를 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는지 하늘위로 화살을 쏘고 줍고 다시 쏘는 짓을 반복했다.


--------------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활을 쏘다가 집근처 약국 간판에 빨판이 의도치 않게 붙어버린 것이다.


약국집 이름은 한솔약국 이었는데

'솔'과 '약'사이에 빨판이 붙었다.


약국 주인은 안에 있었다.


나는 이지훈과 이 사실을 주인에게 말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두려운 마음에 도망을 가고 말았다.


우울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8년의 세월을 살면서 중 이렇게 우울했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께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내일 약국에 가보자고 하셨다.


----

전전반측하다 아침이 왔다.

용기를 내어 약국에 가봤다.


실눈을 뜨고 간판을 봤는데 놀랍게도 활은 없었다.


기적에 감사했다.

활이 왜 떨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당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나는 하느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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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추억팔이 2017. 1. 26. 20:23

8살때 피아노를 처음 배운 것같다.

 

0.

처음 왔을때 내 손을 스케치북에 본떠 색연필로 그렸는데

선생님은 엄지에 1, 검지는 2, 중지는 3, 약지는 4, 새끼는 5라고 번호를 붙이고

앞으로는 이 번호가 손가락 이라고 하셨다.

 

피아노를 치는 방은 폐쇄되어있다.

그러한 방이 8~9개가 있다.

피아노를 처음 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꽤 낯설다. 

 

뭐 익숙해지면 그럭저럭 괜찮다.

 

피아노에 열쇠구멍 있는 곳이 '도'라고 하셨다.

 

뭐 그런 기억이 난다.

 

1.

9살때 였나?

 

파도솔레라미시/시미라레솔도파를 못 외워서 집에 못갔다. 

선생님 거꾸로 뒤집으면 되는 건데 그것도 못 외우냐며 역성을 냈다.

 

아이에게 가르친다는게 조금 어려웠을지는 몰라도

왜 파도솔레라미시 순서인지 알려줬으면 좋았을텐데

 

그때 정말 피아노학원을 다니기 싫었다.

 

2. 

피아노 학원을 2~3곳 정도 다녔는데

어느 피아노학원이든지 절차는 비슷했다.

 

학원에 도착해서 알림장을 선생님께 주면

선생님은 거기에

1 2 3 4 5 6 7 8 9 10 을 써주었다.

 

오늘 연습할 피아노 곡을 한 곡씩 칠때마다

동그라미를 치면 된다. 10에 동그라미를 그리면 다 친것이다.

 

다 치고나면,

선생님에게 다 쳤다고 말한 뒤 확인을 받으면 된다.

(거짓말 탐지과정?)

 

OK가 떨어지면

"자유다!"라고 외치며

학원안에 있는 실내놀이터로 뛰어가

학원 친구들과 볼풀장에서 놀면 된다.

 

그날 곡은 산타루치아 였는데

선생님이 내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불러주셨다.

 

예고없이 갑자기 부르셔서 당황했지만

무사히 연주를 끝냈다.

 

 

"자유다!"

 

3. 공연

 

아마 4~5학년 이었을 것이다. 

학원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행사를 했던 적이 있던 것같은데

 

나도 연주를 하게되었다.

스핀들 '트럼펫 세레나데'란 곡을 연주했다.

 

 

 

한 10일 정도를 단내나게 연습했다.

당시 생각해보니 연주에서 실수를 하면, 선생님 입장에서는

학부모 앞에서 실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난감해 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여하튼 이 곡은 지금 기억해보라하면 할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하게 연습했다.

 

나는 이 곡을 연주하고

후에 2차로 어떤 여자아이와 단소 연주도 했다. 

 

어머니는 바쁘셔서 공연에 오지 못했다.

 

4. 짝퉁

 

내 부족한 피아노실력으로 인해 종종 아쉬움이 들곤 했다.

종종 아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되면 기분은 좋았는데,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때면 이건 원곡가 다르게 영 초라해서

안타까움이 종종 들곤 했었다.

 

 

 

진짜를 연주하고 싶다는 기분

이 아이의 기분도 나와 같을런지.

 

4.1 짝퉁을 벗어나

 

배우다보니 어느덧 내가 곡 다운 곡을 연주하고 있구나를 느꼈던 적이 있다.

소나티네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였던 것같다.  

 

바이엘을 다 끝낸뒤

선생님은 하농책과 부르크뮐러 소곡집 체르니100등을 주셨다.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월/금엔 하농을 하고 화/목에는 소곡집 수요일에는 소나티네 대략 이랬던것같다.

그와 함께 체르니는 매일 연주 했었던것 같다.

 

나는 소나티네를 연주하는 날을 가장 좋아했다.

 

 

선생님은 종종 재미삼아 소나티네 14번을 멋드러지게 연주하곤 했었다.

어느날 선생님이 소나티네 14번을 배워보자고 했을때 뭔가 나도 실력을 갖추게 된 것같아 기뻤다.

그 순간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모차르트의 곡이다.

 

 

워낙 안친지가 오래 되서

지금은 예전만큼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

 

피아노에 관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는대로 계속 추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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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화학병이었다. 자대에서는 화학제독반 이었다.

제독을 하기 위해선 제독장비들도 당연히 다룰 줄 알아야하는데,

제독장비 중에는 차도 있었다.

 

운전교육도 받았고, 운전면허도 있었기에 차를 다룰기회가 있었다.

 

나는 총 4대의 차들을 몰아봤다.

 

1. 화생방 정찰차

 

 

이 차와 관련된 사건은 이 사이트를 참고할 것

http://ideaspace.tistory.com/entry/%ED%92%8D%EC%86%8D-0ms

 

이 장비는 화학작용제가 어디에 있는지 탐지할때 쓰는 장비이다.

이 자동차 안에서는 기압조절 장치가 있다.

차안의 기압이 더 높기 때문에 화학작용제가 침투할 수 없고, 따라서 안전하게 작용제를 탐지할 수 있다.  

 

이 장비는 탐측반의 장비다. 따라서 제독반이 운전할일은 흔한일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전술평가대회때문에 운전을 종종 했었고,

탐측반병사들의 경우 운전에 크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탐측반 병사와 오붓하게(?!) 운전교육을 할때나,

혹은 차량 점검을 나가야 할때 종종 내가 운전을 했었다.

 

수원에 있던 탐측차에 경우 파워핸들이 아니다. 따라서 핸들을 돌릴때 굉장히 힘들다. 이를 악물고 돌려야한다.

핸들을 풀때도 마찬가지로 조심해야한다. 확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는 탄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잘못했다간 손목이 돌아가 버릴 수도 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운전할 때 위에있는 꼬다리(?)라고 할까 탐측장비가 심히 거슬린다.

운전시 나무에 걸리거나 부딪히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한다. 물론 위를 확인할수 있는 거울이 있긴하다.

정찰차는 굉장히 고가의 장비(10억이 넘는다)이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간 군생활이 꼬일 수가 있다.

 

2. 통제차(기아 봉고3)

 

옆에 정치적인것 같은 사진은 무시하자.

 

 

두번째로 몰았던 차는 통제차이다.

 

화생방 상황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지휘할 차가 필요한데, 이 차를 통제차라고 불렀다.

차는 기아모터스의 봉고3이다.

통제차에는 다음과 같이 의자가 달려있어서, 병사들을 태울 수 있었다.

그래서 통제차의 용도는 주로 수송용이었다. 병사들이 밥을 먹으러 가거나 출근할때 사용되었다.

 

나는 일병말때부터 이 차를 몰기 시작했다.

 

나는 직감(부대안에 상주하는 병사)생활을 6개월 했었는데,

아침이 되면 생활관의 병사들을 데리고 왔고, 저녁에는 이 차로 데려다 주곤했다.

 

사회차라 그런지

군대차에 비해 굉장히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고 가장 운전하기 편했다.

 

아, 그리고 에어컨과 히터가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오후 2시에 이 차를 몰면 컬투쇼를 들을 수 있었다.

--

어머니와 한번은 차를 타고 가는데 앞에

군인들이 타고있던 포터가 있었다. 

어머니가 어디 팔려가는 사람들 같아보인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

 

3. K9 제독차

 

 

다음은 K9 제독차이다.

내가 군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몰았던 차라고 할 수 있다.

2.5톤 트럭으로 물은 1500L까지 들어간다.

물을 꽉 채우고 운전하면, 2단으로도 힘겹게 출발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면 관성으로인해 출렁거림을 느낄 수 있다.

 

흔히 군대에서 두돈반이라고 부르는 빵차가 바로 이 차이다.

 

두돈반 2.5톤 차량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듯 하다.

 

이 두돈반을 개조한게 K9제독차라고 할 수 있다.

K9 제독차는 진주 특기학교 있을때부터 배웠다. 지금도 운전해보라고 하면 이 차는 자신이 있을 것같다.

 

핸들은 파워핸들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운전하기 불편하다.  

 

아... 그리고 이 차 앞에 웬 의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과 같은 용도를 위함이다. 

 

 

저렇게 기계가 아닌 인간이 손수 깨끗하게 제독한다.

일병 초까지 저 의자와 굉장히 친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부대에 7월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8월에 UFG훈련이 있었는데 그때 물론 막내였고

나는 바퀴울 의자에 앉아 제독을 하게 되었다.

 

당시 온도는 30도를 넘겼었는데,

방독면을 쓰고, 보호의를 입으면 뭐랄까

여름에 롯데월드 인형탈과 함께 오리털파카를 입고 운동하는 기분이랄까

정말 쉽지 않았다.

 

뭐하튼 그렇다.

 

아 그리고 참고로 이 차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보통 84~85년생.. 짬이 20년은 넘으신 조상장비이다.

사회에서 보통 20년 넘게 탄 차는 폐기처분한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워낙 차 관리가 잘되어있는 탓에 어떤 차는 아직도 정정하기까지 하다.

폐기처분이 났는데도, 쉽게 폐기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차는 간당간당하다.

시동을 거는데 웅웅 소리가 나는데 어떻게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처럼 보여 안쓰러울지경...

 

겨울이오면 대부분의 K9차량의 배터리가 완전히 맛이가기 때문에 점프를 해야한다.

 

배터리 점프 충전

 

 

덕분에 점프충전은 익숙하다.

 

4. K10 신형제독차

 

 

다음은 신형제독차이다. 위에 제독장비를 싣고 달린다.

5톤 트럭이다. 크기는 우리가 흔히보는 5톤트럭을 생각하면 될것같다.

 

상병이 꺾이면서 이 차를 운전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차는 매우 크기가 크다. 그래서 사이드브레이크가 에어식 사이드브레이크이다. 트럭이나 버스가 세울때 나는 김빠지는 소리와 동일하다.

운전을 끝내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작동했는데 그 소리가 날때마다, 내가 정말 큰 차를 몰았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차가 커서 걱정할지 모르겠지만, 파워핸들이라 핸들을 돌리는데 크게 위험하지 않으며 운전도 편하다. 

그리고 히터가 나온다!

또한 이 차는 자동세척이 가능하기 때문에 병사가 의자에 앉을 필요가 없다.

단지 기계로 ON 만 누르면 자동으로 세척액이 나온다.

  

하지만, 그에 해당하는 물자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K10이 부대에 오면, 할일이 굉장히 많아지게 된다.

 

그리고 이 차의 특이한 점은 크레인이 있다는 것.

 

 

 

위에 싣었던 제독장비를 크레인덕에 내리고 올리고 할 수가 있다.

 

덕분에 큰 스케일의 인형뽑기를 할 수가 있다.

 

내가 인형뽑기란 용어를 쓰긴했지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굉장히 무거운 장비로서 안전에 굉장히 유의해야한다.

 

아 그리고 물은 2500리터까지 들어간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

http://panzercho.egloos.com/9992751

 

---

그러고보니

전술평가대회 때문에 화학장비들 제원외우고, 특징외우고 했던 당시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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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김에 하나더,


아마 학교를 졸업하면, 그 학교를 나온 유명한 선배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가 다닌 학교에도 유명한 많은 선배들이 있다.

 

다 소개하기는 어렵고,

중학교, 고등학교 각각 한분씩 대표로 소개해보는게 어떨까한다.


중학교의 경우

유재석씨?가 내 중학교 선배였다.


중학교 도서관에는 그동안의 졸업앨범을 모아놨었는데

어떤 개념없는 아이가 유재석의 사진을 잘라가버렸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에도 탑MC였으니까 말이다)

이름표 색을 보아 아마 1년 후배였던것 같은데

아.. 나는 목격자다. 


그 뒤에 많은 후배들이 얼굴을 못봤을 것을 생각하니

그때 당시 강력하게 제지했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고등학교의 경우 또한 많은 훌륭한 분들이 있지만, 이 선배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 보면 알것이다.


https://ko-kr.facebook.com/DSBR2013/videos/71938893143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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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마다 교실종소리는 다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때의 종소리는 인상깊었는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전학생은 학교 불난줄 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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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시절 그닥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에 뛰놀던가, 축구를 하는 다른 남자아이들과 달리

가끔은 피아노학원에서 배운 곡을 풍금으로 연주하거나

교실 창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거나 혹은 책을 읽거나 했던 것같다.

 

가끔씩 아이들과 놀기도 했었는데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공기놀이나, 빙고놀이 같은 것을 했던 것같다.

 

초등학교 5학년에도 마찬가지로 큰 변화는 없던 것같다. 

그때 내 짝꿍은 이은지라는 아이였는데

키가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자아이였다.

수련회때 장기자랑이 있었는데, 춤을 굉장히 잘 췄던 것같다.

태극기가 가운데 새겨진 베이지색 가방을 메고다녔다.

머리는 노란색이었는데, 맥주로 탈색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곤했다.

 

박자연이 그 아이를 좋아했는데,

집에 갈때면 이은지와 어떤일이 있었는지 묻곤했다.

평소 그 아이 앞에서 행동하는 거나, 선물 같은 것을 준것으로 보아 아마 이은지도 알고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여자아이가 인기가 꽤 있었던 것같다.)

 

나는 그 아이와 한 학기 정도 동안 짝꿍이었다.

그 아이는 친근한 성격이어서 쉬는 시간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같다.

어느날 이은지는 사회과 부도에서 지명찾기 게임을 하는게 어떻겠냐는 참신한 제안을 했다.

 

가령, '명륜동'이라고 외치면, 상대방은 시간을 재는동안 지도에서 명륜동이 어디있는지 찾아야 한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린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었다.

 

해본 결과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래서 이은지와 점심시간마다 그 게임을 하곤했다.

 

사회과 부도에는 많은 지도가 있었다. 세계지도나 한국전도, 미국지도 등 많은 지도가 있었지만,

글자가 빽빽했던 수도권 지도를 가장 많이 했던 것같다.

 

한번은 내가 진적이있었는데,

이기겠다는 마음에, 집에 들어가 몰래 사회과 부도를 놓고 공부한적도 있었다.

 

---

 

아마 지금 내가 알고있는 지리지식에

이 게임이 조금이나마 기여한게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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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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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2때를 생각해보니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노태훈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키가 크고 공부를 잘했다.

 

1학기 중간고사였때였나?

아슬아슬한 차이로 내가 2등을 했었는데

그때 이후로 날 대하는 노태훈의 태도가 달라진듯했다. 라이벌로 인식했달까? 

가령 이런류의 조롱을 주로 하곤했다.

"정원호 ㅋㅋㅋ 엄마 젖이나 더 먹고와 ㅋㅋㅋㅋ"

 

우리반은 키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다.

노태훈은 5번이었는데 그 친구의 키는 174~175cm정도 였던것으로 기억한다.

노태훈은 키다리 3인조로 다녔는데 한명은 2번 백창준이었고 한명은 4번 이대영이었다.

 

삼인조는 떼를 지어다녔다.

 

노태훈과 그 일당들은 조롱 뿐만 아니라 속히 말하면 무릎빵을 하기도 했다.

 

가령, 서있는 정원호를 본다면

3인조는 "Avenger" 라고 외치며 내 무릎뒤를 공격하곤 했다.

(서있는 상태에서는 무릎에 힘이 실려있는데,

무릎뒤를 공격하면 무릎에 힘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무릎 꿇게 된다)

 

원: 앗!

노: 역시 정원호. 나에게 무릎을 꿇다니 ㅋㅋㅋㅋ

 

---------------

어김없이 그날도 "Avenger"를 당했다.

 

"ㅋㅋㅋ 또 무릎꿇었다 ㅋㅋㅋ"

"노태훈 비겁해, 키 큰 3명이 1명을 공격하냐?"

"ㅋㅋㅋ"

"남자답게 승부하자"

"뭐로?"

"농구로 승부하자. 너희는 키가 크니까 나쁘진 않을껄?"

"ㅋㅋㅋㅋ 정원호 질려고 환장했냐?"

"일단 해보자니까?"

"지면?"

"앞으로 형님이라 부를게, 대신 내가 이기면 다시는 "Avenger"하지마라"

"그냥 지금 불러 ㅋㅋㅋ"

"됐고, 2주 후에 붙자"

"ㅇㅋ"

 

--------

 

나와 영택이와 선민이는 항상 같이 집에 갔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도 3인조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상황을 얘기했다.

 

키가 작은 것도 서러운데, 그렇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택이와 선민이는 키다리들에 대한 분노를 금하지 못했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우리가 불리한 조건임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20번, 영택이는 14번, 선민이는 20번 후반대였다.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하교 후 우리는 일주일에 3~4번씩 2시간정도를 농구장에서 연습을 하고 집에 갔다.

 

"원호 학원은 안가?"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일단 연습하자!"

 

나름 열심히 연습했다.

 

---------------평가전----------------

 

체육시간 이었다.

 

체육교사: 자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자유시간이다.

 

노태훈이 다가왔다.

노: 야 정원호! ㅋㅋㅋ 농구대결 어때?

원: 그래! 상대해주지.

 

키다리와 숏다리의 평가전이 시작되었다.

4번 이대영: 야 정원호 지고 울지마라

원: 2:0으로 이겨주지[각주:1] ㅋㅋㅋ

이대영: 개소리하네 ㅋㅋㅋㅋㅋ

 

반코트로 경기를 했다.

경기를 기억해보자면 거의 완패에 가까웠다.

 

이대영과 백창준이 골밑에 있었는데

우리든 상대든 노골이 되면 그 둘이 가볍게 리바운드를 했다.

그리고 노태훈은 가드였는데

노태훈으로 부터 공이 시작되고 이대영에게 패스가 되면 골밑슛을 쏘곤했다.

 

막고는 싶었지만, 키차이로 인해 속수무책이었다.

 

아주 단순한 공격패턴란 것을 알았지만 이기기 쉽지 않았다.

(노태훈은 심지어 조롱하듯이 공을 굴리면서 드리블 했다)

 

10:3이 었나? 대충 그랬던 것같다.

 

"정원호 ㅋㅋㅋㅋ 역시 넌 나한테 안돼"

"아 졌어. 분하다, 다음게임은 정식으로 하는거니까 원코트로 하자"

"그래 ㅋㅋㅋㅋ 지지나 말아라 ㅋㅋㅋ'

 

-------------

이제 본게임을 위한 준비를 해야했다.

 

사실 원코트로 하자는 제안은 전략이었다.

평가전을 해보니, 반코트로 하니까 백창준과 이대영은 거의 골밑 아래에 좋은 자리에서 진을 치기만 하고있었다. 그리고 공이 오는대로 키를 이용해 쉽게 받아먹었다. 이상황에서 우리팀의 리바운드가 정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원코트면 다르다. 원코트는 농구 특성상 진영을 왔다갔다를 많이 하기 때문에 백코트[각주:2]가 늦을 수 있었고, 또한 반코트때처럼 좋은 자리를 고정할 수 없기 때문에 리바운드면에서 키다리들의 유리함이 많이 상쇄될 수 있다. 따라서 원코트라면 우리가 그다지 불리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평가전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우리는 평가전을 거울삼아 전략을 제대로 짜기로 했다.

 

원: 일단 우리는 속공으로 가자. 저쪽이 골을 넣자마자 내가 반대쪽 골대로 달려갈게. 속공으로 찔러줘. 그럼 내가 레이업으로 슛을 넣는 작전으로 가자.

....작전 논의중....

원: 그리고 슛정확도를 높이자. 저쪽이 리바운드를 할 기회를 아예 주지않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에서 계속 연습하자.

 

우리는 합의를 했고 대충 이러한 틀에서 전략을 짜기로 했다.

우리는 남은 한주동안 연습을 했다.

 

나의 경우 (주로 선민이가 찔러주는) 속공으로 받는 패스를 받고 레이업슛하는 동작을 연습했다.

그리고 미들슛을 연습했다. 백보드를 맞고 들어가는 슛(뱅크슛)도 연습했다.  

영택이는 슛정확도가 좋아서 주로 슛 연습을 했다.

선민이는 키에 비해 점프력이 좋았다. 자리선정만 잘하면 리바운드에서 승산이 있어보였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분석까지 했다.

 

영택: 원호 슛을 쏠때는 팔이 이렇게 되어야하고, 점프시에는 앞으로 뛰면서 슛을 날려야해.

 

하여간 많은 준비를 했다.

 

------------------그날이 왔다--------------

 

 

 

경기는 수업이 끝난 오후 4:30

공은 내 공으로 하기로 했다.

15점 내기 승부

 

"노태훈! 이번엔 지지않겠다"

"ㅋㅋㅋㅋ"

 

2번 백창준과 영택이가 점프볼을 했다.

 

이번경기는 저번과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경기는 호각지세였다.

노태훈은 도발하고자 공을 굴리는 드리블을 시도했다. 하지만 저번과 달리 별로 동요가 크지 않았다.

효과는 미미했다.

 

노태훈팀의 주 득점원은 역시 리바운드와 골밑 슛이었다.

하지만 저번에는 리바운드가 거의 n:0 으로 압도적이었다면 이번에는 7:3정도로 훨씬 나아졌다.

선민이가 고군분투로 리바운드를 하면, 나는 선민이를 믿고 적 골대로 뛰어가 공을 받고 레이업슛을 하는 양상으로 진행하였다. 속공작전이 정말 효과가 좋았다. 키다리팀은 알면서도 속공작전에 당했다.

 

엎치락 뒷치락 속에 경기는 종반으로 가고있었다.

어느덧 스코어는 14:14, 노태훈 팀의 공격찬스였다.

하지만, 노태훈 팀은 노골을 했고, 공격권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마지막 공격은 속공이 아닌 천천히 공격을 시도했다.

노골을 대비해 이대영이 골밑을 지켰고 노태훈과 백창준이 수비를 했다.

따라서 마크가 한자리가 비었다.

 

"영택아 여기!!! 빨리"

마크가 빈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자신있는 코스에 있었다.

 

나는 영택이의 패스를 받았다.

 

 

 

---

 

우리는 승리했다.

 

다음날

노태훈은 완전히 풀이 죽어있었다.

 

나는 호기롭게 명언(이라고 생각하고)을 던졌다.

 

"키가 작다고 얕보지마라

노태훈 기억해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각주:3]"

 

-----

이겼을 때의 통쾌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만큼 우리는 정말 그 승부에 몰입을 했다.

그 승리는 내게 중2~중3동안의 자신감의 밑거름이 되었다.

 

 

 

 

  1. 생각해보면 어릴적때부터 말장난의 싹수가 보이긴한것같다. [본문으로]
  2. 공격후 수비시 자신의 코트로 돌아오는 것 [본문으로]
  3. (문자그대로 진짜)중2때 였으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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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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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

추억팔이/군대 2016. 8. 26. 17:48

군대시절 집합이란 것이 있었다.

 

집합이란 병사들을 불법적으로 모으는 행위를 말한다.

집합은 주로 B창고(화학제독장비들을 모아놓은)에서 이루어졌다.

집합은 주로 누군가 큰 실수를 저질렀을때(무슨 사건이 터졌을때) 발생한다.

 

다행히 우리부대의 경우 구타는 없었기에, 주로 말로 이루어졌다.

(심하면 폭언을 하기도 하지만, 폭언도 생각해보면 그다지 많지 않았던것같다)

 

물론 이것은 군대내 악습행위다. 그래서 이것은 간부들 몰래 이루어졌다.

따라서 집합이 생길 시 막내는 자신의 선임들을 찾아다니며 들리지 않도록 귀속말로 조용히 전파해야한다.  

(하지만, 간부들도 알면서 묵인한다.)

 

-----

군대 일이병시절 참 많은 집합을 당해왔다.

상병최선임이 되자, 나도 집합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집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멀리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악습을 했던적이 있었다.

 

------

 

때는 병장 왕고참때 였다.[각주:1]

 

계급이 말해주듯 나는 비교적 자유롭게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실 훈련때가 아니고서야 아침에 차량점검을 제외하면 하는일이 크게 없기 때문에,

주로 후임들과 노가리를 까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지만 당연히 노가리를 까면 간부들에게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숨어서 해야했다.

그날도 신나게 노가리를 까고있었다.

그날의 멤버는 나와 상병 Y와 상병 A와 일병 C로 우리들은 B창고에 숨어서 노가리를 깠다.

뭐 대단한 건아니고 말장난을 치며 노는거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던것같다.

원: 자~ 이제 점심먹으러 나가볼까?

Y,C,A: 예 알겠습니다.

 

문을 열었다.

 

휑함이 느껴졌다.

 

원: 어? 다들 어디갔지?

 

찾아봤다.

 

없었다.

 

나는 3분정도 후임들과 찾은 후 

모든 인원이 점심을 먹으러 갔음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원: 어 점심먹으러 갔나본데?

 

후임들은 당황했다.

 

군대에서 인원을 다 데리고 가는 것은 중요했다.

신속한 전파가 강조되었으며, 항상 단체행동이 요구되었다.

 

아마 이 상황에서는

모든 인원이 탔다고 잘못 전달되었을 것이고 결국 출발했을 것이다.

 

식당은 꽤 먼거리에 있어

후임들과 자전거를 타고 먹고왔다.

 

-------- 밥을 먹고왔다--------

 

같이 먹고온 후임들이 물었다.

 

Y: 정원호 병장님, 애들 안 모으십니까?

정: 그럴 수 있지뭐

Y: 그냥 넘어가게 되면 후임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정원호 병장님을 호구 취급할 겁니다. 그래도 넘어가실 겁니까?

정: 글쎄... 뭐 다음에 잘하면 되지, 일병 C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일병 C는 막내와 차이가 안나는 기수기 때문에, 나보단 막내들의 생각을 더 잘 변호해줄 것같았다.

하지만 정말 뜻밖이었다.  

 

C: 모으셔야합니다.

정: 어? 왜?

C: 막내들에게 따끔하게 가르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각주:2]

 

 

이런...

 

----

병사들을 태운 트럭이 도착했다.

 

사람들은 왕고참을 깜빡하고 간것을 인지한듯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내 눈치를 살펴보곤했다.

 

근기수 후임이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물었다.

 

근: 정원호 병장님 애들 안 모으십니까?

정: 난 그다지.. 그냥 넘어가면 안되나?

근: 그럼 제가 모읍니까?

 

내 선에서 빨리 끝내는게 나을 것같았다.


정: 아... 알았어 알았어

    내가 모을테니까. 너는 모으지마

 

전파를 하기위해 막내를 부르려했다.

막내는 이미 사색이 되어있었다.

 

나는

막내 윗기수를 불렀다.

 

"D야. B창고에 집합 하라고 전해줘"

 

--------------------------집합--------------------------

 

말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막내가 왔다.

 

"정원호 병장님 B창고에 모두 집합 하였습니다."

"그래 가자"

 

B창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25명정도의 모든 병사들이 모여있었다.

 

당시 내가 기억하기로는

(특히) 일이병들이 고개를 푹숙이고 있었고 고요했다.

이렇게 험악한 분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일이병시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위치에서 본 병장은 당시 너무도 무서웠던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 일이병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버린듯 했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도 싫었다. 남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이 이상한 분위기를 해소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 인원파악은 훈련때도 그렇고 이동할때마다 매번 중요하니까..

이번일을 통해 다들 조심하고, 막내가 잘 모를 수 있으니까...

윗 선임들이 서로 신경써주고... 어... 다음엔 이런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다들 내말이 끝날때마다 "예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항상 웃고 인사했던 사이인데 이렇게 되다니, 가해자가 되었다는 현실이 착잡했다.

 

"자 끝났어. 이제 해산하자"

 

그런데 근기수 병사가 말했다.

"정원호 병장님. 후임들에게 더 할 말이 있습니다. 제가 더 이어가도 되겠습니까?"

 

내 멘트가 뭔가 성에 안찼나보다.

 

"허....

알았어. 근데 짧게해라."[각주:3]

 

나는 창고를 나왔다.

하지만 내 부탁과 달리 집합은 짧지 않았다.

내 선에서 별것 아닌일로 짧게 끝내려고 했지만

몇몇에게는 그러지 않았나보다.

집합은 점심시간 내내 계속되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마음이 꽤 편치않다.

 

--

나는 후임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해주는 것인지 생각하려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인사도 하고, 일할때면 같이 대화하고, 걸레널기 같은 허드렛일도 도와주려했다.  

하지만, 정말 후임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어쩌면, 막내는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다니는게 일이었을지 모른다.

바쁜 시간에 막내가 힘들지 않게 인원파악을 편하게 할 수있도록 자리에 있어주는 것이

(그런 겉핥기 행동보다) 더 큰 배려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 행동이 막내를 힘들게한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웠던 것같다.

 

그 집합사건은

내가 굉장히 힘들었던 이등병시절의 초심을 잃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내가 후임들을 진정 따뜻하게 배려하고 있었던 것인지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1. 위에 선임이 두명정도 있었으니 서열 3위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둘은 사실상 열외였으니 왕고라고도 볼 수있다. [본문으로]
  2. 내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나는 C일병과 허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C일병은 자기 소신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3. 내가 악습을 방조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해명해보자면, 물론 내가 계급이 높아 억지로 하면 제재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나만큼 내 근기수도 계급이 높았을 뿐더러, 많은 후임들이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존중할 필요도 있었다. <존중과 관련해서 이전에 근기수들과 마찰이 있던 적이 있었다. 추후에 말할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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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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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일병일때 였을거다.

 

군대에서 5개월간 왕고를 했던 Y병장이 나를 불렀다.

(Y병장은 물론 좋은 분이었지만 꽤 무서웠던 사람으로 기억 )

 

Y: 원호 노래 잘한다며?

원: 노래를 좋아합니다.

Y: 한번 불러봐

원: 귀로 불러보겠습니다.

 

나는 귀를 잡고 펄럭펄럭 거렸다.

 

Y: ? 뭐하는 거야?

원: 귀로 부르고 있습니다.

 

Y: .....

원: .....

 

내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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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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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추억팔이/학창시절 2016. 8. 11. 13:57

학창시절 나에게도 별명이 있었다.

 

누군가 내 별명을 묻는다면 아마도 난처해할것이 분명하다.

 

내 별명은 '원호지존'이다.

 

낯간지럽다.

 

 

별명이 붙여진 이유를 생각해보면 역시나 단순하다.

 

기원은 아마 고2때 첫 체육시간이었던것같다. 그때 내가 아마 임시반장이었던 것같다.

 

축구를 했는데 골을 넣었다.

 

그리고 나는 '원호지존'이 되었다.  

 

 

 

별명이 성립하려면 여러사람들의 암묵적 동의가 있어야한다.

 

보통 첫 사람이 명명식을 거친뒤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몇번 밀어본다.

 

하지만 주위친구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그새 반응은 시든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려는 몇몇 친구들의 시도[각주:1]가 있곤했지만,

 

그때마다 호응은 시들했고, 그래서 마땅한 별명이 없는 상태였다.

 

그와 달리 '원호지존'은 타이슨이 별명인 김종혁이란 친구가 주도했고 

고2시절 내내 따라다녔다는 점에서 꽤 흥했던 것같다. 

 

원: 내가 왜 원호지존이야?

타이슨: 넌 존재자체가 지존이야.

※ (타이슨이란 별명은 중학교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고등학교 까지 따라왔다고 한다. 안습 근데 진짜 타이슨 닮긴함.)

 

물론 처음에는 원호지존이란 별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주 부담스러워서 손사래 쳤는데 그게 도리어 역효과를 내어 더 확대되었다.  

 

이따금씩 언어영역을 잘 보면 '언어지존'이라고도 불렸다.

 

고3이 되었다.

물론 고3때 대다수의 같은 반 아이들은 내 별명을 몰랐지만, 2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를 '원호지존'으로 불렀다. 그래서 원호지존이라는 별명은 졸업할때까지 지속되었다.

 

--------------

 

생각해보니 별명으로 굳히면 주홍글씨 처럼 지겹게도 따라다니는듯 하다.

 

몇몇 친구들의 예를 보면 그런것같다.

 

고2때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이 시험 주관식 문제에 지문으로 나온적이있다.

 

주인공에 대한 점순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을 묻는 문제였다.

 

답은 '감자 세 개' 였는데,

 

한 친구는 안타깝게도 답을 '니나 먹어라'로 적었다.

 

이 답안은 굉장한 임펙트를 주었고, 그 친구는 1년 내내 '니나 먹어라'로 지칭되었다.

 

 

그러고보니 중2때 였나 김창후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우연히

 

김용택 시인의 이 글[각주:2]이 교과서에 실리는 바람에

 

그때 이후로 이름이 불리든, 발표든, 무언가 할때마다

그 시그널이 단체로 합창되었다.

학교를 땡땡이 치는 아이로 둔갑되었다.  

 

 

생각해보니

별명은 억지로 민다고 되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즉, 적절한 타이밍, 착착 붙는 어감, 이름, 외모등의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나올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

지존이라니

 

 

 

 

  1. 가령, 유노윤호의 아류인 '워노원호'를 만드려는 움직임이 잠시 있긴했다. [본문으로]
  2. '창우야 다희야 내일도 학교에 오너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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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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