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철학을 공부한다.
몇몇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과학철학에 관해 정의내리는 것을 요구하곤 한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가령, '과학에 관해 생각/탐구하는 것'으로 과학철학을 정의 내린다면,
이는 너무 넓은 정의이다.
과학철학 뿐만 아니라, 과학사회학이나 여타 과학과 관련된 여타 학문들도 포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흡족한 정의가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의 성공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과학철학을 너무 좁게 잡은 것이다.
과학철학은 물리학의 개념(가령, 양자)을 다루기도 하며,
나아가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 같은 것에 관해서도 논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철학의 모든 특징들을 포괄할 수 있는 정의를 내려야하기 때문에, 이 역시 흡족한 정의가 아니다.
과학철학에 꼭 맞는 정의가 없는 것 같기에,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당혹스러워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뭐 여타 철학자들도 하지 못했던 작업이니까 죄책감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지만 말이다.
----대안책-----
지금은 누군가 나에게 '과학철학이란 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철학을 하는 것인데 그 대상이 과학인 것'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러나 이 대답은 올바른 답이 아니다. 나는 속임수를 쓴 것이다.
이는 마치 민주주의(民主主意)를 '국민들이 주인이 되서 다스리는 형태'라고 정의내린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이는 '민주주의'의 한자를 풀어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얼버무린 과학철학의 정의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을 대상으로 놓고 하는 철학'이라고 답한 것은 제목을 길게 늘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순환적이다.
과학철학이 철학을 하는 것이라면, 1. 철학이 뭔지,
또 그 대상이 과학이라면, 2. 과학이란 것이 무엇인지(어디까지가 과학인지)를 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정도로 대답을 하면, 보통은 "음~ 그렇군.."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아마 질문자에게는 (명료하진 않겠지만)
'과학'과 '철학'이란 개념이 어떤 것인지 대략적으로나마 인식이 되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