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피자를 먹었다.
(21.10.16)
친구들과 피자를 먹었다.
(21.10.16)
글쓰기 과제 채점을 해야 했다.
제출일이 되어 확인해보니,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제출하지 않았다. 1
물론 학생들이 적게 낼수록, 채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하다.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손해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이에 관해 평가를 받는 것은 굉장히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글을 쓰는 능력은 졸업 후 어떤 분야에 진출하든 꼭 필요한 유익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공지를 했다. 늦게 내더라도 상관없으니, 본인의 글에 대해 첨삭&평가받을 수 있는 유익한 기회를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보니, 과제를 미제출한 인원 중 절반이 드롭을 했다.
오잉?
마침 휴가였고, 창원에 친구와 동아리 선배님[호칭은 '형'이다]이 있어 겸사겸사 놀러가기로 했다.
-----------
창원 온지 이튿날, 동아리 선배를 뵈었다. 오랜만에 뵈어서 정말 반가웠다. 선배님은 함안에서 나고 자라셔서 이 고장을 정말 잘 아신다. 한달음에 달려와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동안의 안부 대화로 웃음꽃을 피웠다.
선배: 밀면 먹자. 맛있는데 있어.
창원에 있는 맛집에서 밀면을 먹고 나왔다.
----[차에서]---
선: 원호 어디 갈래? 진해 가볼까?
원: 사실 진해는 어제 다녀와서요... 마산은 어떤가요?
선: 마산은 볼 거 없어.
원: 아.. 그렇군요.
선: 그럼 거제도나 가볼까?
원: 거제도요? 멀어서 운전하기 힘드신건 아닌가요?
선: 아니 ㅋㅋㅋ 진해에서 좀만 더 가면 돼. 금방 가. 나도 가끔 놀러가 ㅎㅎ.
-----------운전 시작-------------
선: 원호 음악 좋아하나?
원: 그럼요!
선: 아이돌 음악도 좋아하나?
원: 앗.. 아이돌 음악은 거의 안 들어요. 하지만 웬만하면 괜찮아요. '쏘리쏘리', 'Friday, saturday, sunday...' 같이 의미없는 말만 반복하지 않으면 될 것 같긴 한데요.
해안가 드라이브를 했다. 쾌청한 날씨의 바다여서 더욱 좋았다.
----------------------------------
선: 거제도는 다리가 놓여져서 사실상 육지나 다름없지.
거가대교를 건너는 도중에 선배는 어떤 섬을 가리켰다.
선: 원호! 저 섬 아나?
원: 어? 모르겠는데요.
선: 저도라고 들어봤나?
원: 아... 저기가 저도구나. 대통령 휴양지죠?
원: 저도 가보고 싶네요.
선: .......
거가대교 가는 도중 터널이 나왔다.
선: 여기 해저터널이야. 우리가 사실은 바닷속을 달리고 있는 거지.
원: 오, 그렇군요!
무척 흥미로웠다.
---------------
거제도 도착
선: 막상 왔는데, 어디를 갈까...? 원호! 거제도에서 대통령이 두 명 배출된건 아나?
원: 아...! YS와 문재인 대통령이군요. 이 섬에서 두 명의 대통령이 나왔다니 놀랍네요.
선: ㅋㅋㅋ 그래. 이왕 왔는데, YS 생가에 가볼까?
--------------
YS 생가에 갔다.
YS 생가에서 YS에 대한 여러 기록들을 보면서, '대도무문'이란 말로 알 수 있듯이 대담하고 거침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나는 일화를 하나 말해보자면, YS의 부친은 멸치 잡이를 했고, YS는 매우 부유하게 자랐다. YS가 7~8살이었을 무렵, YS는 집안의 말려 놓은 멸치를 지키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멸치를 훔쳐가려고 하면, YS는 "다 큰 어른이 물건을 훔쳐가면 도둑놈이지요!"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YS의 대학교 시절 성적표도 있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시절 성적표인데, 학점이 너무 안 좋았다. 철학과 전공 과목 성적도 봤는데, 분석철학의 경우 성적이 그닥 좋지 않았다. 4
성적이 평범하진 않아서 이 또한 인상적이었다. ㅎㅎ
---------
YS 생가를 간 뒤, 거제도를 한 바퀴 돌았다.
-------거제도 관광 후------
창원으로 돌아와 선배와 저녁으로 조개구이를 먹었다. 선배님이 사주셨다.
원: 이렇게 드라이브도 해주시고, 맛있는 것도 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 아니. 너와서 겸사겸사 거제도 간거야. 그리고 당연히 사줘야지. 오히려 먼데 와주니 고맙지.
[식사 후]
선: 많이 늦은 거 아이가, 자고 내일 가는게 어떻겠나?
선배님은 모텔도 알아봐주셨다.
원: 앗! 아니에요. 제가 알아볼게요.
이미 선배는 모텔 어플을 통해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감사하게도 이 비용 역시 선배님이 대주셨다. 선배님도 모텔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5
원: 와서 얻어 먹고만 가네요. 형, 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선: 다음에 서울가면 한 번 쏴 ㅋㅋㅋ
-------------------------
모텔에 왔다.
선: 나 먼저 씻을게.
원: 예. 먼저 씻으세요!
방을 한 번 둘러보다가, 놀랐다.
화장실이 투명했다.
원: 헐, 형! 씻는거 다 보이는데요? 맙소사!
어쩔 수 없이 순응하기로 했다.
TV나 볼까 싶어 TV를 틀었다.
성인 방송이 나왔다.
원: 아..... 왜이래.....
채널을 변경했는데, 계속 성인방송이 나왔다. 채널만 몇 십개 인 것 같았다.
결국 뉴스를 시청하기로 했다.
편하게 보려고 침대에 누웠다. 무심코 천장을 봤는데, 누워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거울 천장이었다.
원: 아놔....
당장 몸을 일으켰다.
이 역시 순응해야 할 것 같았다.
[자기 전]
형: 이거 재미있어. 이거 보자.
중화 TV로 대군사 사마의를 보았다.
예전부터 삼국지를 좋아했기에 재미있게 보았다.
보고 잠을 잤다.
-----------
그럭저럭 잘 자고, 서울로 올라왔다.
-끝-
사족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선배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생각난 김에 안부 인사라도 한 번 드려야 겠다.
친구 A와 드라이브를 갔다. 라디오가 나왔다. 재결합에 관한 사연이었다.
원: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A: 절대 안 변함.
원: 그래. 그렇겠지...
그러면 커플들이 헤어질 때, "고칠게, 달라질게,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다짐은 지켜지기 힘들다고 보면 될까?
A: 난 그렇게 생각해. 사람은 절대 안 바뀌어.
원: 그런데 한편으로는 잘 모르겠어. 예전에 엄마랑 크게 부딪힌 적이 있었어. 당시 나는 '~~하신 것은 꼭 고쳐주셨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 그 이후로 엄마는 놀랍게도 그렇게 해주셨어. 우리 엄마는 고집이 센 분이신데, 나를 위해 고치신거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A: 가족이니까 그런거지. 일반적으로는 안 그래.
원: 글쎄 가족이면 다 바뀔까? 어쩌면 더 정확하게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니까, 맞춰주신게 아닐까 생각이들어.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도 좋지않을까?
사랑은 어떻게 몇 십년의 관성을 깨버릴 정도의 큰 힘을 갖는 걸까? 도대체 사랑은 뭘까?
A: 모르겠음 ㅋ
(21.08.07)
코인하는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내가 봐도 저질 개그인 것 같아서, 자발적으로 슬픔 표시를 추가하였다.
아기들은 기본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주변을 보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배가 부르고, 졸리지도 않고, 주변에 보호자가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 등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주변 물체를 만지거나, 입에 넣어보거나 하는 식으로 세상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나는 아기들이 물건을 만지고 느껴보는 것은 일종의 공부라고 생각한다. '이건 색깔이 이렇구나', '감촉은 이렇구나', '맛은 이렇구나', '이런 소리가 나는 구나' 등을 느끼며 물체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다. 1
-----------
마찬가지로 공부를 한다는 것도 많은 기본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이룰 수 있는 고차원 활동이 아닐까 한다. 2
건강, 정서적 안정, 생계에 대한 고민도 없어야 하고, 사랑하는 주변 사람(가족, 친구)들이 행복해야 하는 등 의식주를 포함한 여러 가지 기반이 뒷받침 되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작업인 것 같다. 3 4
내가 안심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무대 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수많은 지지대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으며, 대학원 입학 당시 가졌던 꿈을 비슷하게나마 유지하고 있다. 이는 내 지지대들이 오랜 시간 지금까지도 잘 버텨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지대들이 지금도 지탱하고 있는 이유는 순탄한 주변 사람들, 환경 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변 환경이 변했다면, 나도 예외없이 꿈을 포기하고 다른 일에 종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이맘 때에 대학원에 입학했었다. 그때를 돌아보며 현재 내 주변 사람들, 주변 환경에 대해 잠시 동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남동생 주호와 대화
예전 사진이다.
해수욕 마치고 돌아가는 길.
비가 내렸다.
어느덧 pt 48회차가 되었다.
비교적 다른 운동들은 그럭저럭 할만 하지만, 다리 운동은 여전히 힘들다.
군대 훈련(각개, 유격) 보다 더 빡센 1시간을 매번 겪어나가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단련되는 느낌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세부 목표가 없이 막연하게(무작정 큰) 목표를 설정하면 쉽게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가령 막연하게 "10km를 뛰자", "1시간 동안 빡세게 운동하자"라고 하면, 초반 고비에서 '아 너무 많은 양이다. 난 못해'라는 생각에 제풀에 지치고만다.
큰 목표를 염두해두고 일단 세세한(세부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가령, '일단 이 다리 운동을 끝내보자.', '저 앞 불빛이 있는 곳까지 한번 가보자.' 한다.
세부적 목표를 세우면, -막연한 목표를 세웠을 때보다- '일단 시작해보자'라는 마음이 더 쉽게 드는 것 같다.
세부 목표를 달성하면,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도록- 세부 목표를 세워야 한다.
(불빛까지 간 상황) '저기 월드컵 경기장이 있다. 저곳까지 가보자.' 라고 다짐한다.
cf)박목월- 가로등
https://ideaspace.tistory.com/950
그 과정에서 점차 끝에 다다르는 것이 보이게(느껴지게) 되면, 힘이 나게 된다.
물론 중간중간 힘들다는 생각(그만하고 싶다는 유혹)이 들 때가 있다.[물론 무시하면 좋지만 https://ideaspace.tistory.com/1018//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 반드시 있다.]
그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1.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잘할 것이다.
"지난 pt 47회 동안 한번도 '그만하겠다', '살살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없이, 포기하지 않고 관장님이 주신 모든 과업을 완수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운동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매번 런닝때마다 5km 완주했듯, 이번에도 5km를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2. 성취하고 나서의 달콤함
"집에 이온음료가 있다. 끝나면 마시면서 시원하게 쉬자."
참고: 조조의 통솔력 - 매림지갈
https://blog.daum.net/snr2013/5
나는 내 몸을 통솔하는 총사령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내 몸뚱아리들을 잘 통제/통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남은 pt 도 포기 없이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이 늘은 것 같다.
오늘은 내 방의 역사에 대해 -대단치 않은- 짧막한 글을 써볼까 한다.
현재 내 방은 원래 오랜 시간 동안(2004년 이래로) 여동생 방이었다.
나만 3층에 살았다. 부모님과 남동생, 여동생은 2층에서 생활하였다.
-=-=-=-=-=-=-=-=-=2016년-=-=-=-=-=-=-=-=-=-=-=-=-=-=-=-=
2016년에 우리 어린이집이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되면서, 1층에 대대적인 공사가 단행되었다.
참고: https://ideaspace.tistory.com/969
1층 공사로 인해 어린이집은 2층에서 임시 운영되었고, 우리 가족은 전부 3층으로 올라와 살게 되었다.[3층 거실에서 3명이 같이 자곤 했다...]
어린이집 공사가 다 끝나고, 1층 어린이집이 다 정리가 되고 나서야 가족들은 2층으로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
현재, 2층 곳곳을 잘 살펴보면 당시 어린이집이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령, 1. 모든 방 벽지가 기린, 호랑이, 코끼리와 풀들이 그려져 있는 아동용 벽지이다.
2. 화장실 문을 안에서 못 잠그게 되어있다. 이는 아이들이 화장실 안에서 문을 실수로 잠그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문고리를 고칠 수 있지만, 가족들 모두 별다른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있어(귀찮음?), 아직도 문고리가 그대로이다. 1
=-=-=-=-=-=2017년-=-=-=-=-=-=-=-==
2017년 여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신혼집을 구하는 동안 일단 3층에서 살림을 차리기로 했다.
이로 인해 나는 -3층에서 내려와- 2층 여동생 방에 살아야 했다.
가구를 새로 사거나 옮기는 것이 귀찮아서, 여동생의 가구들을 그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 방의 침대, 책꽃이, 책상, 옷장은 전부 핑크색이다. 몇몇 친구들은 핑크색을 좋아하냐고 진지하게 묻기도 하는데, 핑크색에 특별한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물론 지금도 핑크색 가구들을 쓰고 있긴 하지만).
-=-=-=--=-2018년=-=-=-=-=-=-=-=
여동생과 매부가 출가하였다.
3층으로 다시 comeback할 수도 있었으나, 3층에 세를 놓는 것이 좋겠다는 엄마의 제안이 있었다. 나는 수긍했고, 2층 방에서 계속 살기로 했다.
-=-=-=-=-=2019년-=-=-=-=-=-=-=-=-=-=-=-=
여동생과 매부가 여러 사정으로 다시 3층에 돌아오게 되었다. 2
동생의 이삿짐을 들여오기 위해 나는 내 방을 정리하였다.
장롱을 비롯해서 여러 짐들이 내 방 창문으로 들어왔다.
문제는 냉장고였다. 이 냉장고는 큰 맘 먹고 구비한 매우 크고 좋은 신형 냉장고였다.
다행히 냉장고는 창문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이제 내 방 출입문을 통과할 차례.
인부 A: 자 이제 문을 통과해봅시다. 다같이 으쌰.
인부 B: 으쌰.
인부 C: 문이 작아서 통과를 못하겠는데요?
인부 A: 아.... 문이 좁네. 이걸 어쩐다..
엄마, 여동생 & 매부, 인부 아저씨는 심각한 논의를 했다.
결국
....
냉장고는 내 방에 두기로 했다.
----이후-----
母: 썰렁한 거(냉장고?)랑 제일 썰렁한 사람이 이 방에 있네.
얼마 동안 내 방은 '썰렁방'이라고 불렸다.
-=-=-=-=-=-=-=-=현재-=-=-=-=-=-=-=
내 방은 많은 책이 특징인 것 같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혹은 책방에 갈 때마다 책을 사다보니 꽤 많아졌다. 친구들은 방의 많은 책들을 보고 꽤 놀라는데, 이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일단 나는 처분, 정리 같은 복잡한 앞날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손 닿는 거리에 많은 책이 있어 무척 좋고 편리하다는 점만 생각하려 한다.
-=-=-=-=-=-=-=-=-=-=-=-=-=-=-=-=-=-
내 방에는 많은 책, 아동용 벽지, 핑크색 가구, 냉장고가 있다.
내 공간이지만, 사실 이 공간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꾸며졌다.
생각해보니 내 방이지만 방의 물건, 배치, 공간은 오롯이 내 생각대로 이루어진 게 아닌 것 같다.
내 방은 다양한 상황들이 혼재되어 만들어진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4
새로운 공간 배치로 인해, 처음엔 약간 불편하지만, 별 생각없이 있다보면 잘 적응하는 것 같다. 5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내 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매우 많아졌다. [내가 컨트롤 하지 않은 배치, 사물 등이 있지만]나는 내 방에서 꽤 만족스럽게 잘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