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이 발달하기 전, 최악의 피부병은 매독이었다. 매독은 가벼운 부스럼으로 시작해, 뼈가 드러날 정도로 피부가 썩어들어나는 병이다.

이러한 매독은 장소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질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질병', 독일에서는 '프랑스 질병',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질병',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은 '프랑스 질병'이라고 불렀다.

희생양을 찾으려는 본능은 인간 본성의 핵심이다. 매독을 스웨덴 사람이 '스웨덴 질병'이라고 부른다거나, 러시아 사람이 '러시아 질병'이라고 부를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다. 우리에겐 비난할 사람이 필요하다. 만약 어떤 외국인이 어떤 병을 옮겼다면, 그 외국인이 속한 나라를 주저없이 통째로 비난하곤 한다. 자세한 조사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팩트풀니스 9장 비난 본능 307p.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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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A와 드라이브를 갔다. 라디오가 나왔다. 재결합에 관한 사연이었다.

 

원: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A: 절대 안 변함.

원: 그래. 그렇겠지...

그러면 커플들이 헤어질 때, "고칠게, 달라질게,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다짐은 지켜지기 힘들다고 보면 될까?

A: 난 그렇게 생각해. 사람은 절대 안 바뀌어.

원: 그런데 한편으로는 잘 모르겠어. 예전에 엄마랑 크게 부딪힌 적이 있었어. 당시 나는 '~~하신 것은 꼭 고쳐주셨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 그 이후로 엄마는 놀랍게도 그렇게 해주셨어. 우리 엄마는 고집이 센 분이신데, 나를 위해 고치신거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A: 가족이니까 그런거지. 일반적으로는 안 그래.

원: 글쎄 가족이면 다 바뀔까? 어쩌면 더 정확하게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니까, 맞춰주신게 아닐까 생각이들어.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도 좋지않을까?

사랑은 어떻게 몇 십년의 관성을 깨버릴 정도의 큰 힘을 갖는 걸까? 도대체 사랑은 뭘까?

A: 모르겠음 ㅋ

 

(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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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행복의 정복>> 4장에서 러셀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자극을 버리고, 조용하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조용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지루해보이지만 지루함(권태)을 견디는 힘이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 결론을 내린 것일까?

나는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해야하는 대학원생이다. 논문을 쓰고 공부하는데 가장 힘든 것은 지루함, 외로움, 즉 권태를 견디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점에서 러셀의 주장은 어떠한 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러셀의 생각은 외로움, 고독함을 느끼는 현대인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이를 정리하여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요약 시작-----------

권태(지루함)은 인간 특유의 감정이라고 여져진다. 짐승들은 권태와 비슷한 것을 느낄 겨를이 없다. 적을 경계하거나 먹이를 찾는일, 짝짓기 등에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권태의 반대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극이다. 평소와 다른 일(자극)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권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사형당하는 순간을 생각해보라. 매우 불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수렵 채질 시절에는 권태를 느끼지 않았다. 동물을 추적하는 것, 전쟁, 구애 역시 자극적이었다. 원시인은 옆에 잠든 남편 옆에 누운 여자와 정을 통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코 권태롭지 않다.

하지만, 농경 사회로 접어들면서 삶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시간을 보냈다. 이후 아버지는 잠들고,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딸들은 '죽거나 딴 곳에 가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잠겼다. 딸들은 책을 읽을수도 없고 방을 나올 수도 없었다. 중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사람들은 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다. 방 안의 촛불만이 어둠을 밝히고, 길은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이기에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생활은 지루했기에, 마녀 사냥만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유일한 소일거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한가? 오늘날 사람들이 겪는 권태 정도는 이전보다 덜하지만, 권태에 대한 두려움은 훨씬 깊다. 현대인들은 권태를 피하기 위해(=자극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가령, 사람들은 자동차 혹은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타고 영화를 보러간다. 집집마다 라디오, TV가 있고, 젊은 남녀가 만나는 것도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쉬운 일이 되었다. 

사회적 계층이 높을수록 점점 강렬한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부자들은 권태로울 새 없는(지루할 새 없는) 삶을 이상으로 여긴다. 나[러셀]는 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이상을 달성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전날 밤의 즐거움이 클수록 아침의 권태는 더 깊어지게 된다. 결국 중년이되고, 노년이 될 것이다. 

권태는 인생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로서, 전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자극이 지나치게 많은 삶은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다. 많은 자극을 바라는 사람들은 환희에 가까운 감격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점점 더 강력한 자극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가령, 후추를 병적으로 좋아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은 후추를 먹어도 본인은 별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지나치게 많은 자극은 건강을 해칠뿐만 아니라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즐거움이 점차 무뎌지게 된다. 나[러셀]는 자극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양에 있다. 자극이 너무 많으면 심신을 황폐하게 한다. 그러므로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서 필수적이다. 

아무리 훌륭한 소설이라도 지루한 부분이 있고, 훌륭한 위인들의 삶 역시 결정적인 몇 부분을 제외하고 흥미거리가 없다. 칸트는 평생 동안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6킬로미터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고, 다윈은 세계일주를 한 뒤 남은 생애를 자신의 집에서 보냈다. 마르크스는 몇 차례의 혁명을 선동 한 뒤 여생을 대영 박물관에서 보냈다. 전체적으로 조용한 삶이 위인들의 특징이며, 위인들이 누렸던 기쁨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결코 흥미롭게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이 점에서 비난 받아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영화, 음식 같은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너무 많이 제공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날마다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한다. 어린 아이는 단조로운 삶 속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오락 거리를 자주 제공하거나 지나치게 다양한 인상(잦은 여행, TV 등)을 심어줘서는 안된다. 이런 아이들은 어떤 성과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견뎌야 하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지루함이 유익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루함을 참아내지 않고는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가벼운 흥밋거리나 오락에 빠져있는 젊은이에게 건설적인 목적이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젊은이의 관심은 멀리 있는 목적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비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써보자면, 우리는 대지의 창조물이며, 우리의 생명은 대지의 생명의 일부분이다. 대지의 생명의 흐름은 매우 더디다. 대지에게는 봄과 여름 만큼, 가을과 겨울이 중요하다. 즉, 활기찬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평온한 휴식도 중요하다. 인간은 수 세기에 걸쳐 대지의 생명[정리자: 자연 or 자연물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과 접촉해왔다. 대지의 생명[각주:1]과 접촉하는 것은 특히 어른보다 아이에게 중요하다. 

런던에만 살다가 처음으로 시골 초원에 간 일이 있다. 당시 겨울이었고 모든 것이 축축하고 진흙투성이었다. 어른들이 보기엔 흥미 없었으나, 두 살배기 아이는 황홀감에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 아이는 땅바닥에 앉아 얼굴을 풀속에 묻었다. 아이가 가졌던 이러한 황홀감은 매우 근원적인 것이다. 

반면, 오늘날의 쾌락 중에는 대지와 접촉할 여지가 없는 것들이 많다. 좋은 예로는 도박이 있다. 도박을 통한 쾌락이 끝나자 마자, 그 사람은 답답함, 불만, 허기를 느낀다.  반대로 대지와의 접촉은 깊은 충족감을 준다. 물론 이로 인한 쾌감은 자극적인 오락에 비하면 훨씬 약할 수도 있지만, 쾌락이 끝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남아 있다. ex) 셰익스피어 서정시에도 두살 먹은 아이가 느낀 것과 같은 기쁨이 가득 넘치고 있다. "들어라, 종달새의 소리를Hark, hark, the lark", 혹은 "여기 노란 모래밭으로 오라 Come unto these yellow sands"같은 시를 생각해보라. 자연과의 혼연일체로 인한 황홀감이 세련되게 표현되어 있다. 

사랑 vs 애정 없는 성관계를 생각해보자. 사랑의 경우 가뭄 끝의 단비로 식물이 되살아나듯이 활력을 불어놓고, 우리를 새롭게 한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성관계의 경우 순간적인 쾌락이 있지만, 끝난 후 피로감, 혐오감, 공허감만 남는다. 사랑은 대지의 일부이지만, 사랑이 없는 성관계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인들이 느끼는 권태는 대지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대지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삶은 갑갑함, 답답함을 가져온다. 돈이 많은 부호들은 권태를 두려워하여, 자극을 추구하려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더 나쁜 권태에 빠지고 만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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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위의 꽃, 나무, 나비, 밝게 비치는 태양 빛 등 [본문으로]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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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하는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내가 봐도 저질 개그인 것 같아서, 자발적으로 슬픔 표시를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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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속에 맴돈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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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런 영상이 너무 재미있다.

2:10 경에는 초딩시절 내가 살던 가양아파트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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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그렇고 그런이야기 2021. 8. 16. 01:43

아기들은 기본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주변을 보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배가 부르고, 졸리지도 않고, 주변에 보호자가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 등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주변 물체를 만지거나, 입에 넣어보거나 하는 식으로 세상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나는 아기들이 물건을 만지고 느껴보는 것은 일종의 공부라고 생각한다. '이건 색깔이 이렇구나', '감촉은 이렇구나', '맛은 이렇구나', '이런 소리가 나는 구나' 등을 느끼며 물체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다. [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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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공부를 한다는 것[각주:2]도 많은 기본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이룰 수 있는 고차원 활동이 아닐까 한다.

건강, 정서적 안정, 생계에 대한 고민도 없어야 하고, 사랑하는 주변 사람(가족, 친구)들이 행복해야[각주:3] 하는 등 의식주를 포함한 여러 가지 기반이 뒷받침 되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작업인 것 같다.[각주:4]

내가 안심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무대 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수많은 지지대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으며, 대학원 입학 당시 가졌던 꿈을 비슷하게나마 유지하고 있다. 이는 내 지지대들이 오랜 시간 지금까지도 잘 버텨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지대들이 지금도 지탱하고 있는 이유는 순탄한 주변 사람들, 환경 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변 환경이 변했다면, 나도 예외없이 꿈을 포기하고 다른 일에 종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이맘 때에 대학원에 입학했었다. 그때를 돌아보며 현재 내 주변 사람들, 주변 환경에 대해 잠시 동안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똑똑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무엇보다도 아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 아이와의 애착(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심이 된다면 마음놓고 세상에 대해 지식을 쌓아갈 수 있다. 비싼 교재교구가 없어도, 주변에 있는 막대기, 빨래 집게, 부채 등은 아기에게 훌륭한 교재교구가 될 수 있다. 반면 보호자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아이는 매번 불안해하고 애정을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이로 인해 아기는 제대로 세상을 탐구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광고에 나오는 수백만원짜리 교재교구를 사준다해도 아기와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아기에게는 무의미할 것이다. [본문으로]
  2. 이때 '공부'는 특히 대학원 공부(연구)에 해당할 것 같다. 고시 같은 단기 시험의 경우 설령 몇 가지 기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힘든 상황이라 해도 -미래가 보장된다면- 배수진을 쳐서라도 완수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반면 연구는 장기간 과업이므로 몇몇 기본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진행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절대 진행해서도 안 된다!" [본문으로]
  3. 가령 육아 문제로 본인과 가족 모두가 지친 경우 학업을 지속하긴 문제가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4. 만약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생계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돈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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