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4(월)

내 자전거에는 바구니가 달려있다.

바구니가 있어 참 편리하다. 가방이나 혹은 잡다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 싣을 수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바구니가 꼭 좋지 않을 순 있다. 세워놓은뒤 자전거를 찾으러 갈때면, 전단지나 담배꽁초가 있을때도 있기 때문이다. 내 바구니는 좋은 물건을 담는 수단이 될때도 있고, 쓰레기통이 될때도 있는 것이다.

 

오늘 문득 집에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아이스크림을 갑자기 먹고싶어졌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스크림을 사고왔다. 먹고보니 쓰레기를 버릴곳이 없었다. 난 그것을 내 바구니에 담았다.

 

남들은 그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은 아마 자전거 바구니를 쓰레기통으로 인식하고 있구나 할 것이다.

사실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사실이다.

 

만일 내가 바구니를 쓰레기통이라고 여기고 행동한다면, 남들또한 그것을 쓰레기통으로 인식 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다. 남들도 그 바구니에 쓰레기를 버릴지 모른다.

 

내가 그 바구니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남들은 그 바구니를 쓰레기통으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도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평가하냐에 따라 남이 보는 내 가치도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어리숙하고 낮게 본다면,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또한 그리할 것이다.

나의 장점을 단점에 비해 크게 어필한다면, 남또한 내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너무 부풀려서는 안 된다.

뻔한 고물바구니를 부풀려야 금세 탄로가 나기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자존감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것같다.

간편한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으로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지만, 관계는 더 얕아진 것같다.

이러면에서 좀 슬프긴 하지만, 이런 세상살아가는 처세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약게 살아간다는 것이 꼭 옳은 방향일까?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추상적으로 결론이 귀결되는 것 같지만 결국 중용을 지켜야 할 것같다.

조금더 업무상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만났을때는 내 자신을 어필하는 쪽으로 가야하고,

사적이고 인간적인 자리에서는 조금은 내 자신의 진솔함을 드러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구들에게 "너는 너무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라고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소중한 바구니를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나와 평생을 함께할 바구니를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훌륭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내 자전거 바구니를 보면서 하게되었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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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블로그는 상어와 같다고 한다.

상어에게는 어떤 습성이 있는가?

상어는 헤엄치지 않으면 죽는다고 한다.

상어는 부력을 조절하는 부레가 없기때문에 헤엄을 치지 않으면 가라앉는 것이다.

그래서 상어는 가라앉지 않기위해 끊임없이 헤엄친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 글을 올리더라도 끊임없이 올려야 할것이다.

한순간만 올리고 장기간 멈추게 되면 그 블로그는 죽은 블로그가 될 것이다.

그러면 글을 끊임없이 올리기 위해서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내가 블로그를 해야하는 목적이 뚜렷하야한다는 것이다.

한번해볼까?란 목표는 결국 흐지부지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목적을 가지려면, 결국 열정이 있어야한다.

내가 이 것을 꼭 해야한다는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정이 무언가를 꾸준히 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것이다.

 

여러 블로거들이 주의해야 할점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시작할때 너무 의욕을 가진 나머지 열정이 너무커서 지쳐버릴 수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매일매일 일기장을 써야해서 일기쓰는게 싫어진 사람의 예를 들 수 있겠다.

뭐든 내가 즐기기위해서 하는 것이다.

 

상어도 미친듯이 헤엄칠경우 홀쭉해지고, 에너지도 모두 소비하게 될 것이다.

도를 지나쳤을때는 그것에 관해 지쳐버리기 마련이다.

 

상어답게 멋있게 헤엄치자. 바다의 제왕처럼,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글을 써나가다보면 어느덧 최고가 되어있는 자신의 블로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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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이 노래가 더욱 생각난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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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크리스마스.

나에게는 25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24일 이브날.

세례를 받는 친구를 위해서 성당미사에 참석했다.

내가 미사에 참석한 곳은 홍대입구역 근처였다.

 

홍대에는 많은 연인들이 왔다. (몇몇은 아닌것 같았지만) 모두들 행복해보였다.

집에오는 길에 눈이 내렸다. 하얀 눈이 내렸다. 모두를 축복하는 하얀눈.

어두운 밤에 새 하얀 눈. 아름다웠다.

 

재작년 이 날 나는

후임들과 성당에서 성탄 전야제를 했다. 하늘을 달리다와 falling slowly를 불렀다.

여러사람들의 호응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이 크리스마스날

지금도 경계를 지키고, 자기일에 열중하는 국군장병들이 있다.

 

더 깊이 생각해봤다.

눈이 오는 화이트크리스마스는 누구를 위한 크리스마스일까?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낮은자를 위한 의미가 맞는가?

 

눈이 내리는 거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음식을 팔고있었다.

치킨배달부는 치킨을 배달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연탄을 때며 홀로 보내는 독거노인이 있을 것이다.

서울역 지하보도에서 술에 의지하는 노숙인들도 있을 것이다.

 

지난 크리스마스를 생각해보았다.

어렸을때 크리스마스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 날이었다.

학창시절 크리스마스는 학기말이 끝나고 노는 날이었다.

대학생의 크리스마스는 술마시고 노는 날이었다.

다 나를 위한 날이었다.

 

이번 25번째 크리스마스에는 낮은 자, 약자들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비록 내가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지만 그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것이

조금은 더 떳떳할 것 같다.

 

낮은자를 위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도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외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가 되길 25일을 맞으며 생각해본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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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웃겨 ㅋㅋㅋㅋ

개인적으로는 할머님들이 ㅋㅋ

 

 

 

이건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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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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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지도자를 뽑는데 냉철함은 필수요소이다.

 

이런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박근혜를 뽑아야 돼.아버지가 그동안 없어서 얼마나 외로웠겠어",

"유세중에 얼굴에 상해도 당했잖아."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싫어"

 

선거에서는 냉철함이 필수다.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전혀 이성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무슨 반장선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랑 친하니 뽑아준다. 이 친구는 불쌍하니 반장한번 시켜주자하는 논리와 똑같다.

 

박근혜의 경제정책은 문재인보다는 친 재벌적인 정책인데, (순환출자여부 등)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재벌친화적인 경향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말을 들어보면 아니다. 

그 사람들은 서민들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으며, 이제 새로운 지도자가

서민들에게 희망적인 정책을 실행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었다.

이건 무슨..!!!

(낙수효과는 이대통령때는 큰 효과가 없었다, 서민들을 위해서라면 일단 복지에 특히 저소득층에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또한 아버지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나, 얼굴에 상해를 당하고 정치생활을 하고있는것이,

좋은 정치적지도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안간다.

감성에 치우쳐서 이성이란 것을 밥말아먹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머리속에 박혀버렸다.

 

북한을 지지한다?? 북한과 대화로 풀어가자는 것이 지지한다는 것과는 상통하지 않는다.

나는 2층집 중 1층에 살고있다.

2층집에 말도 안들어먹는 건달이 살고있는데, 건달이 언제 술을 먹고 집에와 행패부릴지 모르는데 해결방안은 여러가지가 있을것이다.

첫째 비싼 사설경비업체를 집에 고용하는 것이다. 물론 경비업체가 집에 재정에 큰 영향을 끼칠수있지만, 최소한 건달을 막을 수는 있다.

두번째로 일단 건달에게 이야기 해보는 것이다. 일단은 건달의 얘기를 들어보고 왜 그러는지, 뭘 요구하는지 판단할 수도 있는것이다. 시도때도 없이 땡깡이면 그때 생각해도 된다. 일단 대화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비유가 맞는 건지는 모르지만. 비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화로 풀자는게 건달에게 집을 싸그리 줘버리자는 아닐것이다.

 

그동안 무력으로 대비하자란 것에서

대화로 풀수도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것. 그리고 기존의 패러다임을 깬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는데

어째서 그게 세상에 나와야지 말아야 할(나아가 나가면 매장당하는) 의견인지 알 수없다.

 

선거를 함에 국민이 가져야할 소양은 무엇인가?

정책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

공정함(편향적이지 않아야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 정도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판단자체가 이렇게 많은 한계를 지지니

(심지어 나찌파시즘, 일본제국주의 등 사람들은 현명하지 못한것같다.)

정치가에 내 희망을 맡겨선 안되겠다.

정부정책, 새로운 정치인에 내 꿈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일 것이다.

그것보다 내 자신의 성장을 위해 공부를 해야겠다.

논리적이지 못한 정책이라도 감성팔이만 한다면 되는게 정치인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2.토론거부

2580다큐를 보았다.

박후보가 토론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 안경쓴 어떤 대변인 말로는

"지방 유세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어 토론에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만일 이게 정말이라면 지방일정과 자신의 정책을 TV를 보는 모든 국민에게 알리기위한 토론중

어떤것이 더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판단 못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지방유세가 토론보다 어찌 우선이 되는가?

토론을 통해서 국민에게 정책을 어필하고, 다른 후보의 생각도 들어보고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는것인데,

 

만일 다른 이유가 있는것이라면,

토론의 능력부족이라고 여겨진다. 네거티브를 견디기 힘들어서란 이유도 그것을 못견디고 발끈하거나 우물쭈물하는 것 자체가 토론의 능력부족이다.

또한 박후보가 불통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토론을 안한다면 그 이미지를 더 굳히려는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판단을 주저하고 있는 부동층은 토론을 통해 정책이 뭐고 어떤소신을 가지고 싶은지 들어보고싶은데 (그런 국민이 10%나 된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지방유세를 가는 것이 무슨 국민을 위한다는 말일까?

 

참고로 그동안 대선토론은

16대 대선은 80회

17대 대선은 4-50회 정도

18대 대선은 역대 최소로 토론을 할 것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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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자두노래가 금지곡??

 

(남북간에) 대화가 필요해, 김밥가사의 중의성 때문인가?

 

 

또 왜 그러는데 뭐가 못마땅한데
할말 있으면 터 놓고 말해봐
너 많이 변했어 (내가 뭘 어쨌는데)
첨엔 안 그랬는데 (첨에 어땠었는데 )
요새는 내가 하는 말투랑 화장과 머리 옷입는 것까지
다 짜증나나봐 (그건 니 생각이야)

우리서로 사랑한지도 어느덧 10개월
매일 보는 얼굴 싫증도 나겠지
나도 너처럼 나 좋다는 사람 많이 줄섰어
(간다는 사람 잡지 않아 어디한번 잘해봐)
근데 그놈의 정이 뭔지 내 뜻대로 안 돼
맘은 끝인데 몸이 따르질 않아
아마 이런게 사랑인가봐 널 사랑하나봐
(지금부터 내 말을 들어봐)

넌 집착이 심해 (그건 집착이 아냐)
나를 너무너무 구속해 (그럼 너도 나를 구속해)
우리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마치 와이프처럼 모든걸 간섭해

너의 관심 끌고 싶어서 내 정든 긴 머리
짧게 치고서 웨이브 줬더니
한심스러운 너의 목소리 나이 들어 보여
(난 너의 긴 머리 때문에 너를 좋아했는데)
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전화를 걸어
날 사랑하냐고 물어봤더니
귀찮은 듯한 너의 목소리 나 지금 바빠
(듣고 보니 내가 너무 미안해)
대화가 필요해 (이럴 바엔 우리 헤어져)
내가 너를 너무 몰랐어 (그런 말로 넘어가지마)
항상 내 곁에 있어서 너의 소중함과 고마움까지도 다 잊고 살았어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소한 오해 맘에 없는 말들로
서로 힘들게 해 (너를 너무 사랑해)
대화가 필요해

 

 

몇십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영화도 나는 멜로 너는 액션
난 피자 너는 순두부

그래도 우린 하나 통한 게 있어 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 산다고
너무나 부러워 했지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 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 버린 저 김밥 처럼
내 가슴 터질 때까지

예전에 김밥 속에 단무지 하나
요새 김치에 치즈 참치가
세상이 변하니까 김밥도 변해
우리의 사랑도 변해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 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날 안아줘 날 안아줘
옆구리 터져 버린 저 김밥처럼
내 가슴 터지게 한 너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세상이 우릴 갈라 놓을 때까지
영원히 사랑 할꺼야
끝까지 붙어 있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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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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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21살의 정원호가 쓴 귀여운 글.

역시나...지금보다는 더 투쟁적이고, 자극시킨 글을 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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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무서운 것일까? 심판을 받는...또 착하게 살면 영생을 누리는 그런 곳일까? ㅎㅎ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너가 생각하는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죽음에 관한 내 생각을 적어보겠다.

난 다른 사람들이 내 글에 관해서 물어뜯는것을 좋아한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 글이 상당히 거북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각임을 밝힌다.

자신의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반론도 좋고 태클도 환영한다.ㅋ

 

나에게는 인생, 사회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친지나 지인의 죽음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내 생전에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도 태어나서 일주일 후에 돌아가셔서 죽음이란 것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죽음이란 것에 대해 딱히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일단 유년시절에는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신이 자신을 지옥으로 보낼지 천국으로 보낼지 판단하는 것으로 단순히 믿고 있었다. 천주교를 믿고 있었기에 성당에 자주 다녔고,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죽음은 무엇일까? 죽음이라는 것은 심장박동이 멈추고 어떠한 생명, 물질대사를 할 수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상태다. 죽음으로 인해 사람이 생각하는데 쓰이는 ‘뇌’의 기능이 멈추게된다. 즉, 생각할 수 있는 기관이 작동을 멈춘다.

동물은 죽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가령 개구리가 죽으면 미생물은 개구리를 탄소, 질소 등으로 분해한다. 이 분해물은 다시 식물에게 중요한 양분이 되고, 초식동물 등의 먹이사슬을 거침으로서, 생태계는 보전된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 아닐까? 땅속에 묻혀서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식물에게 양분이 된다. 후에 그것은 거치고 거쳐 먹이사슬의 끝자락인 인간에게도 양분이 될 것이다. 자신의 일부분이 인간에게 또는 여러동물들에게 양분이 된다. 또한 그것이 번식, 생장을 위해 쓰인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은 이런 점에서 새로운 탄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죽음관이다. 결국 자연에서 태어나 결국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로 볼 수도 있겠다.

죽음에 대한 종교주장(천국 및 지옥, 염라대왕, 여러 사이비사상 등등)을 죽음관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우선 내가 그 사상에 관해 모르는 것이 많을 수도 있겠으나 현재 내가 이것들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으로 봤을 때는 증명되지 않은 부분이 더러 있는 것 같다. 그것에 관해 설명하는 사람도 본인은 죽음을 본 것도 아니고 분명 체험한 것도 아닐 것이므로 어떻게 보면 신뢰성이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두 번째로 종교단체들이 주장하는 죽음에 대한 감성적인 해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태어나면 죽고, 생기면 소멸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제대로 규명되지도 않은 자신들만의 해석을 붙여서 죽음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것(가령, 신비스럽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시작이다,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위해 현실의 삶에 미리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말들은 사람들의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공략하기 위한 상술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자신은 천국을 가기위해 기독교를 믿는다는 친구와 잠시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죽음 뒤의 삶이 더 중요한 것이기에 자신은 기독교를 믿는다고 했다. 즉 내세를 믿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말하는 죽음 뒤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는 현 세상은 죽은 뒤의 순간보다는 무척 짧은 것이기 때문에 긴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 라고 했다. 이것은 앞의 나온 나의 죽음 관과 분명 다르다. 나는 죽은 뒤의 삶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형태로 봤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반박하였다. “너도, 나도 죽음 뒤의 삶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그래 그 세상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래도 죽음 뒤의 삶을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가령 100m달리기 선수에게는 올림픽에서의 그 10초의 짧은 순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중요한 시간이다. 물론 100m 달리기 이후 노년, 장년의 긴 시간이 있다. 하지만 난 이 10초를 가장 그에게 있어 중요한 시간으로 본다. 나 같으면 이 10초에 내 모든 것을 걸겠다. 그래 네 말이 맞는다면, 죽은 뒤의 시간에 비해서 지금 현세는 무척 짧다. 그러나 지금 이 현세의 짧은 순간이 내가 모든 것을 바칠 그런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나는 죽은 뒤의 영겁의 시간보다는 현실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이름을 남기는 쪽을 택하겠다.”라고 말했다.

죽음이란 것은 딱히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 내가 보는 죽음관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관점이다. 종교란 것은 안식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도 있지만, 죽음이란 것을 감성적으로 자극하는 종교 관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몇몇 사람들의 말처럼 죽음 뒤에는 내세가 있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이 옳다 해도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현재 느끼고, 보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죽음이란 것을 준비하기 보다는 지금 현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상선수에게 올림픽결승 단거리달리기 대회의 그 짧디 짧은 10초는 평생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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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인해 뇌가 기능을 멈춘다. 생각을 못하고 의식도 없게된다. 내세란것을 경험할 능력도 없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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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저자
에리히 프롬 지음
출판사
문예출판사 | 2006-10-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출간 50주년 기념판 성숙한 사랑을 꿈꾸는 인류를 위한 현대의...
가격비교

 

 

 

 

 

 

 

 

 

 

우연히 이 책에 관한 독후감을 발견하여, 이 글에 올리고 또한 생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지금에서 사랑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하였는지 서술 하려한다.

 

※ 내용은 기억도 희미할 뿐더러, 인터넷으로 요약을 금방 찾을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사랑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설 될 수 있을것이다. 이성간의 사랑, 종교적인 사랑, 전 인류애적인 사랑 등 보편적으로 쓰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한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나?

 어렸을때는 사랑이란 것을 주로 없이 못사는 것. 베풀기만 하는 것. 아가페 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부모님으로 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왔기때문에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즉, 간략히 말하면 사랑한다면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것, 이성간의 그리고, 신, 그리고 부모자식간의 관계... 즉 그 사람을 위해 온전히 바칠 수 없다면 사랑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사랑이란 것은, 상호간의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정서, 감정 등. 그러니까 서로 상대방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때 그것을 사랑으로 보았다.

 대학교에 오면서 사랑이란 것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것. 그러니까..예로서는 안치환씨의 "내가 만일"이란 노래처럼 그녈위해 노래하고, 그녈위해 바람이 되고, 비를 맞으면 우산이 되어주는 것. 서로 힘이 되어주고 의지하며, 서로를 지켜나가는 것을 사랑으로 보았다.

 

 시간이 갈 수록 사랑의 의미가 이렇게 변해왔다.

 

지금은 어떻게 보고있나?

사랑이란...지금보기에는 관심이다. 그러니까..옛다 관심..이런것이 아니라.

상당히 말로서 정의하긴 어렵지만, 감정이 포함된 관심이다. 하지만 좋은 감정이어야 한다.

만일 나쁜감정이라면 증오가 될 것이다.

 

 그 사람은 지금 뭘하고 있을까? 그 사람은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이 옷을 입으면 어떨까? 항상 그 사람에 관해 생각하고, 그 사람의 행동하나하나를 유심히 보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라고 본다.

 내가 내린 나름의 정의에 따라 내가 이런 상황에 놓였을 경우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어느샌가 인정하게 될것이다.

 

미안하지만 나에게 아직 그런 사랑은 없는 것같다.

지금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나" 이고, 내 미래를 어떻게 끌어가야 하나에 많은 초점을 쏟고 있다.

안타깝게도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모티브가 없다.

 

어느날 모티브가 생긴다면? 관심의 초점이 나에서 타인으로 바뀌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것에 관해 사랑의 기술에서는 나 자신을 더 가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외모를 단장하고, 꾸미고, 말재주를 늘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사랑을 받기위한 수단들에 불과하다. 그런 것은 수동적인 활동일 뿐이다. 사랑은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에리히 프롬은 말하고 있다.

결국 사랑을 다른사람에게 주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도 다른 기술 처럼 (목공, 손기술, 여타기술등등), 자기 수련이 있어야 하며, 인내하고, 정신 집중을 하고, 거기에 관심을 갖고 (마치 기술을 익힐때처럼) 배우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경험을 많이 가져보라는 것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컴퓨터게임, 공부처럼 사랑도 마찬가지 인것같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쉽게 Clear할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계속 도전하면 점차 나아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또한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진실한 사랑을 할 수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나 자신에 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고 크게 동의했던 부분은 자신의 관한 수양이다.  

결국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완벽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되었을시에 좋은 분이 따라오고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동안은 내 자신은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소양은 갖췄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어떤분이 나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 조언은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랑이란 이상속의 (異想) 벽을 깨주실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의 있어서 실천적인 부분은 너무도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 분이 말하길 사랑은 불완전한 두사람이 서로에게 맞게 적응해 나가면서 완벽해 지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으며, 완벽한 사람이 되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늦은 것이라고 했다. 결국 너 자신이 여러사람을 만나면서 자신과 그나마 맞는 사람을 찾는 과정을 통해 여러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중에 더 좋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 또한 옳다. 지금와서 살펴보니 에리히프롬은 실천부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론(내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랑의 정의가 뭐고...) 또한 중요하지만 이것만 알아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앞에 나온 이야기는 실천 부분이고, 그것 또한 양립하면서 가지고갈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오해하기 쉬운 것이, 실천이란 것이, 타인을 홀리는 말솜씨라던가, 외모, skill이런 것을 전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있으면 좋으나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관심을 주고받으며 서로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속히 말하는 루저(키가작거나, 돈이 없거나 등등...) 이런것을 통해 쉽게 좌절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물론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사회에도 문제가 있다. 단순히 그런것 없이 연애란 것이 현실적인 요소만 전적으로 생각 되는 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만나 모든것을 이뤘어도 결코 행복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분명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괜히 자신감을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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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하기 위해 그동안 먼 길을 돌아왔는데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한다.

"옷을 잘 입고 다녀라" "헤어스타일 좀 바꿔라" 등등등...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내겐 사랑에 있어서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만일 내 겉모습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그 정도 가치밖에 안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예전에 프로포즈시에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 보다는 사랑을 할 시 내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가란 물음에 머뭇거렸었는데, 요새들어 조금 더 실천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있다.

사랑이란 것을 통해, 서로가 서로로 인해 더욱 발전하고, 내가 타인이 되고, 타인이 내가되는 정서적인 교류를 느끼고 싶은 순간이 생기기를,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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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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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태도는 문재인

논리성은 안철수.

 

처음이라 긴장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하지만, 본질을 묻는 대답에

다른 대답을 하는 문후보의 모습도 보였다.

 

대통령으로는 누가 적합할까?

 

정치의 경험일까?

논리성일까?

 

단일화에 대해

바로하자 vs 점진적 시간을 갖자. 도 중요한 이슈였다.

Posted by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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